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원 감독이 〈마돈나〉에 처음 붙인 제목은 ‘VIP 병동’이었다. 완성된 제목에는 그 병동에 들어온 환자 미나(권소현)의 별명이 남았다. 돈과 지위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장소에…
신수원 감독이 〈마돈나〉에 처음 붙인 제목은 ‘VIP 병동’이었다. 완성된 제목에는 그 병동에 들어온 환자 미나(권소현)의 별명이 남았다. 돈과 지위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장소에서, 그 안에 누운 한 사람에게 관심을 옮기는 선택이다. 감독은 여성을 소비의 대상으로 여기는 시선과 그 시선이 남기는 상처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제목을 바꾼 이유를 설명했다.
미나의 과거를 찾아가는 해림(서영희)은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다. 그가 한 사람의 삶을 알아갈수록 처음 맡았던 일을 그대로 수행하기 어려워진다. 신수원에게도 모르는 사람을 영화 속 인물로 만드는 과정이 있었다. 카페에서 우연히 본 여성에게서 출발한 이야기를 배우와 함께 구체화하고, 그 사람을 둘러싼 폭력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 골랐다.
신수원은 카페에서 젊은 여성 노숙자를 본 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궁금해했다고 말했다. 그 여성과 인터뷰를 한 것은 아니었다. 감독은 알지 못하는 사연을 상상하며 각본을 썼다. 실제 인물을 목격한 경험이 계기가 됐지만, 미나의 삶은 영화가 만들어낸 이야기다.
이 구분은 미나를 맡을 배우를 찾는 과정에서도 중요하다. 감독이 찾는 것은 특정한 실존인물을 닮은 얼굴이 아니었다. 여러 단편영화를 보던 신수원은 권소현의 연기를 발견했다. 짙은 화장을 한 모습에서 슬픔을 담을 가능성을 느꼈고, 직접 만난 얼굴에서도 자신이 생각한 인물을 보았다. 겉으로 강하게 보이는 인상과 그 안에 남길 감정을 함께 살핀 캐스팅이었다.
권소현에게 미나는 쉽게 이해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배우는 각본에 나오지 않는 생활까지 질문으로 적어가며 배역을 준비했다. 어떤 방에서 살고 얼마나 벌었을지처럼 화면 밖의 삶을 상상했고, 그 질문과 답을 감독과 나눴다. 그렇게 인물을 어느 정도 이해한 뒤 촬영에 들어갔다고 회고했다.
이 준비를 알고 나면 미나가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사건의 순서로만 따라가기 어려워진다. 누군가의 친절을 받아들이기 전에 그가 어떤 생활을 해왔을지, 그 관심이 하루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할지 생각하게 된다. 각본 밖의 사정을 모두 영화에 넣을 수는 없어도 배우에게는 지금의 행동을 선택할 이유가 된다. 신수원이 상상한 삶에 권소현이 질문을 보태면서, 미나는 그에게 벌어진 일만으로 설명되는 인물에서 조금 더 멀어진다.
〈마돈나〉를 찍으며 신수원은 해림이 차로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장면도 촬영했다. 그러나 편집 과정에서 영화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뺐다. 완성된 영화에 없는 장면이지만, 감독이 무엇을 남기려 했는지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부당한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 되갚는 행동은 눈에 잘 들어오고 감정도 선명해진다. 그 선명함이 이 영화 전체에 필요한지는 별개의 판단이었다.
해림은 미나의 과거를 조사하면서 이전에는 모르던 삶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관객이 따라가게 되는 것은 누가 나쁜 사람인지 확인하는 일만이 아니다. 해림이 얻은 정보가 그의 다음 선택을 어떻게 어렵게 하는지도 함께 본다. 통쾌한 행동 하나로 감정을 정리했다면, 한 사람의 삶을 알아본 뒤 무엇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시간이 달리 느껴졌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행위에 대한 신수원의 관심은 〈유리정원〉에서 창작자 자신에게 돌아온다. 소설가 지훈(김태훈)은 숲에 사는 재연(문근영)을 글의 재료로 삼는다. 감독은 이 인물을 설명하며 자신 역시 타인을 소재로 쓰는 창작의 윤리를 고민했다고 밝혔다. 누군가를 자세히 보았다는 사실이 곧 그 사람을 잘 대했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두 영화에서 타인에게 다가가는 사람은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든다. 해림은 알게 된 사실 때문에 자기 일을 다시 생각하지만, 지훈의 글은 관찰당한 사람의 삶을 해칠 수 있다. 신수원은 관심을 기울이는 행위를 무조건 선하게 그리지 않는다. 무엇을 알아냈는가와 더불어 그 지식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했는가를 보게 한다. 미나의 삶을 상상해 각본을 쓴 감독에게도 피할 수 없는 물음이다.
〈오마주〉에서는 다른 사람의 흔적을 찾는 일이 영화를 계속 만들 힘과 이어진다. 지완(이정은)은 오래된 영화의 복원 일을 맡은 감독이다. 신수원은 앞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박남옥 감독을 만났고, 이미 세상을 떠난 홍은원 감독에 대해서는 그의 딸을 인터뷰했다. 자신보다 먼저 영화를 만든 여성들의 작업을 알아가는 경험이 새 각본의 출발점이 됐다.
영화 속 지완이 하는 복원 작업은 신수원의 실제 경력이 아니다. 감독은 자신이 복원 일을 한 적이 없으며 그 부분은 허구라고 밝혔다. 실제 취재에서 얻은 감정과 영화를 위해 만든 직업적 과제가 합쳐졌다. 옛 감독을 알게 됐다는 사실을 대사로 전하는 데서 더 나아가, 지금의 감독이 직접 찾아다녀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신수원은 지완이 걸어다니며 누군가를 만나도록 이정은을 계속 걷게 했다고 설명했다. 사라진 사람의 자취를 찾는 동안 지완에게도 자신의 일이 더는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이 가까워진다. 걸음은 자료를 얻으러 이동하는 수단인 동시에, 멈춰 있던 사람이 다른 영화인의 삶으로 들어가는 행동이 된다. 과거를 공부하는 장면과 현재의 고민이 같은 동선에서 만난다.
배우를 통해 감독 자신의 모습이 들어온 대목도 있다. 신수원은 평소 안경을 쓰는 이정은의 모습이 지완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안경을 고를 때 자신의 것도 써보라고 제안했다. 의상까지 갖춘 배우가 감독과 닮아 보여 두 사람이 웃었다는 일화는, 이 허구의 인물과 창작자 사이의 거리를 보여준다. 모든 사건이 자전적이지는 않아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생활은 옷차림과 몸에 스며들 수 있다.
폐관된 극장에서 필름이 돌아가는 모습을 찍는 데도 구체적인 물건이 필요했다. 현장에 남은 영사기는 주요 부품이 없어 작동하지 않았다. 신수원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대신하는 방법을 생각하다 실제 영사기를 확보하는 쪽을 택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공간에서 필름이 움직이는 느낌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라진 영화를 찾아가는 이야기 속에, 아직 작동할 수 있는 영화의 도구가 들어왔다.
◆ 제목 속 별명과 인물의 이름을 함께 생각하기. ‘마돈나’라고 불리는 미나의 과거를 알아갈수록 처음의 호칭이 어떻게 들리는지 살펴보자. 남들이 부르는 말과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 사이의 거리가 달라질 수 있다.
◆ 해림의 조사 뒤에 오는 선택 보기. 새로운 사실을 알았을 때 이전에 맡은 일과 지금 하려는 일이 어떻게 어긋나는지 따라가면, 추적의 목적이 달라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 〈유리정원〉에서 관찰하는 사람의 이익 살피기. 지훈이 재연에게서 무엇을 알아냈는지와 그 글로 무엇을 얻는지를 함께 보자. 관심을 주는 일과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 사이의 차이가 드러난다.
◆ 〈오마주〉의 폐극장과 영사기 보기. 사람들이 떠난 극장 안에서 돌아가는 필름에 주목하자. 더는 쓰이지 않는 공간에 남은 작은 움직임이 그 장소의 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볼 만하다.
◆ 〈유리정원〉(2017, 신수원) — 타인의 삶을 글로 옮기는 소설가를 통해 창작하는 사람의 책임을 다룬다. 감독이 자신에게 돌려준 물음을 인물의 행동으로 살펴볼 수 있다.
◆ 〈오마주〉(2022, 신수원) — 오래된 영화를 복원하는 감독의 여정. 남은 자료와 사라진 흔적을 찾는 노동이 동료를 발견하는 감정으로 이어진다.
이 글은 AI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조사하고 작성했으며, 별도의 편집 검수를 거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