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이 감옥이 될 때 | MovieLAB LAB

범죄 현장을 찍던 사진가 아담(이딜 푸트라)은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잔혹한 살인 현장을 본 뒤로 불길한 환영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도 카메라를 놓지는 않았다. 방 안에서…

한 장의 사진이 감옥이 될 때 | MovieLAB LAB

범죄 현장을 찍던 사진가 아담(이딜 푸트라)은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잔혹한 살인 현장을 본 뒤로 불길한 환영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도 카메라를 놓지는 않았다. 방 안에서 이웃들의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낸다. 사람들과 직접 부딪치지 않고도 바깥을 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던 중 맞은편 아파트에 이사 온 이바(프리시아 나수티온)에게 눈길이 간다.

〈흑마술사〉는 아담의 이 호기심을 연쇄살인 사건과 엮는다. 멀리서 바라보던 이웃에게 가까이 갈수록, 그가 피해 있던 기이한 사건에도 다시 발을 들이게 된다. 그리고 사진의 역할이 달라진다. 범죄를 풀 단서일 줄 알았던 오래된 사진이 누군가의 영혼을 가둔 물건일 수도 있다. 카메라로 세상을 기록하던 사람에게, 찍는다는 행위부터 새로 생각해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실내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세 남자

창문 너머의 사람을 만난다는 것

형사 만(샤헤이지 삼)은 친구인 아담에게 수사를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끔찍한 연쇄살인의 현장을 읽어내려면 사진가의 눈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담에게 현장은 차분히 살펴볼 수 있는 대상만은 아니다. 이미 그곳에서 본 것 때문에 일상이 무너졌다. 형사가 더 보려고 하는 사건에서 사진가는 겨우 물러나 있는 셈이다.

한편 아담은 이바에게 끌린다. 사진으로 이웃을 바라볼 때에는 자기 방에 남아 있을 수 있지만, 누군가를 알고 싶어지면 그 거리만으로는 부족해진다. 보르네오에서 온 이 여자의 사정을 알아가는 일은 낯선 믿음과 비밀을 접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담은 카메라 뒤에서 관찰하는 자리와, 상대의 일에 직접 얽히는 자리 사이를 오간다.

영화는 만의 수사와 아담이 이바를 알아가는 과정을 나란히 이어간다. 만은 살인의 이유를 알아내야 하고, 아담에게는 궁금한 사람이 생겼다. 이바를 둘러싼 수수께끼가 살인사건과 이어지면서 두 사람의 관심도 만난다. 범인을 찾기 위해 들여다보던 사진 속에, 이바가 구하려는 영혼들이 갇혀 있다.

사진에 남는 것이 얼굴만은 아니라면

다인 사이드 감독이 이 이야기를 떠올린 계기 역시 사진 한 장이었다. 보르네오를 여행했던 노르웨이 연구자 카를 룸홀츠의 사진에서, 여성들이 시냇물에 몸을 씻고 있었다. 그들이 사진 촬영의 나쁜 영향을 씻어내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감독은 그 기록에서 카메라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시선을 발견했다.

영화는 이 생각을 오래된 유리 사진 원판으로 옮긴다. 이바에게 사진 속 영혼을 풀어주는 일은 지나간 역사를 알아보는 일이 아니라 지금 해결해야 할 절박한 문제다. 사진을 보존한다는 말도 이 설정 안에서는 안심할 수 있는 말이 되지 못한다. 오래 간직해온 이미지가 그 안의 존재를 오래 붙잡아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설정은 아담의 직업을 한층 기묘하게 만든다. 범죄 현장을 촬영하는 일은 눈앞의 흔적을 남겨 나중에 다시 살필 수 있게 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사진에 영혼까지 붙잡힐 수 있다면, 기록을 남기는 행동이 대상에게 어떤 일을 일으키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아담은 증거를 잘 읽는 능력만으로 이 사건을 따라갈 수 없게 된다. 자기가 익숙하게 해온 일을 다른 이가 어떻게 겪는지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사진 속 사람은 촬영이 끝난 뒤 다른 곳으로 갔을 것이라고 우리는 쉽게 생각한다. 〈흑마술사〉의 상상은 바로 그 지점을 붙든다. 이미지에서는 한순간이 멈췄는데, 그 안에 갇힌 존재에게는 시간이 계속된다면 어떨까. 오래된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한결 서늘해진다. 이 영화에서 과거는 정리해둔 기록처럼 얌전히 머물러 있지 않는다.

울창한 잎 사이의 두 인물

도시의 아파트에도 혼령이 산다

이야기의 무대가 현대 도시라는 점은 이 상상을 더 흥미롭게 한다. 카메라가 건너다보는 아파트 창문, 이웃에게 생기는 관심, 형사가 조사하는 살인사건은 낯익은 범죄영화의 재료다. 그 생활 속으로 주술과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들어온다. 전설을 만나기 위해 아주 먼 옛날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바로 맞은편 방에 사는 사람이 우리가 모르는 세계와 이어져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도 각자 가지고 온 기억과 믿음까지 같아지지는 않는다. 이바가 보르네오에서 왔다는 설정은 그 차이를 아담의 생활 안으로 가져온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같은 물건을 보아도 사진의 의미는 둘에게 다를 수 있다. 이 차이가 살인사건과 얽히면서 초자연적인 이야기가 도시의 일상과 분리되지 않는다.

음악에도 두 세계를 함께 놓으려는 선택이 있다. 감독은 현대적인 느낌 안에 전통의 흔적을 두고 싶었다고 설명했고, 작곡가는 1940~50년대 스릴러 음악에서 재료를 가져왔다. 오래된 범죄영화의 기운이 말레이시아의 주술적 상상과 만나는 셈이다. 범인을 추적하는 긴장 속에 낯선 전설이 스며드는 이 영화의 성격과 잘 맞는다.

〈흑마술사〉에서 유난히 신경 쓰이는 것은 카메라를 든 사람의 자리다. 프레임 바깥에 서 있으니 자기는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찍힌 사람이 그 사진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면, 찍는 쪽도 더는 구경꾼으로만 남기 어렵다. 셔터를 누르는 데는 잠깐이면 충분하다. 이 영화는 그 짧은 순간이 끝난 뒤에도 사진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의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

감상 포인트

◆ 아담이 카메라를 향하는 곳 — 범죄 현장을 찍던 사람이 집 안에서 이웃들을 촬영한다는 변화를 기억해두자. 같은 도구로 보고 있어도 대상과의 거리는 다르다. 사진가가 관찰만으로 머물 수 없게 되는 과정이 사건의 전개와 함께 움직인다.

◆ 형사와 사진가의 서로 다른 관심 — 만이 사건을 조사하는 동안 아담은 이바에게 가까워진다. 두 사람이 얻은 정보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나누어 보자. 사람의 비밀을 알아내는 일이 수사와 연애에서 각기 다른 긴장을 만들어낸다.

◆ 오래된 사진을 대하는 태도 — 유리 원판이 누구에게는 자료이고 누구에게는 절박한 문제라는 차이를 살펴보자. 사진이 단순한 단서에서 벗어나 인물의 삶에 영향을 주는 물건이 된다. 한 장의 이미지를 두고도 이해가 엇갈릴 수 있다는 설정이 공포를 만든다.

◆ 익숙한 도시와 낯선 믿음 — 아파트와 수사의 일상 안으로 주술이 들어오는 방식을 보자. 시대나 공간이 완전히 바뀌어야만 환상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가 같은 장소에 겹쳐 있다는 점이 이 도시의 미스터리를 만든다.

관련 작품

◆ 〈이창〉 (1954, 알프레드 히치콕) — 다리를 다쳐 집에 머무는 사진가가 맞은편 이웃을 살피다가 살인을 의심한다. 관찰하는 자리에서는 상대의 삶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창문과 카메라로 확보한 거리에서 시작해 점점 사건에 얽혀드는 구조를 함께 볼 수 있다.

◆ 〈버닝〉 (2018, 이창동) — 종수(유아인)가 해미(전종서)와 벤(스티븐 연)을 알아가며 품는 관심과 의심을 따라간다. 가까이에서 보았다는 사실만으로 상대의 사정을 다 알게 되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 끌리면서 그 사람을 이해하려 애쓰는 일이 미스터리의 불안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이어볼 만하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