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얼굴이 무서워지는 순간 | MovieLAB LAB

배우는 한 얼굴로 두 사람을 구별해냈다. 감독은 그 차이를 조금 줄이고 싶어 했다. 〈에너미〉에서 제이크 질렌할은 소심한 대학 강사 아담과 더 거침없는 배우 앤서니를 함께 연기한…

같은 얼굴이 무서워지는 순간 | MovieLAB LAB

배우는 한 얼굴로 두 사람을 구별해냈다. 감독은 그 차이를 조금 줄이고 싶어 했다. 〈에너미〉에서 제이크 질렌할은 소심한 대학 강사 아담과 더 거침없는 배우 앤서니를 함께 연기한다. 드니 빌뇌브는 어깨나 시선만 봐도 어느 인물인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감독에게는 두 사람이 잘 구별되는 것만큼, 순간적으로 구별하기 어려워지는 것도 중요했다.

이 주문에 〈에너미〉의 불안이 들어 있다. 전혀 다른 사람이라면 같은 얼굴을 가진 두 남자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르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닮아 보이면 판단이 흔들린다. 빌뇌브는 관객이 한 배우의 솜씨를 감탄하며 보는 자리에만 머물지 않게 한다. 내가 지금 알아본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배우 한 사람에게 쓸 시간을 마련하다

〈에너미〉는 〈프리즈너스〉보다 먼저 촬영했다. 공개된 순서와 달라 오해하기 쉽지만, 빌뇌브는 이 작은 영화에서 질렌할과 함께한 경험이 이후 작업에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그에게는 배우와 충분히 시도해볼 시간이 필요했다. 많은 인물과 촬영 일정을 다루던 작업에서는 하고 싶었던 만큼 연기를 탐색하기 어려웠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실험의 대상은 정체성이었다. 똑같은 얼굴을 가진 인물이 자기 몸을 서로 다르게 쓴다면, 어느 정도의 차이로 다른 사람처럼 보일까. 그 차이를 줄이면 언제부터 혼란스러워질까. 대본의 사건 순서를 갖추는 일과 이 질문을 배우의 몸으로 푸는 일은 달랐다.

빌뇌브는 먼저 아담을 충분히 촬영한 뒤 앤서니를 탐색했다고 설명했다. 배우에게 두 인물을 번갈아 보여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한 사람으로 머물 시간을 준 것이다. 그 뒤 같은 얼굴에 다른 태도가 들어오면 변화가 더 구체적으로 보인다. 얼굴을 바꾸지 않고도 방 안에 들어오는 사람이 달라지는 경험이다.

이 제작 과정을 알고 보면 분신이 한 화면에 등장하는 장면만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다. 질렌할이 혼자 있는 장면에도 두 사람을 만드는 작업이 남아 있다. 긴장한 어깨와 편한 시선처럼 눈에 작게 들어오는 차이가 있다. 빌뇌브가 배우와 확보하고 싶었던 시간은 그런 차이를 찾아보는 데 쓰였다.

식탁 곁에서 손을 모은 남성이 옆쪽을 바라본다

노란 도시가 인물을 조여온다

인물의 몸만으로 불안을 만드는 영화는 아니다. 아담을 둘러싼 도시의 빛도 편안하지 않다. 빌뇌브는 원작을 읽으며 떠올린 누런 분위기와 도시의 압박을 화면으로 옮기려 했다. 빽빽한 건물과 흐린 공기가 사람의 생활 위에 무겁게 놓인다.

이때 도시는 큰 사건이 벌어질 장소라서만 무서운 것이 아니다. 낮에도 환하게 트이는 느낌이 없고, 멀리 보아도 비슷한 건물들이 이어진다. 어딘가에 도착해도 비슷한 생활이 기다릴 것 같다. 아담의 반복되는 일상과 도시의 인상이 서로를 보탠다.

빌뇌브의 선택은 인물이 자기 기분을 설명하는 수고를 줄인다. 아담이 답답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관객은 그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도시를 보는 것만으로 그의 사정을 다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기분은 먼저 전해지고 이유는 남는다. 그 남은 이유가 인물을 계속 보게 한다.

낯선 남자가 나타나기 전부터 화면이 불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분신의 발견이 모든 문제의 시작인 것처럼 보이다가도, 아담에게 이미 벗어나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감독은 사건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관객의 감각을 움직인다.

글씨가 가득한 칠판 앞에 셔츠와 넥타이 차림의 남성이 서 있다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있을까

빌뇌브는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두려움을 이 영화와 연결했다. 그 말을 떠올리면 분신의 존재는 바깥에서 온 위협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내 얼굴을 한 사람이 내가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한다는 상상에는, 나 자신도 내가 아는 대로만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이 들어 있다.

〈에너미〉는 그 불안을 끝까지 설명해 안심시키지 않는다. 대신 처음에는 쉽게 구별했던 두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질렌할이 얼마나 다르게 연기하는지 보다가, 어느 순간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발견한다. 감독이 배우에게 차이를 줄여달라고 했던 이유가 그때 조금 실감난다. 낯선 사람이 무섭다가 결국 익숙한 얼굴이 무서워지는 영화다.

감상 포인트

◆ 두 인물이 닮아 보이는 순간 — 아담과 앤서니의 차이를 찾은 뒤에는 오히려 비슷하게 느껴지는 순간에 주목해보자. 구별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흔들린다. 감독이 차이를 줄이려 했던 선택이 관객에게 어떤 감정을 만드는지 느낄 수 있다.

◆ 혼자 있는 질렌할 —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화면뿐 아니라 혼자 말하고 움직일 때도 보자. 상대 배우가 없어도 자세와 시선이 인물을 만든다. 얼굴을 바꾸는 분장보다 몸을 사용하는 방식에 더 기대는 연기다.

◆ 밖에서도 이어지는 답답함 — 도시의 넓은 풍경이 나올 때 시야가 트이는지, 오히려 막히는지 느껴보자. 공간의 크기와 편안함이 꼭 함께 가지는 않는다. 인물의 일상을 둘러싼 분위기가 사건 이전부터 작동한다.

◆ 이유를 알기 전의 반응 — 이상한 이미지를 만났을 때 곧바로 의미를 맞히려 하기 전에 자신이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기억해보자. 뒤의 장면을 본 다음 그 느낌이 달라질 수도 있다. 설명과 감정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영화다.

관련 작품

◆ 〈에너미〉 (2013, 드니 빌뇌브) — 배우와 공간을 통해 불안을 만드는 선택을 집중해서 볼 수 있다. 줄거리를 이미 알고 다시 보아도 얼굴과 도시가 주는 감각은 남는다. 구별을 돕는 요소와 구별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를 함께 살펴볼 만하다.

◆ 〈버닝〉 (2018, 이창동) — 인물의 판단을 따라가면서도 모든 것을 확정할 수는 없게 한다. 설명이 비어 있는 자리를 연기와 장소가 어떻게 채우는지 비교해볼 수 있다. 관객이 답을 찾는 동안 어떤 감정을 먼저 갖게 되는지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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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