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의 복원본을 보던 클로드 를루치는 어느 순간 스크린 대신 두 배우를 바라봤다. 장루이 트랭티냥과 아누크 에메가 서로를 보고, 화면 속 젊은 자신도 보고 있었다. 감독의…
〈남과 여〉의 복원본을 보던 클로드 를루치는 어느 순간 스크린 대신 두 배우를 바라봤다. 장루이 트랭티냥과 아누크 에메가 서로를 보고, 화면 속 젊은 자신도 보고 있었다. 감독의 눈에는 그 현재의 얼굴이 다시 찍고 싶은 영화로 다가왔다. 반세기 전 두 사람이 함께했던 작품을 보고 있었지만, 그의 관심은 이미 눈앞의 두 사람이 새로 만나는 쪽으로 움직였다.
〈남과 여: 여전히 찬란한〉은 그렇게 시작됐다. 를루치는 상영이 끝난 뒤 두 배우에게 생각을 전했다. 두 사람은 나이가 너무 많다며, 누가 그런 영화를 보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과거의 성공작으로 돌아간다는 말만으로는 그들을 설득하기 어려웠다. 이번에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것은 관객에게 익숙한 젊은 연인들이 아니라, 그 시절을 지나온 자신들이었다.
를루치 자신에게도 두려움이 있었다. 〈남과 여〉가 관객에게 어떤 영화로 남아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 작품을 만들었다가 오래 사랑받은 기억을 건드릴 수도 있었다. 그는 트랭티냥에게 완성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개하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배우에게 다시 한 번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주기보다, 함께 시도해볼 여지를 만든 약속이다.
실제로 돌아온 얼굴은 두 주연뿐이 아니었다. 옛 영화의 아이들을 연기했던 앙투안 시르와 수아드 아미두도 성인이 된 같은 인물로 합류했다. 시르에게 어린 시절의 출연은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라기보다 특별한 경험으로 남아 있었다. 반면 아미두는 이후에도 배우로 일했다. 한 영화에서 만난 두 아이가 같은 직업과 경로로 살아오지는 않은 것이다. 를루치는 그 다른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을 다시 불렀다.
아미두가 기억하는 옛 촬영장의 풍경에는 호텔의 긴 복도가 있다. 어른들이 저녁을 먹으러 간 동안 아이들은 복도를 뛰어다녔다. 훗날 돌아온 호텔에서 그녀는 그때의 공간을 알아봤다. 감독이 되살릴 수 없는 반세기가 배우에게는 그런 장소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이들의 재출연은 인물의 연속성을 맞추는 캐스팅을 넘어,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현재를 영화에 데려오는 일이 된다.
그렇다고 배우가 살아온 모든 사연을 알아야 화면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옛 장면과 새 장면에는 같은 사람의 얼굴이 있다. 관객은 사이에 있었던 삶을 전부 설명받지 않고도, 그 간격을 느낄 수 있다. 를루치는 시간을 분장이나 젊은 대역으로 재현하기보다, 과거에 자신이 찍은 얼굴과 지금 다시 찍을 수 있는 얼굴을 함께 놓았다. 예전의 영화가 이번 영화의 재료가 된 셈이다.
를루치가 바랐던 재회는 배우들이 충분히 반복해서 익힌 만남과는 달랐다. 그는 첫 재회 장면을 미리 리허설하지 않고 촬영했다. 그러나 대사가 없는 채로 두 사람을 앉혀놓은 것은 아니었다. 감독은 이 장면에 정밀한 각본이 있었고, 즉흥적인 부분은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말을 전해주며 배우가 그 순간 상대에게 반응하도록 했다.
아누크 에메의 설명은 그 방식을 조금 더 보여준다. 배우들은 자신이 할 대사를 알고 있었지만, 감독이 얼굴과 표정을 보면서 새로운 생각을 건네기도 했다. 때로는 말을 보태고, 때로는 이어가게 뒀다. 준비된 말과 현장에서 생기는 반응이 함께 있는 작업이다. 관객이 보는 자연스러움은 아무 준비 없이 카메라를 켠 결과가 아니라, 무엇을 정하고 무엇을 열어둘지 고르는 판단에서 나온다.
앙투안 시르는 어린 시절의 식당 장면을 돌아보며 를루치의 이런 방식을 설명했다. 감독은 어디로 가려는지 분명한 장면으로 시작한 뒤에도 카메라를 계속 돌렸다. 보통이라면 촬영을 멈췄을 순간에 새로운 행동이 생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미두도 대사가 치밀하게 쓰여 있으면서 카메라는 이어서 돌아가는 현장을 기억했다. 감독은 촬영이 계획한 문장의 끝에 도착한 뒤에도, 배우에게서 더 얻을 것이 있는지 지켜봤다.
물론 그렇게 열린 현장에 들어가는 배우에게는 준비가 필요하다. 아미두는 이번에도 각본을 늦게 받아 저녁에 시르와 함께 대사를 익혔다고 말했다. 시르는 그 도움에 고마움을 표했다. 화면 속 자연스러운 대화 뒤에, 다음 촬영을 앞두고 두 사람이 함께 연습한 시간이 있었던 셈이다. 감독의 즉흥성이라는 한 단어로 현장을 설명하면 빠뜨리기 쉬운 노동이다.
를루치를 이해할 때는 카메라 앞의 여유와 카메라 밖의 준비를 함께 생각할 만하다. 그는 계획을 모두 지워서 우연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대화가 향할 곳을 정한 다음, 그 말을 주고받는 사람의 얼굴에서 예상하지 못한 것을 찾는다. 함께 일해온 배우들이 감독을 믿고 들어갈 수 있어야 하고, 감독도 써둔 대사 너머의 반응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 영화에서 돌아온 것은 얼굴만이 아니다. 음악에서도 익숙한 동료와 새로운 협업이 만났다. 〈남과 여〉의 음악을 만든 프랑시스 레는 새 영화를 위해 두 곡을 작곡했다. 를루치는 옛 노래를 가져오는 데 그치지 않고, 그와 다시 새 음악을 준비했다.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에도 지금의 장면을 위한 음악이 필요했던 것이다.
편곡에는 칼로제로가 참여했다. 노래에는 니콜 크루아지유와 칼로제로의 목소리가 함께 담겼다. 를루치는 이전 작품에 참여했던 니콜의 목소리와 칼로제로의 목소리를 잇고 싶었다고 말했다. 익숙한 음색을 그대로 보존하기만 하는 대신, 다른 음색과 만날 자리를 만든 선택이다. 오래된 기억을 불러오는 소리와 새 영화에서 처음 듣는 소리가 나란히 놓인다.
같은 얼굴과 목소리로 돌아가면서도 새로움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이 영화의 출발과 닮았다. 복원본 상영장에서 를루치가 본 것은 과거의 연기만이 아니었다. 바로 옆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배우들의 현재였다. 옛 장면은 그 현재를 더 깊게 보게 하는 재료가 된다. 지금의 표정 옆에 젊은 시절의 얼굴이 놓일수록, 두 사람이 다시 말을 주고받는 일 자체가 각별하게 느껴질 수 있다.
안(아누크 에메)은 자신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지 못하는 장루이(장루이 트랭티냥)와 마주한다. 관객은 두 얼굴의 연결을 알아볼 수 있는데, 인물에게는 그것이 쉽지 않다. 이 차이 때문에 옛 장면을 보는 반가움에는 현재의 상대에게 어떻게 말을 걸지에 대한 조심스러움도 섞인다. 를루치가 다시 찍고 싶었던 만남은 예전의 사랑을 그대로 재생하는 순간보다 복잡하다.
감독은 이미 자신이 찍어놓은 영화를 다시 틀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배우들을 다시 만나고, 새 대사를 전하고, 지금의 반응을 기다렸다. 오랜 세월 함께해온 사람에게서도 아직 찍지 않은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를 움직였다. 옛 영화를 보다가 객석으로 눈을 돌린 순간, 를루치에게 다음 영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셈이다.
◆ 같은 얼굴 사이의 시간 — 과거 장면과 현재 장면을 오갈 때 달라진 외모만 비교하지 말고 표정을 바라보자. 동일한 배우가 연기한다는 사실이 새 대화에 어떤 느낌을 더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 대사 뒤에 남는 반응 — 누군가 말을 마친 뒤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펴보자. 정교한 각본을 준비하면서도 카메라를 계속 돌렸던 감독의 관심을 떠올릴 만하다.
◆ 다시 만난 아이들 — 성인이 된 자녀 역의 배우들을 보자. 오래전의 아이들을 같은 배우에게 맡긴 선택이 두 주인공 밖으로도 시간의 감각을 넓힌다.
◆ 익숙한 소리와 새 음색 — 음악에서 반가운 느낌이 드는 순간과 새롭게 들리는 순간에 귀 기울여보자. 옛 동료와 새 협업자가 함께한 노래가 두 시대의 얼굴 사이를 잇는다.
◆ 〈남과 여: 여전히 찬란한〉 (2019, 클로드 를루치) — 같은 배우의 현재를 다시 찍고, 과거의 얼굴과 음악을 새로운 만남 안에 놓은 연결작이다.
◆ 〈비포 선셋〉 (2004, 리처드 링클레이터) —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간다. 배우가 나이를 먹은 만큼 인물에게도 시간이 쌓인 영화로, 대화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정을 함께 드러내는 방식을 비교할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