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집에 외로움 셋이 찾아왔다 | MovieLAB LAB

일흔다섯 살 모모코(다나카 유코)는 혼자 살지만 영화 속 집은 좀처럼 조용하지 않다. ‘외로움 1’(하마다 가쿠), ‘외로움 2’(아오키 무네타카), ‘외로움 3’(구도 간쿠로)…

혼자 사는 집에 외로움 셋이 찾아왔다 | MovieLAB LAB

일흔다섯 살 모모코(다나카 유코)는 혼자 살지만 영화 속 집은 좀처럼 조용하지 않다. ‘외로움 1’(하마다 가쿠), ‘외로움 2’(아오키 무네타카), ‘외로움 3’(구도 간쿠로)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노인을 방문한 이웃들이 아니다. 모모코 안의 목소리에 몸과 얼굴을 준 인물들이다. 외로움이라면 한 사람도 벅찰 텐데 셋이나 온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이 난감한 동거로 혼자 사는 여자의 하루를 들여다본다.

모모코는 남편을 떠나보냈다. 자식들을 키운 뒤 둘이 평온하게 지내리라 생각했지만, 함께할 사람을 잃고 혼자 남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사정은 분명하다. 그런데 오키타 슈이치 감독은 그 사정을 조용한 방과 쓸쓸한 얼굴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외로움들이 말을 걸고, 과거가 찾아오고, 마음속의 소리가 음악과 함께 흘러나온다. 곁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과 그 사람의 내면까지 텅 비어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다른가. 이 집의 북적거림은 둘을 구별하게 한다.

속으로 하는 말에도 상대가 필요하다

원작 소설에서 모모코는 자기 안의 목소리와 대화한다. 그것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한 감독은 배우들이 서로 말을 주고받게 하기로 했다. 한 여자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여러 사람의 대화가 되자, 마음의 움직임에 서로 다른 목소리와 반응이 붙었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도 생각이 언제나 하나로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내린 결론에 다른 생각이 끼어들기도 하고, 별것 아닌 기억이 하루의 기분을 바꾸기도 한다.

외로움 셋을 단순히 모모코를 괴롭히는 불청객으로만 보면 영화의 장난을 반쯤 놓친다. 이들은 없애버려야 영화가 끝날 악당이 아니다. 모모코가 자기 마음과 씨름하는 모습을 밖으로 꺼내놓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배우들이 주고받는 말의 호흡을 따라가는 즐거움과 혼자 사는 인물의 사정을 헤아리는 마음이 함께 간다. 장면이 웃기다고 해서 모모코가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외로운 사람도 자기 생각 때문에 피식 웃을 수 있다.

여럿이 된 내면은 모모코를 한마디로 평가하기도 어렵게 한다.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만으로는 그의 하루를 다 설명할 수 없고, 자유로워졌다는 말도 충분하지 않다. 누구의 일정에 맞출 필요가 없는 시간과 그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이 없는 사정이 동시에 생겼기 때문이다. 영화는 어느 쪽이 진짜 모모코인지 고르기보다 그 마음들이 한집에 있도록 둔다.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외로움을 빨리 해결하라고 재촉하는 일보다, 이 여자의 말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들어보는 일일 것이다.

나무 그늘 아래 젊은 여성과 모자를 쓴 남성이 나란히 앉아 있다

이 여자도 처음 도쿄에 온 날이 있었다

지금의 모모코 곁에는 젊은 모모코(아오이 유우)가 있다. 1964년, 그는 고향을 떠나 도쿄로 왔다. 그곳에서 슈조(히가시데 마사히로)를 만나 결혼했고 두 아이를 키웠다. 일흔다섯 살이라는 현재의 나이만으로 만나면 미처 궁금해하지 못할 날들이다. 남편이 없는 집을 보기 전에, 혹은 그 집을 보는 도중에,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던 시절도 불러온다.

젊은 시절은 노년의 불행을 강조하기 위한 행복한 사진 한 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낯선 도시에서 살아갈 곳을 찾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었던 사람과, 이제 혼자 남아 자신의 생활을 꾸려야 하는 사람은 같은 모모코다. 다만 두 시기의 선택을 똑같다고 할 수는 없다. 도쿄에 처음 왔을 때는 앞으로 생길 일들을 몰랐고, 지금은 함께 살아온 시간이 너무 많다. 새로 시작한다는 말이 일흔다섯 살에게는 왜 다른 무게일지 생각하게 한다.

두 배우가 한 사람의 서로 다른 나이를 맡으면서 관객도 그 시간을 오간다. 다나카 유코의 모모코를 보다가 아오이 유우의 모모코를 만나는 일은, 사별한 노인이라는 소개에 들어 있지 않던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 된다. 젊은 여자를 남편이 죽은 뒤의 모습으로 미리 가두지 않고, 나이 든 여자를 지나간 행복만 회상하는 사람으로 고정하지 않는 것이다. 남편과의 추억을 따라가면서도 그 추억의 주인이 모모코라는 사실은 남는다.

병원과 도서관 사이에서 지구의 시간을 생각한다

모모코의 생활 반경은 크지 않다. 가까운 병원에 가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책을 읽고 노트를 만들기 시작하면 관심의 범위는 일흔다섯 해를 훌쩍 넘어선다. 노트에 담기는 것은 46억 년의 역사다. 한 사람이 사는 집과 지구가 지나온 시간이 같은 영화 안에 놓인다. 도서관에 다녀오는 일이 멀리 가지 못하는 생활의 반복으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이 호기심을 외로움을 잊기 위한 취미 정도로 정리하면 아깝다. 모모코는 당장 자기에게 닥친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미 충분히 나이 들었다고 여겨질 때에도 모르는 것이 있고,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다. 남편의 부재가 그의 생활을 바꾸었지만 세계 전체를 남편의 기억으로 채울 수는 없다. 책장을 넘기고 노트에 적는 일은 모모코에게 아직 자기 질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감독은 좁은 생활 반경을 그대로 좁은 영화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익숙한 방에서 다른 공간이 열리고, 컴퓨터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이 그 상상에 들어온다. 미술가 시노미야 요시토시가 맡은 애니메이션에는 매머드도 등장한다. 인간의 한 생애를 훨씬 벗어난 시간에 마음이 가닿는 것이다. 나이 든 여자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이유로, 그의 상상까지 얌전히 집 안에 앉혀둘 필요는 없다.

집의 구성에도 익숙함과 뜻밖의 확장이 함께 있다. 감독은 자기 어머니의 집을 떠올리며 세트를 만들었고, 실제 집의 액자도 가져다놓았다. 그런 생활의 물건들 사이에서 방이 바뀌고 기다란 다다미 복도가 나타난다. 현실적인 집과 환상적인 공간을 서로 떨어진 세계로만 나누기 어렵다. 우리가 오래 산 집에서 갑자기 먼 기억에 빠져들듯, 모모코의 방도 지금 눈에 보이는 크기만으로 다 셀 수 없다.

베이스와 드럼이 놓인 방에서 회색 머리 여성이 몸을 움직이고 있다

외로운 사람이 노래할 때

모모코는 노래도 부른다. 다나카 유코는 이 장면을 어떻게 연기할지 고민하다 첫 만남에 자신이 생각한 노래를 준비해왔다. 감독이 그 자리에서 녹음한 것을 바탕으로 음악가 스즈키 마사토가 곡으로 다듬었다. 주인공의 마음을 설명할 음악이 배우가 생각해온 소리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누군가 모모코를 대신 위로해주는 음악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모코가 직접 노래할 자리가 생긴다.

그 장면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가 외로움을 극복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감독은 오히려 혼자라는 사정을 더 드러내려 노래 장면을 구상했다고 했다. 씩씩한 노래가 나왔다고 슬픔이 퇴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상반된 감정도 같은 날 찾아온다. 영화의 유쾌함은 모모코에게 그 복잡함을 허락하는 데서 나온다.

모모코의 집을 마음으로 헤아릴 때 처음보다 사람이 많아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외로움들에게는 서로 다른 목소리가 있고, 젊은 날의 모모코와 슈조에게는 함께 보낸 시간이 있다. 거기에 책을 읽으며 상상한 먼 세계도 들어온다. 혼자 산다는 사실은 여전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여자의 오늘을 다 알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진다. 다시 그의 집을 방문한다면 안부에 더해 물어볼 것이 생긴다. 요즘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무엇이 궁금해졌는지.

감상 포인트

◆ 외로움 셋의 대화 — 세 배우를 실제 방문객과 구별하면서 모모코와 말을 주고받는 호흡을 보자. 혼잣말을 여러 사람이 나누게 했을 때 망설임과 반박, 웃음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볼 수 있다.

◆ 두 나이의 모모코 — 현재의 모모코와 젊은 모모코가 이어지는 대목에 주목하자. 남편을 잃은 사정뿐 아니라 도시로 와서 자기 삶을 시작했던 사람의 시간까지 만나게 된다.

◆ 노트와 넓어지는 방 — 46억 년의 역사를 적는 노트, 익숙한 집에 나타나는 낯선 공간을 함께 보자. 걷고 다니는 범위가 작아졌다고 관심과 상상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화면의 변화로 드러난다.

◆ 모모코가 직접 부르는 노래 — 노래가 시작되었을 때 곧바로 행복한 장면이라고 단정하지 말고 모모코의 처지를 함께 생각해보자. 영화가 웃음과 쓸쓸함을 한 장면 안에 어떻게 머물게 하는지 들여다볼 기회다.

관련 작품

◆ 〈남과 여: 여전히 찬란한〉 (2019, 클로드 를루치) — 오래전 연인이 노년이 되어 다시 만난다. 젊은 시절의 화면과 지금의 얼굴이 함께 놓인다는 점에서 이어 볼 만하다. 한 사람을 현재의 나이만으로 알아볼 수 있는지, 지나간 사랑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묻는다.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2016, 케네스 로너건) — 형의 죽음으로 고향에 돌아온 남자가 조카를 돌봐야 하는 이야기다. 슬픔을 해결했다고 선언하기보다 그 마음을 지닌 채 하루를 살아가는 인물을 만난다. 두 영화의 웃음이 상실을 얼마나 복잡하게 만드는지도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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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