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이 다시 나타나는 영화에서 밥 먹는 장면이 마음에 걸린다. 〈달이 지는 밤〉에는 엄마와 딸이 마주 앉은 식탁이 있고, 연인이 함께 먹는 밥이 있다. 두 감독이 무주에서 …
죽은 사람이 다시 나타나는 영화에서 밥 먹는 장면이 마음에 걸린다. 〈달이 지는 밤〉에는 엄마와 딸이 마주 앉은 식탁이 있고, 연인이 함께 먹는 밥이 있다. 두 감독이 무주에서 찍은 이야기는 계절도 분위기도 다르다. 한쪽에서는 떠나간 사람을 찾아가고, 다른 쪽에서는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 죽은 이의 이야기가 섞인다. 그런데 낯선 존재를 만나는 일보다 누군가와 한 끼를 나누는 일이 오래 생각난다. 그 사람이 돌아온다면, 특별한 말보다 평소처럼 같이 밥을 먹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첫 이야기는 무주에 도착한 여인(김금순)을 따라간다. 그가 찾는 것은 딸(안소희)의 흔적이다. 뒤이어 나오는 이야기는 고향으로 돌아와 군청에서 일하는 민재(강진아)와 연인 태규(곽민규)의 생활로 들어간다. 죽음을 다루지만 두 이야기를 이어서 보는 기분은 내내 가라앉아 있지만은 않다. 추운 계절을 지나면 사람들의 말소리와 여름의 풍경이 기다린다. 떠난 사람 생각을 하다가도 살아 있는 사람들 곁에 조금 더 머물고 싶어진다.
첫 부분을 연출한 김종관 감독은 벽이 무너진 집을 촬영 장소로 골랐다. 사람이 떠난 뒤 남은 공간에 과거의 모습을 겹쳐놓고 싶었다고 한다. 집 안과 밖을 나누던 벽이 사라지자, 원래라면 보이지 않았을 생활의 자리가 드러난다. 비어 있는 집을 보는 일과 그곳에 살았을 사람을 떠올리는 일이 함께 일어난다.
무너진 벽은 그 자체로 쓸쓸한 풍경이다. 하지만 여인이 딸의 흔적을 찾아가는 이야기 속에서는 단순히 낡은 건물로 지나치기 어렵다. 누가 여기 앉았을까, 어떤 말을 주고받았을까. 살림이 빠져나간 자리에서도 생활을 상상하게 된다.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오히려 그 사람을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은 대사로 사연을 자세히 풀어주지 않는다. 여인이 어디로 가는지, 딸의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먼저 눈이 간다. 말이 적으니 모든 행동의 의미를 알아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만이 이 모녀를 만나는 방법은 아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과 함께 놓인 공간을 보는 동안,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부터 알아볼 수 있다.
장소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영화에서는 배경을 잠깐 더 볼 만하다. 인물이 지나간 뒤에도 그 자리에는 나무와 집과 길이 남는다.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곳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길일 수 있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무주의 풍경이 한 사람의 기억과 이어지면서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두 번째 부분을 연출한 장건재 감독은 무주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민재는 서울에서 학교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엄마 숙희(안민영)는 딸이 다시 내려온 것을 마냥 반기지 않는다. 한편 태규는 아픈 할머니를 돌보며 조부모가 살던 집을 지키고 있다. 같은 동네에 사는 두 사람에게도 여기 남아 있는 사정은 서로 다르다.
민재와 엄마가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에는 딸의 연애에 대한 못마땅함이 섞인다. 돌아와 함께 산다고 서로의 선택까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소중한 것과, 마주 앉으면 잔소리가 나온다는 사실이 한 식탁에 있다. 앞선 모녀의 이야기를 지나왔기 때문에 이 평범한 불만도 예사롭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그리운 사람과 다시 만난다고 상상할 때 우리는 대개 이런 잔소리까지 떠올리지는 않으니까.
태규가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에 관한 꿈을 이야기할 때도, 죽음은 생활과 동떨어진 큰 사건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꿈에서 본 사람을 이야기하는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어젯밤 얘기를 건네는 일이기도 하다. 떠난 사람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거창하게 증명할 필요가 없다. 대화하다 이름을 꺼내고, 기억난 모습을 말해보는 동안 이미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
군청 회의와 마을 방문 장면에는 실제 무주 주민들이 참여했다. 민재를 맡은 강진아는 촬영 전에 군청 직원들의 일을 지켜보는 시간도 가졌다. 장건재는 그곳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들과 함께 장면을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화면에 보이는 동네는 주인공이 잠깐 방문하는 여행지만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매일 출근하고 이웃을 만나는 곳이다.
이 차이는 영화를 보는 관심도 조금 바꾼다. 산과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만 보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누구를 만나러 다니는지 살펴보게 된다. 무주로 돌아온 민재의 선택 역시 막연한 귀향으로 남지 않는다. 그에게는 직장이 있고 동료가 있으며 일이 이어지는 장소가 있다.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말 뒤에 실제 하루가 붙는다.
주민들의 참여가 모든 장면을 기록 영화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과 실제 동네에서 살아온 이들이 한 장면을 이루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 주인공의 사정만 따라갈 때보다 주변의 사람들이 더 궁금해진다. 영화가 끝나도 이곳에서는 내일 아침 회의가 열리고 누군가는 다시 시장에 갈 것 같다. 사라진 이를 이야기하는 영화에 그 생활감이 남는다는 것이 반갑다.
두 감독이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김종관은 이미지와 움직임에, 장건재는 일상적인 대화에 무게를 둔다. 앞에서는 말없이 지나가는 사람의 걸음을 따라갔다면, 뒤에서는 별일 아닌 듯 시작한 대화를 듣게 된다. 그리움이 언제나 같은 표정이나 목소리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두 이야기를 지나며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달이 지는 밤〉을 보고 떠올리게 되는 재회는 꼭 극적인 모습일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놓거나 미뤄둔 문제를 한꺼번에 풀지 못해도, 마주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어떨까. 상대가 늘 하던 잔소리를 또 한다면 귀찮으면서도 반가울 것 같다. 죽은 사람이 등장하는 영화가 살아 있는 사람과의 다음 식사를 조금 기다리게 한다. 아직은 함께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지 않게 알아차리게 해준다.
◆ 벽이 무너진 집 — 여인이 머무는 공간에서 집 안과 바깥이 어떻게 함께 보이는지 살펴보자. 사람이 없는 자리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바라보면 과거를 설명하는 대사 없이도 생활을 상상하게 된다. 폐허의 쓸쓸함과 누군가 살았던 집의 친숙함이 함께 느껴지는 대목이다.
◆ 두 모녀의 식탁 — 앞뒤 이야기의 모녀가 밥을 먹는 장면을 함께 떠올려보자. 같은 행동이라도 두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과 매일 만나기에 생기는 불만을 나란히 생각하면 평범한 식사가 조금 더 소중하게 보일 수 있다.
◆ 꿈 이야기가 나오는 대화 — 태규가 할아버지를 이야기할 때, 그 말이 어떤 일상적인 대화와 함께 놓이는지 들어보자. 떠난 이를 기억하는 일은 특별한 추모의 시간에만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꿈 얘기를 들려주는 동안에도 그리움이 전해질 수 있다.
◆ 계절이 바뀌는 순간 — 두 부분을 이어 볼 때 풍경뿐 아니라 말소리와 인물들의 움직임이 주는 기분도 살펴보자. 앞선 이야기의 감정이 남아 있는 채 새로운 생활을 만나게 된다. 두 영화를 따로 보았을 때와 한 편으로 보았을 때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 〈경주〉 (2014, 장률) — 한 남자가 오래전 기억을 찾아 익숙하면서도 낯선 도시를 걷는다. 풍경을 알아보는 마음과 그곳에서 새로 만난 사람에게 기우는 마음이 함께 움직인다. 장소가 단순한 배경을 넘어 기억을 불러오는 방식을 이어서 살펴볼 수 있다.
◆ 〈유레카〉 (2000, 아오야마 신지) — 큰 사건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함께 생활하고 이동하는 시간을 따라간다. 말로 속마음을 모두 설명하지 않아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관계를 바꿀 수 있다. 슬픔을 곧바로 해결하지 않은 채 다음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조금 더 오래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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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