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슈의 한 시골 마을에서 버스가 하이재킹을 당해, 승객과 운전사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운전사와 어린 남매, 이렇게 셋뿐이다. 영화 〈유레카〉의 운전사 사와이(야쿠쇼 코지)…
일본 규슈의 한 시골 마을에서 버스가 하이재킹을 당해, 승객과 운전사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운전사와 어린 남매, 이렇게 셋뿐이다. 영화 〈유레카〉의 운전사 사와이(야쿠쇼 코지)와 중학생 오빠 나오키(미야자키 마사루), 초등학생 동생 코즈에(미야자키 아오이)가 그 셋이다. 사건 뒤 남매는 집에 틀어박혀 말을 하지 않고, 운전사는 버스 모는 일을 그만둔다. 2년 뒤 셋은 한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다. 운전사는 나오키에게 차 모는 법을 가르치고, 가르치는 동안 두 사람 모두 거의 입을 열지 않는다. 말을 잃은 남매와 운전사 사이에서는 운전처럼 손으로 하는 일이 말보다 먼저 온다.
〈유레카〉는 아오야마 신지 감독이 2000년에 만든 3시간 37분 길이의 흑백 영화다. 함께 사는 셋에게는 도쿄 출신인 남매의 사촌 아키히코(사이토 요이치로)가 합류한다. 주변에서 살인이 잇따르자 넷은 작은 버스를 타고 갈 곳을 정하지 않은 여행을 떠난다.
하이재킹 날을 담은 영화의 첫머리에는 서부극에서 가져온 소재가 둘 들어 있다. 버스에 오르기 전 코즈에가 뒤를 돌아보면, 새하얀 옷에 밀짚모자를 쓴 어머니(신교지 기미에)가 손을 흔든다. 마지막 승객이 오른 뒤 화면은 버스 안을 보여 주지 않고 곧장 주차장으로 넘어간다. 첫째 소재는 주차장에 들어서는 버스 앞에 불쑥 나타나는 말 한 마리다. 영화에서 말 한 마리가 등장하는 장면은 이것 하나뿐이다. 둘째는 멈춘 버스에서 뛰어나와 몸을 숨길 데 하나 없는 빈터를 곧장 달리다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한 남자다.
아오야마 신지는 이 첫머리에 서부극의 소재를 의도적으로 썼다고 밝혔다. 서부극이면서 서부극이 아닌 무언가를 만들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인터뷰에서 존 포드 감독의 〈수색자〉(1956)에서 받은 영향을 인정했다. 〈수색자〉는 이선(존 웨인)이 납치된 조카를 찾아 나서는 서부극이다. 아오야마는 포드에게서 대사 대신 행동과 멀리서 잡은 화면으로 감정을 보여 주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뒤에 나오는 운전 교습에서도 두 사람은 마음을 설명하는 대신, 함께 차를 움직이는 일을 한다.
살아남은 셋 가운데 하이재킹의 충격으로 말을 잃은 사람은 남매 둘이다. 나오키와 코즈에는 집에 틀어박혀 소리 내어 뜻을 주고받지 않지만, 상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아는 듯이 지낸다. 두 아이에게는 말 대신 서로가 있다. 운전사 쪽은 사정이 다르다. 밤에 혼자 앉아 램프를 켰다 껐다 되풀이하는 장면에서, 운전사 곁에는 아무도 없다.
사건 뒤 운전사는 고향을 떠나 여러 곳을 떠돈다. 그렇게 떠돌던 운전사와 남매가 한집에 살며, 셋의 조금 기묘한 공동생활을 시작한다. 운전사는 두 아이의 가족이 아니지만, 그날 같은 버스에서 함께 살아남은 어른이다. 함께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서로를 편하게 대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 영화에서 기계 다루는 법을 손으로 익히는 사람은 나오키만이 아니다. 버스 모는 일을 그만두었던 운전사도 불도저 운전을 배우다가, 버스를 다시 몰고 싶어진다. 영화에는 운전사가 호텔 찻집 같은 곳에서, 집을 나간 아내 유미코(고쿠쇼 사유리)를 몇 년 만에 만나는 장면도 있다.
인터뷰어 에비네 다케시는 불도저 장면과 나오키의 운전 교습 장면을 함께 들어, 이 영화에서는 말보다 손으로 하는 일이 먼저 온다고 짚었다. 아오야마 신지는 영화를 만드는 일 자체가 손으로 하는 일이고, 그 일로 살아남아 왔다는 감각이 그렇게 나온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아내를 만나는 장면도 처음부터 꼭 넣으려 했다. 겉줄거리만 따라가면 없어도 되지만, 운전사의 마음이 달라지려면 그럴 만한 까닭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아내와의 재회 뒤 운전사는 버스 한 대를 구한다.
운전사는 남매의 오빠 나오키에게 차 모는 법을 가르친다. 가르치는 동안 운전사는 거의 말이 없고, 나오키는 그렇게 배워 처음으로 제 손으로 차를 움직여 본다. 동생과 소리 없이 뜻을 나누던 나오키가, 이번에는 가족이 아닌 어른에게서 배운다. 불도저 운전을 배우던 운전사도 이 장면에서는 가르치는 사람이다. 나오키가 차를 움직여 보는 순간에는, 그가 자기 마음을 얼마나 말할 수 있는지보다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서툴더라도 스스로 움직여 볼 수 있다는 작은 가능성이 이 교습을 지켜보게 한다.
하이재킹에서 셋만 살아남는 이 영화의 흑백은, 목숨을 잃은 이들을 떠나보내는 애도를 생각해 고른 색이다. 아오야마 신지는 흑백이 애도와 관계된 색이라는 영화감독 장뤽 고다르의 말을 우연히 읽고, 자기 생각과 거의 같다고 느꼈다. 그에게 이 영화는 애도의 이야기였다. 화면은 가로가 세로보다 훨씬 긴 시네마스코프다. 여기에는 규슈 아소 지역의 풍경을 크게 담으려는 뜻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가로로 긴 버스였다. 하이재킹 날 운전사가 몰던 버스도, 그가 새로 구한 버스도 이 넓은 화면에 담긴다.
이 흑백은 흑백 필름으로 찍은 원판을 컬러 필름에 현상한 것이라, 화면에는 보통 흑백과 다른 색조가 돈다. 이 색조를 고안하고 크로마틱 블랙 앤드 화이트, 곧 색이 있는 흑백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촬영감독 다무라 마사키다. 일본 국립영화아카이브가 복원해 2023년 처음 상영한 필름도 이 색조를 되살렸다. 이 넓은 흑백 화면에는 운전사와 남매, 사촌까지 넷이 언덕에 말없이 앉아 있는 긴 장면도 담긴다. 말을 하지 않는 인물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오래 바라보고 나면, 누가 먼저 속마음을 털어놓을지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진다. 누군가에게 운전을 배우고 함께 차를 움직이는 일도, 이들에게는 서로에게 다가가는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첫 화면을 가로막는 산 — 영화의 맨 처음 화면을 보자. 소녀의 머리 너머로 찍은 첫 화면에서 시야가 곧바로 산에 막힌다. 버스를 타고 떠날 채비를 하는 소녀 앞을 산이 막고 있다. 이동을 앞둔 장면인데도 시야는 트이지 않는다는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 포장도로 위의 피 묻은 손 — 하이재킹 날 장면에서 포장도로 위에 피 묻은 손 하나가 놓인 화면을 찾아보자. 아오야마 신지는 결과를 먼저 보여 주고 원인은 관객이 짐작하게 두는 편이, 차례대로 말하는 것보다 강하다고 했다. 사건의 전말을 알아내기 전에 먼저 누군가 다쳤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범행을 설명하는 정보보다 피해를 입은 몸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순서다.
◆ 수액이 흐르는 잘린 나뭇가지 — 막 잘린 나뭇가지에서 수액이 흘러나오는 모습을 카메라가 오래 붙드는 화면을 찾아보자. 아오야마 신지는 이 영화를 사람과 사람의 다툼보다 사람과 자연 사이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사람은 자연에서 제 슬픔을 보지만 자연에는 아무 감정도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잘린 가지를 아프게 느끼게 되는 쪽은 나무가 아니라 그것을 보는 우리다.
◆ 소의 눈높이에서 잡은 소들 — 들판을 건너는 장면을 보자. 풀을 뜯는 소들을 소의 눈높이에서 가까이 잡은 화면이 나온다. 사람의 눈높이에서 풍경을 내려다볼 때와 달리, 풀을 뜯는 동물이 화면 가까이에서 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물들이 지나가는 들판에도 이들의 사정과 무관한 생활이 있다는 데 눈길이 간다.
◆ 〈수색자〉 (1956, 존 포드) — 남북전쟁에서 돌아온 이선(존 웨인)이 코만치족에게 납치된 조카를 찾아 여러 해를 떠도는 서부극이다. 아오야마 신지가 〈유레카〉를 만들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영화다. 대사로 마음을 설명하지 않는 대목에서 인물의 행동과 거리를 살펴볼 만하다. 아오야마가 서부극에서 배웠다고 한 표현이, 말을 잃은 남매의 이야기에서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할 수 있다.
◆ 〈히로시마 내 사랑〉 (1959, 알랭 레네) — 평화를 다룬 영화를 찍으러 프랑스 배우(엠마누엘 리바)가 히로시마에 온다. 그곳에서 일본인 건축가(오카다 에이지)와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이야기다. 아오야마 신지가 〈수색자〉와 함께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한 작품이다. 두 사람이 전쟁 때의 기억을 긴 대화로 꺼내는 영화라, 말이 드문 〈유레카〉와 이어 보면 두 영화가 말을 다루는 방식이 뚜렷하게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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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