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하루〉의 세 번째 이야기 〈공항남녀〉에서 고니(이소연)와 이시다(시오타 사다하루)는 서로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그런데 실제 촬영장에서 상대 배우는 한국어를 잘…
〈눈부신 하루〉의 세 번째 이야기 〈공항남녀〉에서 고니(이소연)와 이시다(시오타 사다하루)는 서로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그런데 실제 촬영장에서 상대 배우는 한국어를 잘했다고 이소연은 전했다. 영화 속 언어 장벽은 배우들이 촬영할 때 겪은 곤란을 그대로 옮긴 결과가 아니었다. 이소연은 오히려 일본어 대사를 일부러 기억하지 않은 채 연기했다. 대본을 아는 배우가 상대의 말을 모르는 인물로 연기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민동현 감독이 이 만남을 떠올린 계기는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경험이었다. 우연히 만난 일본인과 말이 잘 통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은 편하게 이야기를 하게 됐다. 이해받지 못해 답답했던 기억보다, 언어가 막히자 오히려 무언가를 털어놓을 수 있었던 기억이 영화에 남았다. 그 경험을 인천공항으로 옮기자 떠나야 할 사람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잠시 함께 있는 이야기가 됐다.
공항 서점에서 일하는 고니와 비행기를 놓친 이시다는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소연은 당시 밝은 역할을 하고 싶었고, 〈공항남녀〉의 시나리오를 그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코믹하고 엉뚱한 면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 인물이라고 고니를 설명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설정은 여기서 웃음과 연결된다. 상대의 말을 놓친 사람이 어떤 몸짓을 하고, 무엇을 엉뚱하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해진다.
이소연이 촬영 중 소개한 장면에는 그런 몸의 반응이 있다. 모르는 남자가 따라오자 달아나던 고니가 뒤를 돌아보다가 팔로 그의 얼굴을 치게 된다. 경계하다 도망가고, 쫓아오는지 확인하려던 움직임이 또 다른 사건을 만든다.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있어도 그 말을 정확히 주고받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는, 이렇게 의도보다 먼저 나가버리는 동작이 생긴다.
배우가 일본어 대사를 미리 기억하지 않은 선택도 이 관계와 잘 맞는다. 대사의 뜻을 알고 상대가 끝내기만 기다리는 표정과, 지금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살피는 표정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소연은 후자의 상태에 자신을 놓으려 했다. 감독이 공항에서 경험한 불완전한 대화에 배우가 자기 연기 방식으로 다가간 것이다.
이 선택을 알고 보면, 관객이 배우보다 말을 더 많이 이해하는 순간에도 다른 재미가 생긴다. 고니가 아직 알아듣지 못한 말을 관객은 자막으로 먼저 알 수 있다. 그러면 뜻이 전달될지뿐 아니라 고니가 상대의 얼굴과 몸짓에서 무엇을 짐작할지가 궁금해진다. 두 사람의 대화에는 말의 내용과 그 말을 받아들이는 속도 사이에 간격이 있다. 민동현은 그 간격을 두 사람이 함께 있어야 할 시간으로 만들었다.
민동현이 일본어 연기를 확인할 때 의지할 협업자도 있었다. 이 작업에는 통역과 스크립터를 맡은 안도 다이스케가 참여했다. 그는 먼저 김성호 감독의 〈보물섬〉에서 일한 뒤 민동현에게 소개됐다. 한 편의 옴니버스 안에서 함께 일할 사람을 이어준 것이다.
안도는 처음에 시나리오 번역과 배우 통역을 맡았다가 촬영 중 스크립터로도 일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가 맡은 작업들에서는 일본어 대사 연기의 NG 여부를 판단하는 일까지 있었다. 촬영 시간이 부족할 때 어디까지 받아들여도 될지 고민했다고 한다. 단어의 뜻을 한국어로 바꿔 전달하는 일에 더해, 실제로 말하는 방식이 장면에 맞는지 들어야 했던 셈이다.
일본어 대사의 정확함과 연기 속에서 들리는 어감은 화면의 움직임만 봐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통역 스태프의 판단이 들어오면 눈앞의 연기를 다시 살필 근거가 늘어난다. 말이 막힌 두 사람의 장면을 만드는 동안 카메라 밖에서는 더 많은 소통이 필요했다. 완성된 화면의 어색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려는 작업이다.
민동현은 옴니버스에 참여하며 다른 감독들이 시나리오를 논의하고 촬영해 완성하는 과정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눈부신 하루〉는 서로 다른 세 이야기를 모은 영화인 동시에 감독들이 서로의 작업 방식을 접할 기회였다. 안도가 다른 편에서 이쪽 현장으로 온 사례는 그 교류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각자의 이야기를 지키면서도 한 작품에서 얻은 협업의 경험을 나눌 수 있었다.
고니가 자신의 꿈을 말하는 옥상은 실제로는 공항 근처 마트의 옥상이었다. 민동현은 원래 활주로가 보이는 전망대를 생각했지만 사용할 수 없게 됐고, 조명 여건에도 제약이 있었다. 공항과 재질이 비슷해 보이는 다른 공간을 골라 장면을 만들었다. 인천공항이라는 구체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에서도, 인물에게 필요한 자리를 찾는 일은 건물의 경계 밖으로 이어졌다.
감독이 그 공간에서 얻고 싶었던 것은 바람의 이미지였다. 두 사람이 말로 충분히 나누지 못한 희망을 바람으로 전해보고 싶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대화를 잘하게 만들거나 누군가에게 긴 설명을 맡기는 대신, 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장소의 느낌을 바꾼 선택이다. 앞서 엇갈리고 부딪치던 만남에 잠깐 머물 자리가 생긴다.
공항은 한 사람에게는 일터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기다리는 곳이다. 따라서 같은 장소에 있어도 두 사람이 머무는 이유와 시간은 다르다. 잠깐 만난 상대에게 꿈을 말하는 순간에는 그 차이가 조금 느슨해진다. 누군가에게는 늘 다니는 곳이 그날만큼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이다. 민동현이 자신의 공항 경험에서 가져온 것도 이런 일시적인 만남의 여지였다.
옥상을 대신 찾았다는 제작 일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감독이 장소에서 꼭 얻어야 할 것을 고르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망대라는 원래 계획을 포기한 뒤에도 두 인물이 밖으로 나가 함께 바람을 만나는 구상은 남겼다. 관객에게 그곳은 공항에서 이어진 자리지만 배우들은 다른 건물에서 그 시간을 만들었다. 영화 속 짧은 휴식에는 장소를 찾아 옮기고 그곳에서 다시 배우를 세운 수고가 들어 있다.
◆ 자막과 표정의 속도 차이 보기. 관객은 말의 뜻을 읽었지만 고니는 아직 상대를 살피는 순간에, 어떤 몸짓과 반응이 이어지는지 보자.
◆ 코미디를 만드는 움직임 따라가기. 고니가 경계하거나 서두르다가 의도와 다른 결과를 만드는 과정은 두 사람의 첫 거리를 몸으로 드러낸다.
◆ 두 사람에게 공항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하기. 일하는 사람과 떠나려는 사람이 잠시 시간을 공유한다는 조건이 대화에 어떤 가벼움이나 아쉬움을 더하는지 살펴보자.
◆ 옥상 장면의 공기 느끼기. 감독이 대사로 충분히 전하지 못한 것을 바람의 이미지에서 찾았다는 선택을 떠올리며, 장소가 바뀐 뒤 두 사람을 보는 느낌도 달라지는지 보자.
◆ 〈외계의 제19호 계획〉(2001, 민동현) — 쫓기던 아이들이 폐건물로 숨어들며 뜻밖의 존재를 만나는 단편. 인물이 장소를 옮긴 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놓인다는 점에서, 감독이 공간으로 이야기를 바꾸는 방식에 관심을 넓힐 수 있다.
◆ 〈후쿠오카〉(2019, 장률) — 낯선 도시에서 함께 걷고 대화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변한다. 말의 뜻을 이해하는 일과 상대를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다른지 생각하며 이어볼 만하다.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조사하고 작성했으며, 별도의 편집 검수를 거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