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이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만든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모으고 붙여 빈 곳을 가리는 데 정성이 대단하다. 〈아메리칸 허슬〉의 어빙 로젠펠드(크리스찬 베일)는 남을 속여 …
사기꾼이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만든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모으고 붙여 빈 곳을 가리는 데 정성이 대단하다. 〈아메리칸 허슬〉의 어빙 로젠펠드(크리스찬 베일)는 남을 속여 돈을 버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이 풍성한 머리숱의 소유자처럼 보이는지에는 꽤 관대한 모양이다. 관객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기꾼인지 알기도 전에, 남에게 보여줄 모습을 만드느라 애쓰는 시간을 먼저 본다.
연출을 맡은 데이비드 O. 러셀은 사기극의 시작에 이 준비 과정을 놓았다. 완성된 모습으로 사람을 홀리는 인물보다, 그 모습을 겨우 완성하고 나서는 사람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뒤이어 나오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 부유하게, 더 유능하게, 더 사랑받을 만하게 보이고 싶어 한다. 거짓말은 능숙해도 그 바람까지 숨기지는 못한다.
어빙의 연인이자 동업자인 시드니 프로서(에이미 아담스)는 영국 귀족 행세를 한다. 이름과 억양, 차림을 갖춰 금융계에 연줄이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어빙과 함께 벌이는 대출 사기에서 그 모습은 믿음을 얻는 데 쓰인다.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구해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일. 이들의 사업은 원하는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들려주는 데서 시작한다.
시드니의 옷은 그 거짓 신분과 따로 놀지 않는다. 의상 디자이너 마이클 윌킨슨은 인물들이 옷으로 자신을 어떻게 보여주려 하는지에 주목했다. 시드니의 옷차림은 새로운 삶에 어울리는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게 한다. 누가 속을지 계산하기에 앞서, 자신도 그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점이 재미있다. 사기를 치러 나가는 준비가 자신을 바꿔보는 즐거움과 겹친다.
하지만 두 사람을 처음 가깝게 하는 것은 가짜 신분증 같은 물건이 아니다. 함께 좋아하는 듀크 엘링턴의 음악이다. ‘Jeep’s Blues’를 알아듣는 순간, 잘 모르는 사람이 반가운 상대가 된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럴듯한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 두 사람이 여기서는 같은 노래에 마음을 놓는다. 공모 관계를 이해하기 전에 서로에게 끌린 이유가 들려온다.
이 작은 공통점 덕분에 이후의 관계도 단순한 이해타산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이익 때문에 함께 있는지, 정말 상대를 좋아하는지 칼로 자르듯 나누기 어렵다. 시드니는 어빙과 일하면서 자기 능력을 인정받고, 어빙은 자기 취향과 수법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다. 문제는 그가 집에 아내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깥에서 만든 새 삶이 잘 어울릴수록 남겨둔 관계도 더 거추장스러워진다.
두 사람을 붙잡은 FBI 요원 리치 디마소(브래들리 쿠퍼)는 이들의 솜씨를 수사에 이용한다. 사기꾼들을 풀어주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잡도록 돕게 한다. 그런데 협조를 강요하는 사람의 욕심이 만만치 않다. 판이 커질수록 어빙은 위험을 계산하고, 리치는 더 큰 실적을 상상한다. 남을 속이는 데 익숙한 사람이 오히려 그만하자고 말해야 하는 형편이 우습다.
리치가 사기꾼의 세계에 들어오면서 법을 집행하는 사람과 속이는 사람의 역할도 뒤섞인다. 그는 수사를 지휘할 권한이 있지만 모든 사람의 반응을 통제할 수는 없다. 시드니에게 끌리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하며, 상대가 자기 뜻대로 움직일 것이라 믿고 싶어 한다. 수사를 성공시키려는 욕망이 커질수록 자신이 속을 가능성은 덜 생각한다.
브래들리 쿠퍼의 리치는 그 들뜸을 숨기지 않는다. 어빙이 위험을 말할 때조차 자기 계획을 가로막는 소리로 듣기 쉽다. 둘이 같은 작전을 벌이고 있어도 바라는 끝은 다르다. 한쪽은 무사히 빠져나갈 길을 찾고 다른 쪽은 이 일을 통해 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서로 협력해야 하는 관계 안에 계속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이 함께 밟힌다.
그래서 영화의 긴장은 계획을 얼마나 치밀하게 짰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다. 방 안에 있는 사람 가운데 누가 갑자기 욕심을 부릴지, 누가 개인적인 감정을 일에 끌어들일지가 중요해진다. 모두가 남의 약점을 읽으려 하면서 자기 약점은 잘 보지 못한다. 관객은 다음 수를 예상하다가도 인물의 허영 때문에 그 예상부터 고쳐야 한다.
작전의 대상인 정치인 카마인 폴리토(제레미 레너)는 어빙에게 호의를 보인다. 지역을 살릴 투자와 일자리를 바라는 인물이다. 영화는 그를 처리하면 되는 표적으로만 두지 않는다. 어빙과 가까워지는 시간이 생기면서, 친해지기 위해 나눈 말 가운데 얼마가 연기였는지 어빙 자신도 편하게 정리할 수 없게 된다.
둘이 톰 존스의 ‘Delilah’를 함께 부르는 장면에는 그런 난처함이 있다. 사람을 속이려면 먼저 마음을 열게 해야 한다. 그런데 같이 노래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속이는 사람에게도 감정이 생긴다. 상대가 나를 믿기 시작했다는 것은 수법이 통한다는 뜻이면서, 곧 그 믿음을 배반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그 호감이 정치인의 모든 판단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빙에게는 이제 자기 행동의 결과가 특정한 얼굴로 돌아온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다는 사실이 이미 들어온 작전에서 손쉽게 빠질 길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영화가 실화에서 출발했어도 이 관계는 각색된 인물들의 드라마로 보아야 한다. 실제 사건 관계자들의 성품이나 책임을 이 친근한 모습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이 대목에서 베일의 어빙은 첫머리의 우스운 남자와 달라 보인다. 여전히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기꾼이지만, 상대를 속이는 일이 그에게도 전혀 상처 없는 기술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누구에게나 같은 말로 접근할 수 있다면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알아버린 뒤에는 다음 거짓말을 꺼내는 일도 처음과 같지 않다.
어빙의 아내 로잘린(제니퍼 로렌스)은 그가 바깥에서 꾸며낸 이야기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어빙에게는 상황을 망칠지 모르는 사람이고, 로잘린에게는 자신을 남겨두고 다른 삶을 사는 남편이 문제다. 사기극에 꼭 맞춰 정리된 인물 관계 밖에서 결혼생활의 불만이 밀고 들어온다.
로잘린이 집에서 ‘Live and Let Die’에 맞춰 청소하는 장면은 그 에너지를 압축한다. 거대한 작전과 상관없이 자기 집 안의 분노가 더 급하다. 제니퍼 로렌스는 그 감정을 점잖게 전달하기보다 노래와 몸의 움직임으로 크게 내보낸다. 화면에 그가 들어오면 다른 인물들이 정해둔 말의 순서가 어긋나고, 영화도 한층 소란스러워진다.
〈아메리칸 허슬〉의 화려한 옷과 음악은 이런 사람들의 과한 마음과 잘 어울린다. 작전만 효율적으로 따라가려 하면 인물들은 자꾸 시간을 끄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서로에게 잘 보이려 하고, 사소한 말에 발끈하고, 조금 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바로 그 번잡함이 이 사기극의 맛이다.
처음에는 누가 누구를 속일지 궁금해진다. 그러다 보면 누가 누구에게 진심인지도 알고 싶어진다. 첫 장면의 어빙이 공들여 머리를 정리했듯 모두가 자기 모습을 다듬어 나오지만, 사람을 만나고 나서는 준비하지 못한 감정이 생긴다. 완벽하게 속였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질투와 허영, 호감이 먼저 얼굴에 드러난다. 이 영화의 인물들이 수법보다 오래 기억되는 이유다.
◆ 거울 앞에서 들이는 시간 — 어빙이 머리를 완성하는 과정을 서둘러 넘기지 말자. 다른 사람 앞에 나서기 전에 무엇을 가리고 어떤 모습이 되려 하는지 드러난다. 이후의 자신만만한 행동을 볼 때도, 그 모습을 만드는 데 들인 애씀을 함께 떠올릴 수 있다.
◆ 시드니의 차림과 말투 — 시드니가 만들어낸 신분을 옷과 억양이 어떻게 뒷받침하는지 보자. 남을 설득하는 도구이면서 자신이 바라는 모습이기도 하다. 상대에 따라 태도가 달라질 때, 단순히 어느 말이 거짓인지보다 그 관계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 생각해볼 수 있다.
◆ 작전을 둘러싼 두 남자의 속도 — 어빙과 리치가 같은 제안에 얼마나 다르게 반응하는지 살펴보자. 더 나아가려는 사람과 위험을 줄이려는 사람이 한 팀에 묶여 있다. 정보의 양뿐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얼마나 과신하는지가 대화의 긴장을 만든다.
◆ 함께 부르는 노래, 혼자 부르는 노래 — 어빙과 카마인이 노래하며 가까워지는 순간과 로잘린이 집에서 감정을 터뜨리는 순간을 함께 들어보자. 음악이 시대의 유행을 들려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말로 설명하면 계산적으로 들릴 호감이나 불만이 몸과 목소리에서 먼저 나온다.
◆ 〈스팅〉 (1973, 조지 로이 힐) — 거대한 속임수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호흡과 관객에게 정보를 건네는 순서를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아메리칸 허슬〉과 이어 보면, 잘 맞아떨어지는 계획에서 오는 쾌감과 제멋대로인 사람들 때문에 계획이 흔들릴 때의 재미를 비교하기 좋다.
◆ 〈캐치 미 이프 유 캔〉 (2002, 스티븐 스필버그) — 여러 신분으로 살아가는 젊은 사기꾼과 그를 쫓는 수사관을 다룬다. 옷과 말투가 다른 사람의 신뢰를 얻는 데 어떻게 쓰이는지 볼 수 있다. 그럴듯한 인물이 되는 솜씨 뒤에서,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마음까지 따라가게 한다는 점이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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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