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보낭이 주방에서 찾은 뮤지컬 | MovieLAB LAB

감자를 깎는 동작에도 안무가 필요할까. 〈리브 원 데이〉를 만든 아멜리 보낭에게는 그랬다. 이 영화의 사람들은 일을 멈추고 무대로 올라가야만 노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주…

아멜리 보낭이 주방에서 찾은 뮤지컬 | MovieLAB LAB

감자를 깎는 동작에도 안무가 필요할까. 〈리브 원 데이〉를 만든 아멜리 보낭에게는 그랬다. 이 영화의 사람들은 일을 멈추고 무대로 올라가야만 노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주방에서 손을 움직이고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음악이 시작된다. 감독과 안무가는 배우가 그 공간을 어떻게 오갈지, 평소의 동작을 어느 속도로 이어갈지 함께 정했다.

보낭의 첫 장편에는 고향 식당으로 돌아온 요리사 세실(쥘리에트 아르마네)이 있다. 파리에 자기 식당을 열기 직전,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온 딸이다. 같은 요리사인 아버지와는 말이 잘 통하지 않고, 학창 시절 좋아했던 라파엘(바스티앙 부이용)도 다시 만난다. 말로 해결해야 할 일이 수두룩한데 영화는 종종 노래를 시작한다. 그럴 때 보낭은 노래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그 사람의 표정까지 만나게 한다.

성공한 단편을 길게 늘리는 대신

이 영화에는 같은 원제의 단편이 먼저 있었다. 보낭은 2021년 단편 〈Partir un jour〉를 만들었고, 2023년 세자르 단편영화상을 받았다. 제작자들이 장편을 제안했을 때 처음부터 자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짧은 이야기를 분량 때문에 늘리면 영화가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장편에서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귀향하는 사람이다. 단편에서는 남자가 고향에 돌아와 여자를 만났지만 장편에서는 세실이 돌아온다. 같은 배우들이 다시 참여해도, 누가 떠났다가 돌아왔는지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고향에 남은 사람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자리도 바뀐다.

보낭은 단편을 쓸 때 왜 자연스럽게 남자를 중심에 놓았는지 뒤늦게 돌아보았다고 말했다. 장편에서는 마흔의 여성이 일과 가족, 임신을 한꺼번에 마주하게 했다. 세실에게는 이미 일해온 시간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온 개업 계획도 있다. 그래서 잠깐의 귀향이 그에게는 큰 질문이 된다. 여기서 생각이 바뀌면 앞으로의 생활도 달라진다.

이 변화는 단편을 길게 만드는 일과 새로운 장편을 만드는 일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야기에 사건 몇 개를 더 붙이기보다, 같은 만남을 다른 사람이 겪게 한다. 보낭은 그 사람에게 무엇이 걸려 있는지부터 다시 생각했다.

〈리브 원 데이〉 — 차 안에서 대화하는 두 여성

아버지와 딸이 같은 일을 한다는 것

세실의 아버지는 길가 식당에서 일하는 손님들의 끼니를 책임져왔다. 딸은 자기 요리를 선보일 고급 식당을 준비한다. 둘 다 요리사지만 좋은 식당을 떠올릴 때 그리는 모습은 다르다. 세실이 더 큰 꿈을 가졌다고 해서 아버지가 해온 일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아버지의 일을 존중한다고 딸이 같은 곳에 머물러야 하는 것도 아니다.

보낭 자신에게도 고향과 멀리서 만든 삶을 함께 받아들이는 일이 낯설지 않았다. 작은 도시에서 자라 파리에서 공부하고 영화를 만들게 된 그는, 자기 길을 가고 싶으면서 자라온 곳의 가치를 저버리고 싶지는 않은 마음을 이야기했다. 세실이 감독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는 인물은 아니다. 다만 부모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새 생활을 갖게 되었다는 사정에는 감독이 이해하는 감정이 들어 있다.

보낭은 아버지와 딸의 갈등을 잘난 딸과 뒤처진 아버지의 대결로 정리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주방에는 매일 돌아오는 일이 있고, 세실에게는 오래 준비해온 일이 있다. 같은 요리를 한다는 사실이 둘을 가깝게 만들면서도 상대의 방식을 더 못마땅하게 여길 이유가 된다. 모르는 일이라면 참견하지 않았을 말이, 잘 안다고 믿기에 먼저 나온다.

그런 집에서 누군가 노래를 부르면 말다툼할 때와는 다른 목소리를 듣게 된다. 상대의 주장이 옳아졌기 때문은 아니다. 늘 아버지나 딸로만 보던 사람이 좋아하는 노래를 가진 사람으로 잠시 보이기 때문이다. 보낭의 음악은 갈등을 단번에 해결하기보다, 그 갈등 속 사람을 조금 더 볼 시간을 준다.

〈리브 원 데이〉 — 빙판 위의 두 사람

잘 부르는 것보다 먼저, 지금 누구에게 부르는가

보낭은 이미 널리 알려진 대중가요들을 골랐다. 프랑스 관객에게는 곡을 듣는 것만으로 떠오를 시절과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한국 관객이 모든 노래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배우가 누구를 보며 부르는지, 노래가 끝난 뒤 두 사람의 기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따라갈 수 있다. 익숙한 노래가 기억을 불러오는 경험 자체는 낯설지 않다.

촬영장에서는 가수와 배우가 서로 다른 걱정을 안고 만났다. 아르마네는 무대 경험이 많은 가수지만 장편의 주인공 연기는 새로웠고, 함께하는 배우들에게는 노래가 부담이 될 수 있었다. 보낭은 한쪽의 능숙함이 다른 쪽의 긴장을 덜어주는 협업을 이야기했다. 완성된 노래를 들려주는 일과 한 사람으로 상대 앞에 서는 일이 현장에서 만났다.

배우들은 현장에서 직접 노래했다. 연기하며 부른 뒤 음정에 집중해 다시 녹음했고, 이후에도 세심한 음향 작업을 거쳤다. 자연스럽게 들린다는 것이 아무 준비 없이 찍었다는 뜻은 아니다. 안무 역시 마찬가지다. 배우가 촬영 중 발을 어디에 놓을지 찾느라 상대를 놓치지 않도록, 움직임은 미리 준비해두었다.

감자를 깎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아버지 주위를 돈다. 일을 하는 손과 노래하는 얼굴을 함께 보게 하는 움직임이다. 보낭이 무대 밖에서 찾은 뮤지컬은 이런 장면에 있다.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일하면서도 평소 말로는 다 드러나지 않았던 감정을 내보인다.

감상 포인트

◆ 주방에서 이어지는 움직임 — 음식을 준비하는 손과 배우의 동선을 함께 보자. 보낭은 일상의 동작에도 안무를 마련했다. 노래 장면이 별도의 공연처럼 떨어져 나가지 않고 식당의 생활 안에서 이어지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 부녀가 생각하는 좋은 요리 — 아버지와 세실이 각자 누구에게 어떤 식사를 내놓으려 하는지 살펴보자. 직업이 같다고 목표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충돌을 고향과 도시 어느 한쪽의 우월함으로 정리하지 않게 된다.

◆ 노래를 부르는 상대 — 가사의 뜻과 함께 지금 누구를 향해 부르는지 보자. 유명한 곡을 처음 듣더라도 인물 사이의 마음은 표정과 반응으로 따라갈 수 있다. 노래 전후에 대화의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흥미롭다.

◆ 카메라까지 참여하는 안무 — 주방과 스케이트장에서 카메라가 배우를 따라가는 방식을 비교해보자. 인물의 몸뿐 아니라 관객이 바라보는 자리도 움직인다. 보낭이 평범한 공간에서 음악의 즐거움을 어떻게 끌어내는지 볼 수 있다.

관련 작품

◆ 〈리브 원 데이〉 (2025, 아멜리 보낭) — 짧은 귀향 안에 일과 가족, 옛사랑이 겹치는 첫 장편이다. 세실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노래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에도 머물러보자. 감독이 무거운 고민을 가진 사람들에게 허락한 가벼운 순간들이 있다.

◆ 〈Partir un jour〉 (2021, 아멜리 보낭·단편) — 같은 배우들이 참여한 앞선 단편이다. 장편과는 고향에 돌아오는 인물의 자리가 바뀌어 있다. 두 작품의 차이를 따라가면 보낭이 장편에서 어떤 사람의 사정을 더 길게 듣고 싶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