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파리제 감독은 뱅상 라코스테가 옛 영국 모험영화의 주인공처럼 차려입고 뛰는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우기 어려웠다고 한다. 처음에는 1939년 영국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구상했다…
니콜라 파리제 감독은 뱅상 라코스테가 옛 영국 모험영화의 주인공처럼 차려입고 뛰는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우기 어려웠다고 한다. 처음에는 1939년 영국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구상했다. 하지만 제작비가 많이 들었고, 좋아하는 영화의 스타일을 되살리는 것만으로 이 작품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충분한지도 고민했다. 그 구상을 내려놓은 뒤에도 배우가 달리는 이미지는 남았다.
〈그린퍼퓸〉은 현대의 유럽으로 옮겨왔다. 무대 위에서 동료가 죽는 것을 본 배우 마르탱(뱅상 라코스테)이 사건에 휘말리고, 만화가 클레르(상드린 키베를랭)가 그의 여정에 동행한다. 파리제가 어릴 때 좋아했던 모험의 들뜬 기분은 남아 있지만, 두 사람은 능숙하게 위험을 헤쳐가는 영웅과는 거리가 있다. 감독이 지금 느끼는 불안까지 그들의 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파리제는 에르제의 땡땡 만화를 다시 읽으며 특히 1930년대 작품들에 끌렸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같은 시기 영화들과 닮은 활기, 그리고 당시 유럽을 둘러싼 불안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에는 모험을 따라가느라 바빴던 이야기에서, 어른이 된 뒤 다른 관심을 발견한 셈이다.
그가 가져오려 한 것은 위험을 만나는 순서와 그 안을 통과하는 재미였다. 다만 배경을 현대 유럽으로 옮긴 순간, 옛 모험의 즐거움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졌다. 파리제는 유대인인 두 주인공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았다. 이들이 국경을 넘어 다니는 유럽에는 현재의 이동 경로뿐 아니라 역사에서 물려받은 두려움도 있다.
이 선택은 모험의 바탕을 바꾼다. 같은 기차를 타고 같은 곳으로 향해도 누군가에게는 관광지의 이름이, 다른 사람에게는 가족의 기억과 공포가 먼저 떠오를 수 있다. 감독은 두 사람이 떠나는 곳을 지도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여행의 신나는 기분이 불안으로 바뀔 때, 그 변화가 인물에게서 나온다는 점이 중요하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주인공을 정하면서 익숙한 모험의 의미도 달라졌다.
파리제는 배우들과 히치콕 영화와 땡땡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들에게 실제로 큰 도움이 된 것은 의상과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마르탱의 옷에는 땡땡을, 클레르의 옷에는 코르토 말테세를 떠올릴 만한 요소를 뒀다. 만화 인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배역은 아니다. 배우가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구체적인 출발점을 만든 것이다.
감독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영화와 그림이 연결돼 있어도 배우가 그것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입은 옷의 모양과 서 있는 장소는 당장 움직여볼 수 있는 조건이다. 어떤 세계에 속한 사람인지 긴 설명을 듣는 것과 그 옷을 입고 사람 앞에 서는 일은 다르다. 파리제는 자기 취향을 배우가 사용할 수 있는 재료로 건넨다.
그래서 〈그린퍼퓸〉의 의상을 참고 작품을 맞히는 퀴즈로만 보면 놓치는 것이 있다. 차려입은 모습과 겁에 질린 몸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있다는 점이다.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된 듯한 겉모습도 실제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감독은 육체적인 코미디를 원했다고 밝혔다. 주인공들이 당황하는 모습에는 장르의 옷을 입었다고 갑자기 영웅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의 재미가 있다.
파리제는 영화 중간에 두 사람이 부엌에서 오래 대화하는 장면을 넣었다. 사건이 계속 앞으로 밀려가는 모험영화에서 속도를 늦추는 선택이다. 감독은 익숙한 형식 안에서 다른 것을 시도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달리던 사람들이 앉아서 자기 삶을 이야기하면 영화의 리듬은 물론 두 사람을 아는 정도도 달라진다.
처음에는 사건에 휘말렸다는 공통점이 이들을 묶는다. 함께 도망치고 답을 찾는 동안에는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잠시 멈추면 그 사건에 들어오기 전의 삶도 드러날 수 있다. 다음 위험을 함께 맞을 사람에게 지난 사정을 들려줄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이 장면 뒤에 다시 이동이 시작돼도 관객은 전과 똑같은 두 사람을 따라가지 않는다. 어디서 불안해하고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하는지 조금 더 알게 됐기 때문이다. 파리제가 모험을 멈춘 것은 이야기에 할 일이 없어져서가 아니다. 사건을 더하는 대신 인물에게 시간을 주는 것도 다음 장면의 무게를 바꾸는 방법이다. 추격의 속도와 대화의 길이가 서로 다른 몫을 한다.
클레르의 어머니가 자꾸 딸에게 전화하는 모습에 대해 파리제는 자신의 해석을 밝혔다. 딸의 생활을 간섭하려는 행동으로만 보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두려움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전쟁 중 자식을 잃을 수 있었던 유대인 어머니들의 공포를 그 행동과 연결했다. 이는 감독이 인물을 이해한 방식이며 모든 가족의 관계를 설명하는 공식은 아니다.
전화는 모험의 큰 사건에 비하면 작은 일이다. 그러나 부재중인 딸에게 연락을 거는 행동을 그렇게 생각하면, 전화를 받는 사람의 귀찮음만으로 장면을 끝낼 수 없게 된다. 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시간이 어머니에게는 훨씬 길게 느껴질 수 있다. 감독은 역사 이야기를 따로 길게 설명하는 대신 지금 이어지는 관계의 불안 속에서 다뤘다.
이 불안은 웃음을 몰아내기보다 웃고 난 뒤에도 남는다. 마르탱과 클레르가 겁을 내는 모습은 우스울 수 있지만, 겁의 이유까지 우습게 지워버릴 필요는 없다. 파리제는 어두운 장면은 빈정거림 없이, 코미디 장면은 실제로 웃긴 장면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한쪽이 다른 쪽을 가짜로 만들지 않도록 두 정서를 함께 놓으려 한 것이다.
〈그린퍼퓸〉을 따라가며 기대하게 되는 것은 두 사람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다. 겁을 내면서도 서로의 사정을 조금 더 알고, 다음 길에 함께 나설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파리제가 오래 품었던 모험의 이미지에는 이제 그런 동행자가 있다.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다시 찾으러 출발한 영화가, 어른이 되어 생긴 걱정까지 데리고 움직인다.
◆ 모험의 옷을 입은 평범한 몸 — 주인공들의 옷차림과 실제 반응을 함께 보자. 모험영화다운 외양과 당황하는 행동의 차이가 두 사람에게 친근함을 만든다.
◆ 부엌에서 느려지는 시간 — 이동과 추격 사이에 어떤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생기는지 들어보자. 인물을 더 알게 된 뒤 다음 이동을 보는 마음이 달라지는지 살필 수 있다.
◆ 기차가 주는 서로 다른 기분 — 기차를 단순한 교통수단으로만 보지 말고 주인공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펴보자. 한 장소가 여행의 즐거움과 역사적 불안을 함께 불러올 수 있다.
◆ 어머니의 반복되는 전화 — 연락을 받는 딸의 사정뿐 아니라 연락을 기다리는 쪽도 떠올려보자. 감독이 일상적인 행동 안에 넣어둔 걱정의 크기를 생각할 수 있다.
◆ 〈그린퍼퓸〉 (2022, 니콜라 파리제) — 감독이 좋아했던 모험의 형식을 현대의 주인공들에게 건넨 작품이다. 두 사람의 코미디와 불안이 같은 여행 안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볼 만하다.
◆ 〈39 계단〉 (1935, 알프레드 히치콕) — 살인 누명을 쓴 주인공이 추격을 피해 움직이는 영화다. 파리제가 어린 시절 좋아했던 모험의 리듬을 확인하고, 현대 유럽으로 옮겨온 〈그린퍼퓸〉이 무엇을 달리 품게 됐는지 비교할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