대학에 가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 MovieLAB LAB

수능이 끝날 때까지만 찍으려던 영화가 8년 동안 이어졌다. 〈잠자리 구하기〉를 만든 홍다예 감독은 고등학생 때부터 자신과 친구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처음의 목표는 입시를 치르는 …

대학에 가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 MovieLAB LAB

수능이 끝날 때까지만 찍으려던 영화가 8년 동안 이어졌다. 〈잠자리 구하기〉를 만든 홍다예 감독은 고등학생 때부터 자신과 친구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처음의 목표는 입시를 치르는 한 해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수를 하고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촬영은 계속됐다. 학교를 벗어나면 끝날 줄 알았던 불안이, 학교 밖의 생활에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가면, 취직하면, 이번 일만 끝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해본 사람에게 이 출발은 낯설지 않다. 지금을 견디기 위해 미래의 어느 지점에 안심할 자리를 마련해두는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한 뒤에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홍다예는 그다음의 자신을 찍었고, 예전에 찍어둔 친구들을 다시 바라봤다. 이 영화는 입시를 통과한 순간보다, 그 이후에도 서로를 필요로 했던 시간을 길게 품는다.

학생들이 자리를 비운 교실의 책상과 칠판

학생이 없는 교실에도 남아 있는 것

영화는 텅 빈 학교의 풍경에서 시작한다. 감독은 수업이 한창일 때보다 친구들이 저녁을 먹으러 갔거나 혼자 남아 자습하던 때에 교실을 찍곤 했다. 사람이 빠져나간 공간에도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남아 있는 듯하다. 누군가에게 교실은 학창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곳이겠지만, 이 기록 속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하루의 장소다.

카메라를 든 사람이 같은 학교의 학생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홍다예는 입시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잠시 찾아온 어른이 아니다. 함께 시험을 치르고 성적에 흔들리는 친구다. 화면 안의 아이들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위치에 서 있기보다 그들 곁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짜증이나 거친 말도 깔끔한 인터뷰 답변으로 정리되기 전에 기록된다.

책상에 나란히 앉아 공부하는 두 학생

합격 뒤에도 카메라는 꺼지지 않았다

졸업과 진학은 기록에 날짜를 붙여준다. 하지만 그 날짜를 기준으로 감정까지 새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대학생이 된 감독은 불안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을 겪는다. 영화는 그 시간을 지나 다시 고등학교 시절의 영상으로 돌아간다. 예전의 일을 순서대로 정리해 보여주기보다, 지금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과거를 찾아보는 구성이다.

옛 영상을 다시 보면 촬영할 때와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올 수 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말, 친하다는 이유로 모질게 대한 친구, 함께 있을 때는 잘 몰랐던 상대의 처지 같은 것들이다. 〈잠자리 구하기〉가 과거로 되돌아가는 이유도 이와 닿아 있다. 이미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는 감정이 누구와의 어떤 시간에서 비롯됐는지 더듬어본다.

여기에는 기록한 사람 자신도 포함된다. 홍다예는 힘든 일을 겪은 자신만 보여주지 않고, 친구에게 화내고 상처 주었던 일을 돌아본다. 나도 괴로웠다는 설명으로 당시의 행동을 모두 정리해버리지 않는 것이다. 자기 모습을 편집해서 내놓는 사람이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은 기억도 남길 때, 이 기록은 한 사람의 호소보다 넓어진다. 그 곁에 있던 친구는 같은 시간을 어떻게 겪었을지 궁금해진다.

친구에게 다시 말을 건네기까지

홍다예는 가까웠던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서로 서먹해진 뒤라 말을 꺼내기 쉽지 않지만, 자신의 거친 태도를 돌아보며 힘든 친구에게 마음을 전하려 한다. 영화에 그 편지가 들어간다. 타인에게 잘해야 한다는 다짐을 말하는 대신, 이미 멀어진 한 사람에게 다시 이야기하려는 시도가 놓이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카메라를 들었다는 사실이 상대를 이해했다는 보증이 되지는 않는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에게도 미처 묻지 않은 사정이 있고, 함께 있었던 기억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친구의 모습을 많이 찍었다는 것보다, 나중에 그 영상을 어떻게 다시 바라보는지가 중요해진다. 감독은 자신이 남긴 기록 안에서 자기 태도도 살핀다. 그 과정이 있어 편지는 누군가를 구해주겠다는 선언보다 조심스러운 말 걸기에 가깝게 느껴진다.

후반부에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지금의 삶을 이야기하는 인터뷰가 나온다. 흔들리던 옛 영상에 비해 카메라는 안정되어 있다. 더 좋은 장비로 과거의 화면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이제 각자의 생활을 갖게 된 친구들을 새로 만나는 자리다. 학생 때 함께 있었다는 기억만으로 지금의 상대까지 안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을 시간을 마련한 듯하다.

처음에는 수능을 함께 치를 친구를 찍었고, 이제는 각자의 시간을 살아온 친구에게 이야기를 청한다. 그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예전에 알던 모습만 떠올리던 누군가에게 지금은 어떤지 물어보고 싶어진다.

관련 작품

◆ 〈벌새〉 (2018, 김보라) — 학교와 집에서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는 중학생 은희를 따라간다. 어른이 되면 지나갈 일이라는 말로 지금의 감정을 줄이지 않는 영화다. 학생의 하루를 성적이나 진로로만 요약할 때 놓치는 관계와 마음을 만날 수 있다.

◆ 〈너와 나의 5분〉 (2024, 엄하늘) — 음악을 나누며 가까워지는 두 소년의 이야기다. 친구와 같은 것을 좋아한다고 서로의 감정까지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함께 보낸 시간이 한 사람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는지, 기록을 되짚는 다큐멘터리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한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