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영화를 끝내려고 뉴스를 덜 봤다 | MovieLAB LAB

트럼프에 관한 영화를 만들면서 매일 뉴스를 보지 않기로 했다. 감독 마이클 무어가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를 작업하며 내린 결정이다. 하루가 지나면 또 다른 발언과 논란…

트럼프 영화를 끝내려고 뉴스를 덜 봤다 | MovieLAB LAB

트럼프에 관한 영화를 만들면서 매일 뉴스를 보지 않기로 했다. 감독 마이클 무어가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를 작업하며 내린 결정이다. 하루가 지나면 또 다른 발언과 논란이 쏟아졌다. 그것을 계속 따라가다가는 영화를 끝낼 수 없었다. 무어에게 필요했던 것은 가장 최근의 소식을 덧붙이는 일보다, 수많은 사건 중 무엇을 한 편의 영화에 남길지 정하는 일이었다.

2018년에 나온 이 다큐멘터리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과정을 되짚는다. 그런데 대통령에게 향하던 카메라는 학교와 공장 도시로 자꾸 옮겨간다. 무어 자신이 트럼프와 함께 출연했던 옛 방송까지 나온다. 시끄러운 정치인의 말을 잠깐 멈춰놓자 다른 사람에게 물을 시간이 생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무어가 포기한 화면과 새로 찾아간 자리를 보면, 그를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으로만 기억하기는 어렵다.

가장 기억에 남은 인터뷰는 영화에 없다

무어는 이 영화를 위해 한 인터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스티브 배넌과의 만남을 꼽았다. 트럼프의 정치 전략을 이끈 인물과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하지만 배넌은 방 안에 카메라를 들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 인터뷰는 영화에 들어가지 않았다.

감독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만남과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장면 사이에는 이런 차이가 생긴다. 무어가 나중에 그 대화를 설명해도 관객은 당시 두 사람이 주고받던 표정과 침묵을 직접 볼 수 없다. 무엇을 들었는지 아는 것과 그 만남을 영화로 경험하는 것은 같지 않다. 조사한 내용을 전부 화면으로 옮길 수는 없는 것이다.

무어는 상대에게 접근하는 자신의 모습을 오래 영화의 재료로 써왔다. 〈로저와 나〉에서는 고향 플린트의 공장 폐쇄가 주민들에게 남긴 일을 따라가며 자동차 회사의 회장에게 책임을 묻고자 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과 그 사람의 결정 때문에 생활이 바뀐 주민들이 한 영화에 놓인다. 무어의 몸이 화면에 들어오는 것은 자기 존재를 알리는 일이면서, 질문할 기회를 얻으려는 과정까지 보여주는 방법이었다.

망설여지면 내 얼굴을 덜어내기

무어는 다큐멘터리에도 관객이 즐길 만한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알려야 할 사실이 중요하다는 이유만으로 관객의 관심이 저절로 따라오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그의 편집실에는 망설여지면 자기 모습을 덜어내라는 뜻의 문구도 붙어 있었다. 감독 본인의 출연도 무조건 남겨둘 이유는 없었다.

〈화씨 11/9〉를 만들 때에는 매일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도 담을 사건을 골라야 했다. 무어는 트럼프 이전부터 있었고 그 이후에도 남을 문제를 넓게 보고 싶다고 설명했다. 새 논란이 나올 때마다 추가하는 방식으로는 그 관계를 살피기 어렵다. 대통령의 발언을 아는 것과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것은 서로 다른 작업이다.

영화가 플린트로 돌아가는 이유도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다. 〈로저와 나〉에서 공장 폐쇄를 겪었던 고향은 이번 영화에서 수돗물 오염으로 다시 등장한다. 같은 도시를 다시 찾으면 대통령이 바뀌었다는 소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주민들의 시간이 보인다. 무어에게 플린트는 전국적인 문제의 사례를 급히 찾다가 발견한 지명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카메라를 들고 다녔던 곳이다.

교실 같은 실내에서 모자와 안경을 쓴 남성이 정면을 바라본다

남을 비판하려고 꺼낸 영상 속에 내가 있었다

무어가 새로 살핀 자료에는 자신도 들어 있었다. 1998년 방송에서 그는 트럼프와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어는 당시 상대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회고했다. 지금의 날카로운 비판자와 과거의 방송 출연자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다.

정치인을 공격하는 영화에서 감독은 쉽게 질문만 하는 자리에 설 수 있다. 하지만 그 옛 영상을 넣으면 관객도 감독에게 물을 수 있다. 그때는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무어는 자신과 비슷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책임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과거도 함께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이때 자료를 사용하는 목적은 유명인과 한자리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 그 사람을 어떤 태도로 대했는지 다시 살피는 데 있다. 방송할 때는 무사히 지나간 순간이 나중에는 곱씹어야 할 장면이 된다. 옛 영상을 현재의 판단과 나란히 놓는 편집이, 자료 속 인물뿐 아니라 그 자료를 고른 감독의 얼굴도 바꾼다.

물 운반 차량 앞에서 모자를 쓴 남성이 긴 호스를 들고 있다

이미 회의를 시작한 학생들 곁으로

영화에서 무어는 파크랜드 총격 사건을 겪은 학생들의 활동 공간을 찾아간다. 학생들은 집회를 준비하고 정치인에게 요구를 전하고 있었다. 감독이 찾아와 할 일을 알려주기 전에 이미 자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무어의 강한 목소리가 중심이던 영화 안에, 감독이 들어가서 들어야 하는 자리가 생긴다.

이 만남에는 피해를 증언하는 장면과 다른 종류의 움직임이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는 사람에게서는 과거의 고통을 듣게 된다. 다음에 무엇을 할지 의논하는 사람에게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을 보게 된다. 영화가 학생들의 계획에 시간을 내주면서 관객도 그들을 사건의 생존자라는 말만으로 기억할 수 없게 된다.

무어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에게 자기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반드시 카메라 앞에 나와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화씨 11/9〉에서도 그의 관점은 등장 시간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누구를 찾아가고 어떤 말을 듣게 하는지에 남아 있다. 뉴스를 매일 덧붙이는 대신 학생들이 다음 일을 준비하는 시간을 고른 곳에서도 감독의 선택을 만난다.

감상 포인트

◆ 질문하는 무어와 같은 화면의 상대 — 무어가 직접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그의 말뿐 아니라 상대가 반응할 때까지의 시간도 보자. 질문에 어떤 대답이 돌아오는지, 대화를 이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가 함께 기록된다. 감독이 몸소 카메라 앞에 서는 방식의 재미를 살필 수 있다.

◆ 대통령에게서 멀어지는 화면 — 트럼프의 모습에서 플린트 주민이나 학생들에게로 영화가 옮겨갈 때 어떤 이야기를 새로 듣게 되는지 따라가보자. 대통령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 장면도 이 영화의 질문을 이어간다. 무어가 뉴스의 순서 대신 고른 연결이 보인다.

◆ 과거의 무어를 보는 현재의 무어 — 옛 방송 영상에서 감독이 상대를 대하는 모습을 살펴보자. 현재의 비판과 과거의 태도를 함께 놓으면 같은 얼굴이 낯설어질 수 있다. 자신에게 불편한 자료를 포함한 선택이 관객과 감독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생각할 만하다.

◆ 학생들이 준비하고 있는 일 — 학생들이 피해를 설명하는 시간과 집회나 활동을 준비하는 시간을 구별해보자. 무어가 듣는 사람으로 그 공간에 들어갈 때, 누가 다음 일을 결정하는지도 눈에 들어온다. 인물의 고통을 아는 데서 한 걸음 더 가서 그 사람의 계획에 관심을 갖게 된다.

관련 작품

◆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 (2018, 마이클 무어) —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감독 자신의 태도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다. 무어가 무슨 말을 하는지와 함께 누구에게 발언할 시간을 주는지 살피면, 그의 주장이 화면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 〈로저와 나〉 (1989, 마이클 무어) — 공장 폐쇄 이후의 플린트 주민들과 기업의 책임을 묻는 감독의 여정을 함께 담았다. 〈화씨 11/9〉에서 다시 등장하는 도시를 비교하면, 뉴스의 주인공이 바뀌는 동안에도 이어져온 무어의 관심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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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