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투지스의 영화를 만들면서 데이비드 보위와 존 케일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었다. 짐 자무쉬는 두 사람을 좋아했고, 인터뷰할 생각도 했다. 그러나 결국 촬영하지 않았다. 찍어두면…
스투지스의 영화를 만들면서 데이비드 보위와 존 케일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었다. 짐 자무쉬는 두 사람을 좋아했고, 인터뷰할 생각도 했다. 그러나 결국 촬영하지 않았다. 찍어두면 쓰고 싶어질 테고, 그러면 밴드 밖의 사람에게 영화의 시간을 내주게 된다. 〈김미 데인저〉에서 새로 카메라 앞에 앉힐 사람은 스투지스와 그들의 가족처럼 가까운 이들로 한정했다. 유명한 증언자를 더하기보다, 누구에게 오래 귀 기울일지 먼저 정한 것이다.
자무쉬는 이 영화를 팬의 영화라고 불렀다.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의 위대함을 입증하려면 명성 있는 음악가의 칭찬이 도움이 될 법도 하다. 그런데 그가 고른 사람들 안에는 밴드 멤버뿐 아니라 애슈턴 형제의 여동생 캐시 애슈턴, 밴드와 일한 대니 필즈가 있다. 음악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는지 평가하기에 앞서, 어떤 사람들이 함께 그 소리를 만들었는지 듣고 싶은 마음이 이 선택에 담겨 있다.
영화를 제안한 사람은 이기 팝이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자무쉬가 스투지스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무쉬는 제안을 받은 뒤부터 어떤 방식으로 만들지 궁리했다. 음악가가 감독에게 자신의 일대기를 맡겼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영화가 붙잡은 대상은 이기 한 사람보다 넓다. 카메라 앞에서 가장 익숙한 얼굴이 말하더라도, 그가 떠올리는 동료들에게 주의를 돌리는 영화다.
자무쉬에게 스투지스는 영화 작업을 하며 뒤늦게 발견한 밴드가 아니다. 그는 십대 후반에 이들의 음악을 들었고, 자신이 살던 오하이오의 생활과 가까운 음악으로 받아들였다. 산업도시의 노동계급 청년에게 말을 거는 거칠고 새로운 소리였다고 회고한다. 훗날 감독이 된 사람이 과거의 음악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처음 그 음악을 들은 청년의 애정이 남아 있다.
그가 특히 좋아했던 것은 이기 팝이 공연장에서 관객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객석으로 뛰어들고, 관객을 무대 위로 부른다. 자무쉬는 그 행동에서 밴드와 관객 사이의 벽을 허무는 즐거움을 보았다. 무대 위 사람을 멀리서 우러러보기만 하는 관계와는 다르다. 자신도 음악이 벌어지는 자리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꼈던 팬이, 이제 그 음악을 다른 관객에게 전하는 감독이 됐다.
그래서 이 작품의 친밀함은 유명인과 오래 아는 사이라는 데서만 생기지 않는다. 감독이 어떤 공연의 감각을 소중하게 여기는지가 인터뷰 상대를 고르는 태도와 연결된다. 가까이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주면 밴드는 위대한 이름이 되기 전의 사람들로 돌아온다. 팬인 감독의 애정은 그들을 더 멀리 떠받드는 대신, 그들이 무엇에 웃고 무엇을 기억하는지 들을 시간을 확보하는 쪽으로 향한다.
이 영화에는 인터뷰만 있지 않다. 사진과 공연 자료, 텔레비전과 극영화의 조각, 새로 만든 애니메이션이 함께 들어간다. 밴드가 들려주는 기억을 얼굴과 말에만 맡기지 않는 구성이다. 누군가의 설명 옆에 다른 시대의 이미지가 끼어들면, 관객은 말을 이해하는 동시에 예상 밖의 연결을 만나게 된다. 반듯한 약력을 읽을 때와 다른 속도로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는 셈이다.
이처럼 자료를 자유롭게 섞어 보이는 영화에도 사용 허락을 받는 일은 필요했다. 자무쉬는 자료의 권리를 정리하는 데만 일 년 반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비용이 너무 높아 쓸 수 없는 사진이 생기면 다른 자료를 찾아야 했다. 함께 일한 아리엘 드 생팔은 자료를 대신할 것을 찾고, 소장자를 추적하며 협상을 이어갔다. 감독이 떠올린 연결을 화면에 남기려면 누군가는 이미지의 주인을 찾아 연락하고 조건을 맞춰야 했다.
이 과정을 알고 보면 콜라주라는 말은 조금 구체적으로 들린다. 완성된 영화의 자유로운 이미지 연결은 소장자를 찾고 사용 조건을 맞추는 현실적인 노동과 떨어져 있지 않다.
자료를 모으는 일과 화면을 조립하는 일에도 여러 사람이 참여했다. 편집은 아폰소 곤살베스와 애덤 커니츠가, 애니메이션은 제임스 커가 맡았다. 자무쉬가 함께할 사람의 범위를 고른다는 것은 화면에 출연할 사람만 고른다는 뜻이 아니다. 이미지를 자르고 이어 붙이며 움직이게 하는 동료들도 영화가 밴드를 대하는 방식에 참여한다. 감독의 애정을 관객이 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과정에는 이들의 손이 필요하다.
자무쉬는 오랫동안 영화를 만든 뒤에도 자신을 아마추어라고 불렀다. 잘하지 못한다는 겸손의 표현으로 꺼낸 말은 아니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어떤 형식을 좋아해서 일하는 태도였다. 젊은 시절 펑크 문화는 완벽한 기술이나 큰 성공을 갖추기 전에, 자신이 느끼는 것을 표현해도 된다는 용기를 주었다. 그 경험이 처음 영화를 만드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한다.
이 태도는 〈김미 데인저〉가 팬의 영화라는 설명을 이해하게 한다. 좋아하는 대상과 거리를 두고 중립적인 권위를 얻으려 하기보다, 왜 오래 좋아했는지를 영화의 선택으로 드러낸다. 인터뷰할 사람을 제한하고, 흩어진 자료를 모으고, 애니메이션을 섞는 방식에는 좋아하는 밴드에게 어울리는 영화를 찾으려는 고민이 있다. 팬이라는 말이 작업을 대신하는 면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작업의 방향을 정한다.
자무쉬가 같은 시기에 만든 〈패터슨〉을 함께 떠올릴 수도 있다. 버스를 운전하며 시를 쓰는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은 무대 위 이기 팝과 매우 다른 인물이다. 하지만 일상의 언어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는 접점이 있다. 자무쉬는 이 영화의 버스 시점을 준비하며 직접 버스를 타보았다고 말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좀처럼 버스 안을 올려다보지 않는다. 그는 조금 높은 자리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감각을 영화에 담으려 했다.
큰 무대에서 몸을 던지는 음악가와 조용히 도시를 바라보는 버스 기사를 하나의 성격으로 묶을 필요는 없다. 자무쉬는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스투지스의 경우에는 이미 잘 알려진 이기 팝의 몸짓 옆에 동료들의 기억과 오래된 이미지가 놓인다. 영화를 보고 나서 노래를 다시 들을 때, 전에는 지나쳤던 다른 멤버의 소리에도 귀가 간다면 그 친밀함은 관객에게까지 이어진 것이다.
◆ 이기 팝이 동료를 떠올릴 때: 자신을 설명하는 말과 다른 멤버를 이야기하는 말을 구별해서 들어보자. 밴드 안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어떤 기억으로 남았는지 알 수 있다.
◆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의 관계: 평가를 내리는 유명인의 목소리보다 곁에서 지낸 사람들의 기억에 집중해보자. 같은 밴드가 관계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떠오르는지 살펴볼 수 있다.
◆ 말 옆에 들어오는 이미지: 사진, 영상, 애니메이션이 인터뷰를 단순히 설명하는지, 다른 느낌을 덧붙이는지 보자. 자료를 이어 붙이는 편집의 재미가 있다.
◆ 무대와 객석 사이: 공연 자료에서 이기 팝이 관객과 어떻게 가까워지는지 살펴보자. 자무쉬가 팬으로서 좋아했던 참여의 즐거움을 생각해볼 수 있다.
◆ 〈김미 데인저〉 (2016, 짐 자무쉬) — 스투지스를 오래 좋아한 감독이 인터뷰 상대와 자료를 고르며 밴드의 집단적인 기억을 영화로 만든 연결작이다.
◆ 〈스탑 메이킹 센스〉 (1984, 조나단 드미) — 토킹 헤즈의 공연을 담은 영화다. 인터뷰와 자료를 엮는 자무쉬의 방식과 달리, 공연 자체를 통해 밴드 멤버들의 존재와 호흡을 보여주는 연출을 비교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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