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과장(한석규)은 대통령의 만찬을 준비하러 왔다. 그런데 상관인 김부장(백윤식)이 갑자기 대통령을 죽이겠다고 한다. 조금 전까지 챙기던 행사에서 이제 총을 쏴야 한다. 〈그때 그…
주과장(한석규)은 대통령의 만찬을 준비하러 왔다. 그런데 상관인 김부장(백윤식)이 갑자기 대통령을 죽이겠다고 한다. 조금 전까지 챙기던 행사에서 이제 총을 쏴야 한다. 〈그때 그사람들〉은 이 터무니없는 업무 변경을 장엄한 결단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명령을 받은 사람은 놀랄 틈도 충분하지 않은 채 움직여야 한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사건의 이름으로 기억한다. 임상수의 영화는 그날 오후부터 다음날 아침까지의 시간을 여러 인물에게 나누어준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 옆에서 듣는 사람, 뒤늦게 끌려드는 사람의 하루는 같지 않다. 사건의 결말을 알아도 이들이 당장 무엇을 하게 될지는 신경 쓰인다. 누가 어느 정도 알고 움직이는지부터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김부장의 하루는 권력자의 위엄과 조금 어긋나게 시작한다. 대통령의 행사에 동행하려 했지만 헬기에 자리가 없어 가지 못한다. 병원에서는 건강이 좋지 않으니 쉬라는 말을 듣는다. 집무실로 돌아와 몸을 돌보던 그에게 대통령 만찬 소식이 전해진다. 큰 결심을 앞둔 인물의 비장한 독백 대신, 밀려난 자리와 좋지 않은 몸 상태가 먼저 소개된다.
대통령 곁에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는지는 이 사람의 직함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일정에 함께 갈 수 있는지, 술자리에 불리는지,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대하는지가 중요하다. 김부장은 강한 권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동시에 윗사람의 관심과 가까운 경쟁자의 태도에 흔들린다. 그가 아래 사람들에게 행사할 수 있는 힘과, 위를 향해 느끼는 불안이 함께 보인다.
만찬장에서 경호실장은 거만하게 행동하고 김부장의 심기는 불편해진다. 이 사소해 보이는 감정의 움직임 옆에 국가의 가장 높은 자리가 있다. 관객은 두 영역을 쉽게 떼어놓을 수 없다. 공적인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어떻게 어울리는지가 그날 밤 벌어지는 일과 붙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 속 불쾌함을 실제 10·26의 유일한 원인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인물과 대화를 구성한 극영화다. 영화가 먼저 보여주는 것은 권력의 중심에 있어도 사람의 몸은 아프고 기분은 상한다는 점이다. 그 몸과 기분을 지닌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 이후를 불안하게 만든다.
김부장은 주과장과 수행비서 민대령(김응수)을 불러 계획을 알린다. 주과장은 그 명령을 현장에서 실행할 사람들을 움직여야 한다. 위에서 한마디로 결정한 일이 아래에서는 여러 사람의 행동으로 나뉜다. 누구는 사람을 지키고 누구는 총을 준비하며, 누군가는 자신에게 내려온 지시만 알고 사건 속에 들어간다.
이렇게 내려오는 명령을 따라가면 같은 편이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 차이를 가리는지 보인다. 처음 결심한 사람과 마지막에 동원된 사람이 같은 정보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행동의 결과는 정보를 충분히 받았는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부하들은 자신이 맡은 일을 처리하면서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일에 참여한다.
주과장은 그 사이에 낀 인물이다. 상관의 계획을 받아들여야 하면서 아래 사람에게는 지시를 내린다. 그를 따라보면 무엇을 믿느냐만큼 지금 누구의 말을 거절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다. 상관 앞에서의 머뭇거림이 아래 사람 앞에서는 명령으로 바뀐다. 조직의 위계가 실제 행동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 불균형은 관객에게도 묘한 위치를 준다. 관객은 대통령이 살해되는 사건임을 알지만, 화면 속 어떤 사람은 눈앞의 지시를 따르느라 분주하다. 우리가 더 많이 안다고 해서 그 인물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다음 일을 무사히 해내기를 바라다가, 해내면 더 깊이 연루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일을 잘 처리하기를 응원하기도 난감한 밤이다.
김부장이 총을 쏘는 과정은 그가 마음먹은 대로 매끈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총이 고장나자 밖으로 나와 다른 총을 찾는다. 거사를 벌인 사람이 정작 필요한 도구를 구하러 허둥댄다. 생사가 오가는 순간인데, 행동의 모양은 준비가 틀어진 사람이 급히 수습하는 모습이다.
이때 생기는 웃음을 인물이 바보라서라고만 설명하면 중요한 긴장을 놓친다. 총의 고장은 사람을 죽이려는 의지를 없애주지 않는다. 다시 작동하는 총을 구하면 폭력은 계속될 수 있다. 어처구니없는 움직임을 보고 웃는 동안에도 다음 총성이 무엇을 할지 알고 있다. 우스운 동작과 위험한 결과가 붙어 있다.
총을 든 사람의 능숙함은 영화에서 쉽게 권위가 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총을 가졌다는 사실과 상황을 통제한다는 사실이 자꾸 어긋난다. 김부장에게 결심은 있지만 그 결심 이후의 모든 일이 정리되어 있지는 않다. 한 사람을 향해 쏠 수 있는 힘과 그다음 나라의 움직임을 결정할 능력은 다른 문제다.
여기서부터 관객의 관심은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기는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명령을 내린 사람이 다음 상황도 책임질 수 있는지, 주변의 사람들은 무엇을 알고 기다리는지가 중요해진다. 총을 찾느라 잠시 멈춘 행동 안에 그보다 큰 불안이 있다. 권력의 한가운데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토록 임기응변에 기대고 있다는 불안이다.
영화에는 만찬에 불려온 여성들도 있다. 가수(김윤아)와 여대생 조씨(조은지)는 남자들이 벌이는 계획을 세우거나 지휘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도 행사에 초대된 방식과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 그들에게는 권력의 향방보다 지금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일이 먼저일 수밖에 없다.
이 두 사람에게 시선을 옮기면 만찬장의 의미도 달라진다. 누군가에게는 권력을 확인하는 친밀한 자리지만, 누군가에게는 불려온 자리다. 그 장소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같은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주과장 아래의 부하들과도 다른 방식으로, 여성들은 다른 사람이 정한 상황을 감당한다.
임상수는 군사문화 속 남자들의 사고방식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에 앞뒤 여성 내레이션을 두었다고 설명했다. 남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만으로 영화가 끝나지 않게 한 선택이다. 행동하는 사람의 자신감과 그 행동을 바깥에서 말하는 목소리 사이에 거리가 생긴다. 스스로 중대한 일을 한다고 믿는 사람의 설명이 유일한 설명은 아니다.
이 영화의 제목에는 대통령도 김부장도 아닌 '그사람들'이 있다. 한 사람을 지워도 사건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화가 나누어준 하루는 줄어든다. 만찬을 챙기고 운전하고 지시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 함께 봐야 이 밤이 더 무서워진다. 역사를 바꾸겠다는 말 한마디가 여러 사람에게 당장 처리해야 할 위험한 일이 되어 내려오기 때문이다.
주과장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나면 사건의 이름이 잠시 다르게 들린다. 날짜 네 자리로 정리된 일 안에 그날 자기 일을 하러 온 사람들이 있다. 권력자를 우스워할 수 있게 만드는 영화이면서, 그 권력자가 일을 벌였을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돌리게 하는 영화다. 웃음이 잦아든 뒤 오래 남는 것은 일을 시킨 목소리와 그 말을 듣고 움직여야 했던 사람 사이의 거리다.
◆ 김부장의 하루 일정 — 헬기 동행에서 제외되고 병원에 들르는 도입을 보자. 높은 직위와 개인의 몸 상태, 가까운 권력자를 향한 관계가 함께 소개된다. 저녁의 결정에 곧장 의미를 붙이기 전에 영화가 이 사람을 어떤 하루 속에 놓는지 살필 수 있다.
◆ 명령이 내려가는 순서 — 김부장의 결심이 주과장과 민대령, 다른 부하들의 행동으로 바뀌는 과정을 따라가보자. 같은 사건에 참여해도 각자가 아는 것은 다르다. 누가 설명하고 누가 움직이는지에 따라 이들의 처지가 보인다.
◆ 고장난 총 앞의 몸짓 — 계획과 실제 행동이 어긋나는 순간에 주목하자. 우스워지는 동작이 다음 폭력의 위험을 지워주지는 않는다. 웃음과 두려움을 장면 하나 안에 함께 놓는 영화의 방식이 드러난다.
◆ 만찬에 불려온 사람들 — 가수와 여대생이 이 자리에 어떤 이유로 와 있는지 기억하며 보자. 계획을 세운 남자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이유로 같은 역할인 것은 아니다. 앞뒤의 여성 내레이션까지 들으면 사건을 말할 위치가 달라질 때 평가도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 〈바람난 가족〉 (2003, 임상수) — 가족을 이루는 어른들의 욕망과 갈등을 다룬다. 관계의 이름이 실제 생활을 얼마나 설명해주는지 의심하는 시선이 있다. 〈그때 그사람들〉에서 직함 뒤의 사람을 보았다면, 이 작품에서는 가족의 역할 뒤에서 움직이는 욕망을 따라가볼 수 있다.
◆ 〈3인조〉 (1997, 박찬욱) — 서로 다른 사정으로 범죄에 뛰어든 세 사람의 동행이다. 총을 쥐었다고 계획을 뜻대로 통제할 수는 없다는 점, 우스운 소동에도 인물의 불안한 처지가 남는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역사적 권력과 무관한 사람들이 벌이는 범죄를 비교하면 웃음의 방향도 달라진다.
──────────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