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싸움에 익숙한 이연걸도 〈용문비갑〉에서는 무기를 휘두를 지점을 다시 배워야 했다. 입체 화면에서 무기가 어떤 방향으로 뻗어 나갈지, 나중에 더해질 효과와 몸의 움직임이 어떻게 …
칼싸움에 익숙한 이연걸도 〈용문비갑〉에서는 무기를 휘두를 지점을 다시 배워야 했다. 입체 화면에서 무기가 어떤 방향으로 뻗어 나갈지, 나중에 더해질 효과와 몸의 움직임이 어떻게 맞을지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연출한 서극에게도 숙제가 있었다. 빠르게 잘라 붙이던 자신의 편집 방식이 입체 화면에서는 관객이 공간을 따라가기 어렵게 할 수 있었다. 검이 빨라 보이게 찍는 감독이 이번에는 보는 사람의 눈을 기다려야 했다.
서극은 낡은 이야기에서 새 영화를 찾는 데 능하다. 무협의 검객, 황비홍, 명탐정 적인걸처럼 관객에게 익숙한 이름도 그가 손대면 처음 보는 공간과 움직임을 얻는다. 그 변신을 컴퓨터 효과의 양으로만 설명하면 재미있는 부분이 빠진다. 새로운 기술을 쓰기로 한 뒤, 이미 잘하던 일까지 고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용문비갑〉의 싸움은 화면의 옆으로만 펼쳐지지 않는다. 관객 쪽으로 뻗어 오는 무기와 앞뒤로 벌어진 인물의 거리가 액션의 일부가 된다. 이연걸은 입체 촬영에 맞춰 무기의 위치와 동작을 거듭 조정했다고 말했다. 몸으로 익힌 검술에 카메라가 요구하는 좌표를 더해야 했던 셈이다. 관객에게는 한순간에 지나가는 움직임이지만, 배우에게는 어디를 겨누는가부터 달라지는 일이었다.
서극은 빠른 편집이 입체감을 충분히 느끼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기 전에 관객이 그 안의 거리와 부피를 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짧은 숏을 잇는 솜씨가 있다고 해서 계속 짧게 자를 수는 없다. 눈앞으로 날아드는 검을 보여주려면, 그 검이 출발하는 공간부터 읽혀야 한다.
이 점을 생각하면 액션을 볼 때 배우의 속도 외에 다른 리듬도 들여다보게 된다. 동작을 시작하기 전 인물이 어디 서 있는지 알아볼 틈이 있는가. 칼이 움직인 뒤에는 그 방향을 따라갈 수 있는가. 서극의 기술적 실험은 이런 아주 기본적인 관람의 조건까지 건드린다. 화면이 화려할수록 오히려 무엇을 보고 있는지 분명해야 한다.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의 거대한 불상은 영화가 다루는 권력의 규모를 단번에 보여준다. 서극은 그 불상을 실제 크기로 세울 수 없어 컴퓨터로 구현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야기에 필요한 크기를 정한 뒤, 그것을 화면에 옮길 방법을 찾은 것이다. 적인걸(유덕화)이 밝혀야 하는 사건은 인물들의 대화뿐 아니라 이렇게 과장된 공간에서도 펼쳐진다.
그 공간 안에서 싸우는 몸은 따로 설계해야 한다. 이 작품에서 무술감독 홍금보와 액션을 준비할 때는 종이에 움직임을 구상하고, 필요한 경우 애니메이션으로 미리 확인한 뒤, 리허설 영상을 찍어 촬영에 대비했다. 거대한 배경을 그리는 일과 배우가 다음 발을 어디에 디딜지 정하는 일이 함께 진행된다. 완성 화면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들도 현장에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맞춰야 할 작업이다.
서극이 적인걸에게 끌린 이유에는 측천무후와의 관계도 있었다. 수사관이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목표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가 상대하는 권력은 단순하지 않다. 누가 그에게 일을 맡겼으며, 알아낸 것을 누구 앞에서 말해야 하는가. 공간을 크게 부풀리는 상상력 곁에는 그런 인물 관계에 대한 관심이 있다. 위압적인 건물과 권력을 가진 사람의 얼굴을 함께 보게 하는 이유다.
입체 영화에서는 자막조차 별개의 문제가 된다. 서극은 〈적인걸2: 신도해왕의 비밀〉을 이야기하며, 자막과 얼굴을 가까이 잡은 화면이 서로 간섭할 수 있어 배치에 신경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관객은 인물의 얼굴도 보고 글도 읽어야 한다. 눈이 두 곳을 오가는 동안 공간의 깊이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공들인 장면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거대한 괴물이나 무기부터 떠올리기 쉬운 감독이 자막의 위치까지 고민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무언가를 더 넣는 것만이 기술을 쓰는 방법은 아니다. 화면 안에 이미 들어 있는 것들이 서로 방해하지 않게 하는 일도 필요하다. 관객의 눈길을 어디로 이끌지 결정하는 문제에서는 작은 글자와 커다란 환상 생물이 같은 화면의 구성 요소가 된다.
그렇다고 모든 부분을 감독 혼자 해결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적인걸2: 신도해왕의 비밀〉의 거대한 가오리 장면에는 한국의 시각효과 제작사 모팩도 참여했다. 기술을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는 기술자들과 함께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서극의 상상을 감상하는 동시에, 그 상상을 여러 사람이 읽고 작업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과정도 떠올릴 수 있다.
서극은 어린 시절 좋아했던 황비홍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마음에는 익숙한 것을 되풀이하고 싶은 욕심과 조금 다른 성질이 있다. 자신이 느꼈던 흥분을 다른 시대의 관객에게도 주려면, 그 관객이 이미 보고 자란 영화와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옛이야기가 출발점이어도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은 새로 구해야 한다.
〈용문비갑〉을 준비할 때도 예전 〈신용문객잔〉의 배우들이 남긴 인물을 그대로 대체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앞선 영화의 인물은 그 배우와 함께 기억된다는 생각이었다. 같은 객잔의 세계로 돌아가면서도 새 인물과 이야기를 찾는다. 추억이 있다는 이유로 옛 모습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 선택이다.
그 선택에는 실패할 가능성도 따라온다. 익숙한 편집을 바꾸고, 배우의 동작을 다시 맞추고, 효과를 넣은 뒤의 공간을 미리 상상해야 한다. 바로 그 수고가 서극의 영화를 여러 편 이어 볼 때 눈에 들어온다. 다음에는 무엇을 더 크게 만들었는가뿐 아니라, 그것을 보여주려고 무엇을 다시 배웠는가. 검객이 날아오르는 순간에도 그 뒤에는 자기 방식부터 고쳐보는 감독이 있다.
◆ 검이 움직일 공간 — 〈용문비갑〉에서 무기가 뻗는 방향과 인물 사이의 거리를 함께 살펴보자. 빠른 동작을 이해할 수 있도록 공간이 어떻게 제시되는지가 관찰 대상이다. 평면 화면으로 감상할 때도 배우의 속도만 따라가는 것과는 다른 재미가 있다.
◆ 크기를 실감하게 하는 사람 —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의 거대한 불상과 그 주변 인물의 크기를 비교해보자. 건축물이 크다는 정보가 사람이 그 안에서 얼마나 작게 보이는지를 통해 실감으로 바뀐다. 거대한 배경이 사건의 분위기에 어떤 압력을 주는지 볼 수 있다.
◆ 한 장면 안에서 눈이 바쁜 순간 — 대사와 얼굴, 배경의 움직임을 동시에 살펴야 할 때 무엇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지 느껴보자. 자막이 있는 판본이라면 글을 읽다가 놓치는 것이 있는지도 살필 수 있다. 입체 효과를 직접 체험하지 않아도 화면 속 주의가 어떻게 배분되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 전통적인 인물의 낯선 환경 — 검객과 명탐정처럼 익숙한 인물이 어떤 공간에 들어가는지 보자. 의상과 이름에서는 옛 장르의 즐거움을 얻으면서, 움직임과 배경에서는 새로운 광경을 만날 수 있다. 두 감각이 한 작품 안에서 어떻게 어울리는지가 서극 영화의 중요한 재미다.
◆ 〈용문비갑〉 (2011, 서극) — 객잔과 사막, 검객이라는 익숙한 무협의 재료를 입체 촬영의 조건 속에서 다시 구성한다. 배우의 동작과 공간을 함께 읽으며 보면 새 기술이 기존 액션의 리듬까지 바꾸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 (2010, 서극) — 추리와 궁정의 권력 다툼, 거대한 환상적 공간을 한데 묶는다. 액션 장면의 규모만큼 그 안에서 누가 누구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지에도 주목하면, 서극이 인물 관계와 시각적 상상을 엮는 방식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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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