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부코〉를 찍던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 감독은 동굴 안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상에 있던 촬영감독 레나토 베르타는 자신에게는 보인다고 답했다. 프라마르티노는 카메라…
〈일 부코〉를 찍던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 감독은 동굴 안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상에 있던 촬영감독 레나토 베르타는 자신에게는 보인다고 답했다. 프라마르티노는 카메라 가까이에 있었지만 작은 모니터를 보고 있었고, 베르타는 동굴 밖의 고화질 화면으로 영상을 확인했다. 둘을 이어준 것은 길게 늘어뜨린 광케이블이었다. 촬영하는 장소에 더 가까운 사람이 최종 화면도 더 잘 판단할 수 있는 현장이 아니었다.
영화는 1961년 이탈리아 남부 비푸르토 동굴의 탐사를 다시 구성한다. 그때 찍은 기록영상을 이어 붙인 작품이 아니라, 실제 동굴 탐험가들이 당시의 탐사를 연기하며 새로 찍은 영화다. 프라마르티노는 낯선 공간을 보여주기 위해 내려갔지만, 자신에게 모든 것이 보이게 만들지는 않았다. 다른 곳에 있는 동료가 보는 화면과, 먼저 그 공간을 알아온 사람의 몸에 의지했다. 〈일 부코〉의 어둠에는 그런 협업의 조건이 들어 있다.
빛은 탐험가들의 헬멧에서 나왔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밝아지는 곳이 바뀌었다. 베르타는 지상에서 화면을 보며 조리개를 실시간으로 조절했다. 동굴 속 사람에게는 어디를 볼지 정하는 작은 움직임이지만, 카메라에는 공간 전체의 밝기가 달라지는 사건이었다. 촬영감독이 멀리서 조리개를 움직일 수 있어야 했던 까닭이다.
프라마르티노와 베르타는 동굴을 비추는 추가 조명 없이 헬멧의 빛으로 촬영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현장에 있던 불빛을 그대로 가져다 쓰기만 한 것은 아니다. 베르타는 헬멧에 쓸 빛을 고르고 필터로 조절했다. 어둠을 유지하면서 무엇이 보일 수 있는지 준비한 뒤, 탐험가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화면에 대응했다.
이 선택을 알고 보면 어두운 부분은 잠시 후 모두 밝혀질 배경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빛이 닿은 벽을 따라가다가도 사람이 고개를 돌리면 그 벽은 다시 사라질 수 있다. 관객은 한눈에 동굴의 전체 모양을 파악하기보다, 누군가가 보는 방향을 빌려 공간을 조금씩 알아간다. 화면의 네모난 가장자리 안에 있어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 곳이 많다. 빛의 끝이 또 하나의 경계가 된다.
촬영 결과를 판단할 때도 두 사람의 감각은 자주 어긋났다. 첫날 프라마르티노는 얻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올라왔지만 지상의 동료들은 만족스러워했다. 다음 날에는 반대였다고 한다. 감독이 현장에서 느낀 성취감과 화면에 남은 것이 일치하지 않았던 경험이다. 그 차이를 설명하는 그의 회고는 이 영화를 혼자 내려가 혼자 발견한 영상으로 소개할 수 없게 한다.
프라마르티노는 시대극을 만드는 일을 걱정했다. 옷과 사물을 특정 시기에 맞춰 통제해야 하는 제작 방식이, 통제되지 않는 요소와 작업하기를 좋아하는 자신의 성향과 부딪쳤기 때문이다. 그가 믿고 맡긴 사람들은 동굴 탐사 경험을 가진 출연자들이었다. 이들이 걷고 발을 디디며 주변을 살피는 방식에는 감독의 지시보다 먼저 쌓인 지식이 있었다.
이것은 동작의 정확성을 얻는 방법인 동시에 연기의 기준을 바꾸는 선택이다. 프라마르티노는 출연자들이 1961년의 탐험대처럼 보이기만 하는 것보다, 동굴과 마주한 탐험가로 행동하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의상은 과거의 시간을 가리키지만 몸은 촬영 당시 그곳의 바닥과 어둠을 상대한다. 배우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뿐 아니라 발을 어디에 놓을지가 장면의 중요한 정보가 된다.
출연자들은 새로운 구멍을 발견하면 환호해야 하는지 묻기도 했다. 프라마르티노는 이미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므로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 익숙한 공간에서 처음 발견한 사람의 표정을 재현하도록 요구하지 않은 것이다. 몸이 통과할 만큼의 공간을 찾거나 다음 걸음을 위해 잠시 멈추는 모습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주변의 모양을 익힌 사람이 움직이는 속도와, 화면을 통해 처음 보는 관객이 이해하는 속도는 다르다. 설명을 듣기 전에 움직임을 먼저 본다는 점이 이 영화의 탐사에 긴 시간을 들이게 한다.
프라마르티노는 동굴 밖에도 누군가를 남겨두었다. 니콜라 란자가 연기하는 늙은 목동이다. 감독은 산에서 목동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모습을 찾지 못하는 경험을 이야기했다. 영화에서도 목동이 가축을 부르는 소리는 그가 생활하는 공간을 느끼게 하는 재료가 된다. 동굴 속에서 빛이 닿는 곳을 따라가던 관객에게, 지상의 소리는 또 다른 방향으로 주의를 이끈다.
동굴과 목동을 연결하는 데에는 장소를 아는 방식도 들어 있었다. 감독은 탐험가들이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 그 지역 목동들에게 묻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목동은 일상적으로 산을 오가며 구멍과 동굴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 탐험대가 새롭게 조사하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오래전부터 지나다니며 익힌 생활의 일부일 수 있다. 같은 산을 알고 있다는 말 안에도 서로 다른 경험이 놓인다.
〈네 번〉에서도 프라마르티노는 목동과 염소, 나무가 있는 세계를 다뤘다. 〈일 부코〉의 지상 장면을 그 작업과 함께 보면, 사람의 얼굴에만 관심을 모으지 않는 그의 방식이 이어진다. 목동이 내는 소리와 가축에게서 들리는 소리를 나누어 듣고, 소리의 방향을 화면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얼굴을 가까이 보여주지 않는 동안에도 누군가가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감각은 남는다. 동굴의 불빛이 공간의 일부를 드러냈듯, 목소리도 산속의 보이지 않는 자리를 알려준다.
1. 탐험가가 고개를 돌릴 때 밝아지는 곳과 다시 어두워지는 곳을 함께 보자. 작은 동작이 동굴의 모양을 얼마나 바꾸어 보이게 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2. 빛이 닿은 부분에서 화면 가장자리까지 시선을 옮겨보자. 같은 화면 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공간과 짐작해야 하는 공간이 어떻게 나뉘는지 볼 만하다. 3. 탐험가의 발과 이동 사이의 멈춤에 주목해보자. 말을 통한 설명 없이도 바닥의 조건과 다음 움직임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는지 따라갈 수 있다. 4. 지상 장면에서는 목동의 부름과 가축의 소리를 나누어 들어보자. 소리를 내는 대상을 화면에서 찾을 수 있을 때와 없을 때, 공간의 크기가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는지 비교할 만하다.
◆ 〈일 부코〉(2021,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 — 헬멧의 빛과 출연자의 움직임이 함께 화면을 바꾸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 〈네 번〉(2010,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 — 목동과 동물, 나무 사이로 관심이 이어지는 방식을 통해 인간의 말 이외에 귀 기울이는 연출을 만날 수 있다.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조사하고 작성했으며, 별도의 검수 과정을 거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