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악당의 연기가 안 풀릴 땐, 옷을 갈아입힌다 | MovieLAB LAB

우주를 지배하려는 악당을 맡았는데, 정작 배우는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엠파이어〉의 벨제뷔트를 연기한 파브리스 루키니에게 브뤼노 뒤몽 감독이 찾은 해법은 의상…

우주 악당의 연기가 안 풀릴 땐, 옷을 갈아입힌다 | MovieLAB LAB

우주를 지배하려는 악당을 맡았는데, 정작 배우는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엠파이어〉의 벨제뷔트를 연기한 파브리스 루키니에게 브뤼노 뒤몽 감독이 찾은 해법은 의상이었다. 배우 루이 주베가 연극 「돈 주앙」에서 입었던 의상을 본뜨고, F. W. 무르나우 감독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머리쓰개를 더했다. 뒤몽에 따르면 그 옷을 입은 뒤에야 루키니가 인물의 우스꽝스러운 면을 잡아냈다. 외계인의 과거를 설명하는 것보다 옛 연극의 옷 한 벌이 도움이 된 것이다.

뒤몽은 관념을 배우의 몸에 맡기는 감독이다. 선과 악, 인간과 외계인이라는 큰 구분도 화면에서는 누군가의 얼굴과 걸음으로 나타나야 한다. 〈엠파이어〉에서 그가 모은 사람들을 보면 우주 전쟁의 결말보다 이들을 어떻게 한 영화 안에 불러 모았는지가 먼저 궁금해진다. 위엄을 갖춘 왕 옆에는 어촌에서 배를 타는 남자가 있고, 완벽해 보이던 전사는 연애를 시작한다.

배역 설명보다 옷 한 벌

루키니는 뒤몽의 〈슬랙 베이〉에서도 자기 배역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뒤몽은 그때도 의상이 배우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의 협업에는 대본의 뜻을 충분히 설명한 다음 촬영을 시작한다는 순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옷을 입고 움직여보면서, 말로는 찾지 못했던 인물이 나올 수 있다.

이 방식으로 보면 벨제뷔트의 요란한 차림도 다르게 느껴진다. 악을 지배한다는 존재를 소개할 때 영화가 선택한 것은 냉정한 제복이나 낯선 기계 장치가 아니다. 과거의 무대와 영화에서 가져온 옷이 그를 감싼다. 장엄하게 보이려는 차림과 그 안에서 과하게 움직이는 배우를 함께 바라보면, 권위를 드러내는 행동이 어느새 희극처럼 보인다. 왕의 지위는 대사에 적혀 있지만, 그 지위를 어떻게 믿게 할지는 몸에 달려 있다.

익숙한 배우가 낯선 옷을 입었을 때 관객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표정으로 뜻을 읽으려다가 옷의 크기와 몸짓까지 보게 된다. 루키니가 얼마나 진지하게 행동하는지와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는 꼭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그 차이가 웃음을 만든다. 배우가 먼저 농담이라고 알려주지 않아도, 우리는 그의 위엄에서 허풍을 발견할 수 있다.

우주로 가도 고향 사람의 얼굴은 남는다

뒤몽이 자주 돌아가는 촬영지는 프랑스 북부다. 그는 그곳의 풍경뿐 아니라 사람들의 억양과 얼굴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같은 지역을 찾는다고 말했다. 카메라 앞에서는 평범해 보이던 사람이 뜻밖에 특별해질 수 있다는 믿음도 있다. 우주를 소재로 삼았다고 해서 그 익숙한 사람들을 떠날 이유는 없었다.

〈엠파이어〉의 지상은 관광 안내에서 꺼낸 한 장의 해변 사진처럼 머물지 않는다. 배를 타고 일하고, 아이를 돌보고, 다른 사람에게 눈길을 주는 생활이 있다. 외계의 임무를 설명하는 말과 그 일을 수행하는 몸 사이에서 자꾸 일상의 흔적이 드러난다. 인물이 우주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도 당장 이 동네에서 누구와 지내는지까지 설명되지는 않는다.

영웅의 얼굴만 골라 세운 세계와도 다른 재미가 생긴다. 거창한 운명을 맡았다는 말을 들으면서 눈앞의 사람을 보면, 동네에서 우연히 만날 법한 인상에 시선이 머문다. 그 얼굴을 SF에 어울리게 바꾸기보다 SF가 그 얼굴을 받아들여야 한다. 뒤몽의 어촌은 그렇게 우주 전쟁의 주인공이 될 자격을 얻는다.

감독은 미국의 우주 모험과 유럽의 자연주의 영화를 함께 놓아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단순히 미국 영화를 놀리는 기획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선악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든 장르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생활을 만나면 어떻게 될지 시험한 것이다. 서로 다른 영화를 한 화면에서 보는 듯한 어색함이 이 실험에서는 쓸모가 있다.

마을 길에서 곱슬머리 여성이 휴대전화를 앞에 들어 바라본다

완벽한 전사에게 사랑을 시킨다

제인(아나마리아 바르톨로메이)을 맡길 배우에게는 두 가지 모습이 필요했다. 뒤몽은 흠잡을 데 없는 전사처럼 보이면서도 사랑 때문에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믿었던 강함 속에서 연약함이 나타나야 했다.

제인은 선의 진영에 속하고 임무도 분명하다. 하지만 지상에서 누군가에게 끌리면서 그 임무만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이 변화를 외계인의 실수라고 웃어넘기기에는 바르톨로메이의 몸이 전하는 감정이 가까이 있다. 상대를 향하는 시선과 거리를 좁히는 행동에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달라지는 인간의 모습이 들어간다.

여기서 감독이 전문 배우를 찾은 이유가 흥미롭다. 초월적인 존재라는 인상과 사랑에 흔들리는 변화를 한 사람이 모두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익숙한 얼굴과 전문 연기 중 어느 하나만을 정답으로 고르지 않는다. 인물이 해야 할 일이 달라지면 그 일을 가능하게 할 배우도 달라진다.

루키니의 의상에서 출발한 과장과 바르톨로메이에게 요구한 변화가 같은 영화에 들어 있다. 관객은 한쪽에서 웃고 다른 쪽에서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 우스운 영화라는 이유로 모든 인물을 똑같이 우습게 연기시키지는 않는다는 점이 뒤몽의 인물들을 더 오래 바라보게 한다.

평평한 들판 위로 길쭉한 건축물 같은 물체가 떠 있다

촬영장에서 정답을 말해주지 않는 감독

뒤몽은 촬영할 때부터 어느 정도의 과장이 적당한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평범한 연기를 찍은 뒤 더 밀어붙여보고, 서로 다른 강도의 연기를 편집할 때 비교한다. 배우에게 같은 감정을 크게도 작게도 표현하게 하는 까닭이다. 한 장면에서 잘 맞는 연기가 다음 장면과 붙으면 지나칠 수도 있다.

감독에게는 선택지를 얻는 방법이지만 배우에게는 불안한 주문이다. 잘했는지 묻는 루키니에게 뒤몽은 아직 모른다고 답했다고 한다. 배우가 촬영을 마치는 시점과 감독이 그 연기를 결정하는 시점이 다르다. 화면 속 인물들은 확신에 차서 움직이는데, 그 확신을 만드는 현장에서는 여러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었던 셈이다.

이때 뒤몽이 자기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있다. 배우가 어떤 연기를 하지 못하면, 그 배우에게서 좋은 모습을 찾을 방법을 감독이 더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대사는 덜어낼 수도 있다. 이미 정해둔 인물에 배우를 끝없이 맞추기보다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 따라 영화도 조절한다.

〈엠파이어〉를 다시 본다면 표정이 과해지는 순간만큼 그 과장이 잦아드는 순간도 눈여겨볼 만하다. 막 우스웠던 얼굴이 다음 장면에서는 무심해 보이고, 전사였던 사람이 상대의 반응을 기다린다. 어느 연기를 남기느냐에 따라 같은 얼굴에서도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뒤몽은 우주까지 넓힌 영화에서도 결국 그 얼굴 앞에서 선택하고 있다.

감상 포인트

◆ 옷의 위엄과 몸짓의 과장 — 벨제뷔트가 나타날 때 의상만 보지 말고 그 옷 안에서 움직이는 루키니의 몸을 함께 보자. 권위를 세우려는 동작이 어느 순간 우스워지는지, 배우는 그 행동을 얼마나 진지하게 수행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 외계의 명령과 동네의 생활 — 인물이 우주의 임무를 말하다가 일이나 양육, 연애로 관심을 돌리는 때를 보자. 설정을 설명하는 말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생활이 있다. 명령의 규모와 당장 눈앞에서 원하는 일의 차이가 장면의 분위기를 바꾼다.

◆ 제인의 시선이 달라지는 때 — 임무를 수행하던 제인이 상대를 의식하기 시작할 때 표정과 거리가 어떻게 바뀌는지 보자. 전사라는 배역의 외양과 사람에게 끌리는 행동을 함께 살피면, 바르톨로메이에게 요구된 두 모습이 한 인물 안에서 이어진다.

◆ 과장이 잦아드는 순간 — 큰 몸짓 다음에 이어지는 연기가 같은 강도를 유지하는지 살펴보자. 계속 과장했다면 지나쳤을 작은 반응이, 앞 장면과의 차이 때문에 눈에 들어올 수 있다. 장면 사이의 변화에서 감독이 선택한 희극의 호흡을 느낄 수 있다.

관련 작품

◆ 〈엠파이어〉 (2024, 브뤼노 뒤몽) — 어촌의 얼굴들과 우주 전쟁의 설정이 한곳에서 만난다. 인물의 진영을 외우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배우가 그 설정을 몸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벗어나는지 보면 뒤몽의 연출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 〈슬랙 베이〉 (2016, 브뤼노 뒤몽) — 해안 마을의 주민들과 휴가를 온 부유한 가족이 부딪친다. 루키니와 뒤몽의 앞선 협업을 보면서, 말투와 옷차림에 담긴 신분 의식이 어떤 웃음을 만드는지 비교할 수 있다. 익숙한 풍경에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점에서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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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