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다가, 다른 영화 한 편을 얻었다 | MovieLAB LAB

임권택의 촬영 현장을 기록하려는데 정작 영화가 시작되지 않는다. 준비하던 작품이 엎어지고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동안, 다큐멘터리의 카메라는 어디를 향해야 할까. 정성일은 그 기다…

촬영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다가, 다른 영화 한 편을 얻었다 | MovieLAB LAB

임권택의 촬영 현장을 기록하려는데 정작 영화가 시작되지 않는다. 준비하던 작품이 엎어지고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동안, 다큐멘터리의 카메라는 어디를 향해야 할까. 정성일은 그 기다림으로 〈녹차의 중력〉을 만들었다. 이후 〈화장〉의 제작 현장은 〈백두 번째 구름〉이라는 별도의 영화가 됐다. 한 사람을 따라간 기록이 두 편으로 갈라진 자리에서, 평론가로 익숙한 정성일의 또 다른 일이 보인다. 무엇을 찍을지 정했던 감독이 실제로 만난 시간에 맞춰 자기 영화의 구성을 바꾸는 일이다.

그가 임권택에 관해 쓴 책과 평론은 이미 많았다. 그런데 알고 있는 이야기를 영상으로 정리하려고 카메라를 든 것은 아니었다. 정성일은 글로 충분히 전하기 어려웠던 영화의 제작 과정을 직접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오래 연구한 사람에게도 눈앞에서 새로 보게 되는 것이 있다. 두 다큐멘터리는 그 발견에 따라 계획을 고친 흔적을 품고 있다.

기다림을 짧은 서두로 넘기지 않기

처음에는 기다리는 시간을 간단히 보여준 뒤 촬영 현장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계획이 달라진 계기는 임권택이 세례를 받는 모습을 지켜본 일이었다. 정성일은 의식에 자신을 맡기는 그의 태도를 보며, 영화를 찍지 못하고 보내는 시간 또한 예술가의 삶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고 느꼈다.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의 생활은 따로 한 편을 이룰 만큼 커졌다.

작업이 시작되어야만 가치 있는 기록이 생긴다고 생각하면, 기다리는 날들은 계속 지워진다. 정성일은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그 사람의 삶이 진행된다는 데 자기 영화의 시간을 내주었다. 작품이 성사될지 모르는 상태를 지켜보는 관객에게는, 우리가 필모그래피의 연도 사이에서 지나쳤던 날들이 생긴다.

이 관심은 촬영할 대상을 고르는 세부 결정으로 이어진다. 임권택이 강연할 때 정성일은 자료 화면보다 말하는 얼굴을 찍도록 했다. 작품을 설명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그 말을 지금 꺼내는 사람이 화면에 남는다. 설명에 맞춰 과거 영화를 보여주면 관객은 해당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얼굴을 보고 있으면 같은 설명을 들으면서도 화자가 어떤 표정으로 자기 작업을 돌아보는지 살피게 된다. 정성일이 더 알고 싶었던 것은 이미 완성된 영화와 그 영화를 만든 현재의 사람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넓은 대합실에서 노년 남성이 컵을 들고 앉아 있다

완성작에서 빠진 장면도 남길 이유

〈백두 번째 구름〉에서는 그 질문이 작업의 안쪽으로 들어간다. 김훈의 소설 『화장』에서 어떤 문장이 각본으로 옮겨지고, 그것이 현장에서 어떻게 촬영되는지를 좇는다. 정성일은 이 과정을 따라가는 것을 영화의 구성 원리로 삼았다고 밝혔다. 소설을 읽고 감독의 해석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선택한 문장을 배우와 촬영팀이 실제 장면으로 만드는 단계까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보려면 완성된 〈화장〉만으로는 알 수 없는 시간을 남겨야 한다. 결과물에서는 한 번의 움직임으로 보이는 장면도 현장에서는 결정과 수정의 대상이다. 소설의 문장, 각본의 지시, 촬영하는 사람들을 오가며 보면 ‘원작을 영화로 옮겼다’는 간단한 설명 사이에 얼마나 많은 손과 판단이 들어가는지 생각하게 된다. 임권택을 이해하려는 정성일의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자리를 내준다.

이 영화에 남은 마지막 촬영 현장은 그런 선택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때 찍은 장면은 정작 완성된 〈화장〉에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성일에게는 촬영을 함께 마치는 스태프들의 모습이 중요했다. 그는 이 기록에 현장의 노동을 향한 존경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래 영화에서 채택되지 않은 장면도 다큐멘터리에서는 함께 일한 시간을 증언한다. 어느 편집실에서 빠진 촬영이 다른 편집실에서는 꼭 남겨야 할 장면이 된다.

여기서 두 감독의 영화는 서로 다른 기준으로 완성된다. 임권택은 〈화장〉에 필요한 장면을 고르고, 정성일은 그 영화를 만들던 사람들을 보여줄 장면을 고른다. 후자의 선택 덕분에 관객은 완성작의 화면 밖으로 밀려나기 쉬운 공동 작업을 보게 된다. 유명한 감독 한 사람에게서 시작한 관심이 여러 사람이 마지막까지 해낸 일로 넓어진다.

어두운 상영 공간의 객석과 장비 곁에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다

현장 밖으로 카메라를 옮기는 날

〈녹차의 중력〉에는 임권택을 따라가던 흐름에서 벗어나 철도 민영화 반대 시위를 담은 대목이 있다. 정성일은 한쪽에서 영화가 준비되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노동자들이 추위 속에 서 있다는 사실을 함께 담으려 했다. 영화계 내부의 일정과 거리의 사건은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그는 〈백두 번째 구름〉에서도 촬영장 밖의 사회 분위기를 기록하고 싶었지만 인력과 시간, 비용의 제약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설명은 두 영화를 읽는 데 작은 주의를 더한다. 한 작품에서 시도한 방법이 다음 작품에서 보이지 않을 때, 그것을 모두 의도적인 미학의 차이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 역시 촬영팀을 꾸리고 한정된 조건 안에서 무엇을 남길지 선택한다.

그래서 정성일이 바라보는 임권택의 작업과 정성일 자신의 작업은 이 대목에서 가까워진다. 카메라 앞의 감독은 다음 영화를 시작할 조건을 기다리고, 카메라 뒤의 감독은 자기 기록을 넓힐 조건을 계산한다. 두 편을 이어 보면 기록하는 사람을 완전히 보이지 않는 존재로 두기 어려워진다. 누구를 오래 바라보았는지뿐 아니라, 어디까지 따라갈 수 있었고 어느 순간 계획을 바꾸었는지가 그 사람의 영화에도 남기 때문이다.

감상 포인트

◆ 두 영화가 갈라지는 자리 — 일상을 보내는 임권택과 촬영 중인 임권택을 나누어 보자. 촬영 개시를 기다리는 시간이 독립된 한 편이 되면서 그 사람의 생활에 주어진 비중이 달라진다.

◆ 말하는 얼굴 — 강연의 내용과 함께 그 말을 꺼내는 표정을 살펴보자. 작품에 관한 지식을 듣는 경험에, 자기 작업을 돌아보는 사람을 보는 경험이 더해진다.

◆ 문장에서 현장까지 — 〈백두 번째 구름〉에서는 원작의 글, 각본, 촬영 과정의 관계를 따라가 보자. 각색이라는 말 안에 묶였던 여러 단계가 서로 다른 작업으로 눈에 들어온다.

◆ 완성작에 쓰이지 않은 촬영 — 마지막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에게 시선을 두어보자. 〈화장〉에 장면이 채택되었는지와 별개로, 함께 일한 시간을 남기는 정성일의 기준을 만날 수 있다.

관련 작품

◆ 〈백두 번째 구름〉 (2019, 정성일) — 〈녹차의 중력〉과 짝을 이루는 현장의 기록. 기다림을 담던 카메라가 실제 촬영 과정에서 무엇을 선택하는지 이어 볼 수 있다.

◆ 〈화장〉 (2014, 임권택) — 두 다큐멘터리 속 기다림과 작업이 향하는 영화. 완성된 장면을 보고 제작 기록으로 돌아오면 화면에 남은 것과 현장에 남겨진 것을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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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AI의 도움으로 작성하고, 공개된 제작 자료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