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이야기를 듣다가 감독의 생각이 달라졌다 | MovieLAB LAB

각본을 쓴 뒤에도 두 감독이 더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한 소녀〉를 함께 연출한 오영산과 양조개는 자신들과 비슷한 나이의 여성들을 만나 학창 시절의 관계…

첫사랑 이야기를 듣다가 감독의 생각이 달라졌다 | MovieLAB LAB

각본을 쓴 뒤에도 두 감독이 더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한 소녀〉를 함께 연출한 오영산과 양조개는 자신들과 비슷한 나이의 여성들을 만나 학창 시절의 관계에 관해 물었다. 누군가는 사랑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우정이라고 했다. 친밀했던 관계를 지금 어떤 말로 부르는지는 사람마다 달랐다. 양조개는 동료들이 설명하는 내용을 처음에는 모두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실제 경험을 들으며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한 사람이 사랑으로 간직한 관계를 다른 사람은 다르게 기억한다. 윙(담선언)과 실비아(양시영)는 여학교에서 가까워졌고, 시간이 흐른 뒤 한 사람의 결혼을 앞두고 다시 만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관계를 부르는 말이 왜 달라지는지 함께 알아가야 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같은 기억을 지녔다고 생각한 사람들 사이에 어떤 거리가 생길 수 있는지, 제작 과정에서도 듣고 배운 셈이다.

같은 대학을 나와 다른 현장에 서다

오영산과 양조개는 대학 동창이다. 졸업 뒤 오영산은 제작 현장에서 일했고 양조개는 배우가 됐다. 각자 일을 이어가던 두 사람은 한때 품었던 영화의 꿈을 다시 꺼냈다. 오영산에게는 여학교에서 지낸 경험이 있었고, 양조개는 남녀공학을 다녔다. 둘은 같은 세대였지만 같은 학교생활을 기억하지는 않았다.

여학교의 두 소녀를 중심에 놓는 이야기는 오영산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양조개가 붙잡고 싶었던 것은 자신들이 학생이던 2000년대 초 홍콩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는 사스가 유행하던 때 마스크를 쓰고 시험을 보러 갔던 기억을 이야기했다. 학창 시절을 영화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에는 첫사랑만큼, 그때 자신들이 어떤 도시에서 어떤 일을 겪으며 살았는지를 기억하려는 바람도 있었다.

두 사람은 또 다른 대학 동창인 각본가 수전 신과도 함께했다. 양조개의 설명에 따르면 수전 신 역시 여학교를 다녔다. 비슷한 경험을 지닌 사람이 한 명 더 생긴 것은 같은 말을 반복해줄 사람이 늘어났다는 뜻과 다르다. 세 사람이 기억하는 학교와 관계가 각본을 놓고 만날 수 있었다. 양조개는 서로 다른 세 시선이 이야기가 나아갈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카메라 앞과 뒤에서 다른 경험을 쌓았고, 학교에 대한 기억도 달랐다. 영화 안에 어떤 감정을 남길지 정할 때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설명을 듣는 일이 필요했다. 두 사람이 모두 직접 겪은 일만 모아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옆으로 누운 두 여성의 얼굴이 가까이 맞닿아 있다

사랑이었다는 말, 친구였다는 말

여성들과의 인터뷰는 그 차이를 더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양조개는 같은 세대의 이야기를 듣는 조사가 유용했다고 돌아봤다. 오영산과 수전 신의 관점에서 설명되던 부분이, 다른 여성들의 경험을 듣자 더 이해됐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오래전 관계를 사랑이라고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친밀했더라도 친구였다고 말하는 이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영화의 끝 크레디트에 실제 여성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도 그래서 눈여겨볼 만하다. 극영화 속 두 사람을 본 뒤, 관객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 목소리를 만난다. 한 편의 이야기가 그 경험들을 모두 대표하는 정답이 되기보다, 다른 기억을 더 듣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 등장인물에게 마음이 갔다면, 비슷한 시간을 지난 사람이 지금 그것을 어떻게 말하는지도 궁금해질 수 있다.

여기서 두 감독의 관심은 첫사랑을 예쁘게 간직하는 데서 조금 더 나아간다. 기억은 소중하지만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보관하지는 않는다. 어떤 관계를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다르다. 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볼 때,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큼 지금 그 일을 말하는 사람이 어떤 표현을 고르는지 신경 쓰게 된다. 취재 과정에서 감독이 더 듣고 싶어 했던 부분과 관객의 관심이 만나는 자리다.

비가 내리는 야외에서 교복 입은 두 소녀가 입을 맞추고 있다

배우를 찾으며 새 얼굴의 자리를 만들다

공동연출이 시작되기 전부터 양조개는 배우로 일하면서 감독의 일을 눈여겨봤다. 카메라를 왜 그 자리에 두는지, 한 장면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물어보며 배웠다고 한다. 현장에서 자신의 역할만 해내는 것과 장면 전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는 출연하는 시간을 나중에 직접 촬영할 준비로도 썼다.

이번 영화의 배우를 고를 때에는 유명한 배우를 쓰는 편이 흥행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양조개는 경험 있는 선배들이 신인을 이끄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신들도 새 감독인 만큼 주연 배우에게도 기회를 열고 싶었다는 것이다. 공개 모집과 오디션을 거쳐 만난 약 200명 가운데 담선언과 양시영을 골랐다. 그가 꼽은 이유는 두 사람의 분위기와 배역을 소화하는 힘이었다.

선택된 배우들에게도 학창 시절로 돌아가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담선언은 학생의 첫사랑을 다시 표현할 때 자신의 나이가 걱정됐다고 밝혔다. 자료를 본 뒤에는 나이나 학생이라는 조건만 생각하기보다, 그 사람을 좋아해서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집중했다. 양시영에게도 학교로 돌아가 설레는 감정을 되찾는 경험이 중요했다. 두 배우는 각자 자신이 아는 감정을 배역에 가져왔다.

감독들이 조사에서 만난 것은 과거의 친밀함을 다르게 기억하는 사람들이었고, 배우들이 촬영에서 찾아야 했던 것은 바로 그때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이었다. 현재의 언어로 과거를 설명하는 일과, 과거의 감정을 지금 몸으로 연기하는 일은 서로 다른 준비를 요구한다. 오영산과 양조개는 이 두 시간이 한 영화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사람들을 모았다. 이야기를 만드는 단계의 경청이, 촬영에서는 배역에 어울리는 감정을 발견하는 일로 이어진다.

감상 포인트

◆ 과거의 감정을 현재에 부르는 말 — 윙과 실비아가 자신의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살펴보자. 가까이 지냈다는 기억이 남아 있어도 그 기억의 이름까지 같지는 않을 수 있다.

◆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 — 학창 시절의 두 인물을 볼 때 어떤 사건이 생기는지만큼 상대를 대하는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배우들이 다시 찾으려 했던 첫사랑의 감정이 어디서 느껴지는지 생각할 만하다.

◆ 학교에서 결혼을 앞둔 현재로 — 두 시대를 오갈 때 인물들이 서로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자. 시간의 변화가 관계 안에서 각자 차지하는 자리에도 영향을 준다.

◆ 끝 크레디트의 실제 목소리 — 극영화가 끝난 뒤 여성들이 자신의 기억을 말하는 부분까지 들어보자. 두 인물의 이야기 옆에 어떤 다른 경험이 놓이는지 알 수 있다.

관련 작품

◆ 〈내가 처음으로 사랑한 소녀〉 (2021, 오영산·양조개) — 서로 다른 학교와 현장을 거친 두 감독이 각본 작업과 인터뷰를 통해 첫사랑의 기억에 다가간 연결작이다.

◆ 〈그 여름〉 (2023, 한지원) — 학교에서 사랑에 빠진 두 여성이 성장하며 다른 삶을 마주하는 애니메이션이다. 함께 시작한 관계가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 각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비교할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