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 명령을 받은 영화는 어떻게 남았을까 | MovieLAB LAB

필름을 모두 없애라는 판결을 받은 영화가 지금도 상영된다. 누군가 한 벌을 숨겨둔 덕분이라는 이야기로 끝내기에는, 이 영화가 남긴 자료가 훨씬 복잡하다. 프랑스에서 상영된 필름,…

폐기 명령을 받은 영화는 어떻게 남았을까 | MovieLAB LAB

필름을 모두 없애라는 판결을 받은 영화가 지금도 상영된다. 누군가 한 벌을 숨겨둔 덕분이라는 이야기로 끝내기에는, 이 영화가 남긴 자료가 훨씬 복잡하다. 프랑스에서 상영된 필름, 체코 수출판에서 옮긴 보존용 필름, 나중에 다시 편집한 판본에 남아 있던 장면들. 오늘 우리가 보는 흡혈귀는 여러 곳에 흩어진 자료를 대조하고 이어 붙인 사람들의 손을 거쳐 돌아왔다.

F.W. 무르나우노스페라투는 1922년 공개됐다.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를 허락 없이 각색한 영화였다. 제작사는 제목과 인물 이름을 바꾸었지만 소송을 피하지 못했다. 이 작품을 지금 볼 수 있다는 사실에는 독창적인 영화를 만든 과정과, 그 영화를 남길 권리를 둘러싼 다툼이 함께 들어 있다.

이름을 바꾸어도 사라지지 않은 원작

제작사 프라나 필름은 스토커의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준비했다. 헨리크 갈렌이 각본을 쓰고 알빈 그라우가 미술을 맡았다. 드라큘라 백작은 올록 백작이 되었고, 영국에서 벌어지던 사건은 독일의 가상 항구도시 비스보르크로 옮겨졌다. 젊은 남자가 부동산 거래 때문에 백작의 성에 가고, 그 백작이 남자의 아내가 사는 도시로 향한다는 큰 흐름은 남았다.

원작자의 미망인 플로렌스 스토커는 제작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고 영화의 필름을 폐기하도록 명령했다. 프라나 필름은 1922년 6월 파산을 신청했다. 영화가 공개된 뒤, 무단 각색에 대한 소송과 판결로 그 유통과 보존이 위태로워진 것이다.

이 사건에서 영화에 대한 평가와 원작 사용의 허락은 서로 다른 문제다. 폐기 명령이 내려졌다고 모든 나라에 나간 필름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국외에 남은 여러 자료가 훗날 복원의 출발점이 됐다.

집을 사러 온 백작이 도시로 들어온다

막스 슈렉이 연기하는 올록은 성 안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낯선 손님을 압도한다. 후터는 집을 팔기 위해 방문했지만, 다음 날 자기 목에 남은 자국을 발견하며 거래 상대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일상의 업무로 시작한 여행이 다른 성격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머리가 벗겨진 인물이 열린 관 안에 누워 두 손을 포개고 있다. 왼쪽에는 다른 남성이 등을 보인 채 관을 들여다보고, 뒤로 돌계단이 이어진다.

올록이 향하는 곳은 후터가 떠나온 도시다. 백작과 함께 들어오는 관과 쥐들은 공포를 한 사람의 경험에서 도시의 재앙으로 넓힌다. 성 안에서 후터가 겪은 일이 바깥의 사람들에게도 닥칠 수 있다. 위험한 장소에서 탈출하는 것만으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이유다.

무르나우는 비스마르와 뤼벡, 카르파티아의 성 등 실제 장소에서 외부 장면을 찍었다. 건물과 길이 있다는 사실은 관객에게 이동의 경로를 준다. 후터는 그 길로 성을 찾아가고, 백작은 바다를 건너 일상이 이어지던 도시로 온다. 초자연적인 존재가 사람이 사는 장소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불안을 만든다.

분홍색조 화면에 바다와 모래언덕, 여러 십자가가 보인다. 오른쪽 인물이 의자에 앉아 바다 쪽을 바라본다.

해변에 놓인 십자가와 바다를 향해 앉은 인물을 함께 보면, 넓은 바깥 풍경도 마냥 트여 보이지 않는다. 바다는 성과 도시 사이를 잇는 길인 동시에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거리다. 폐쇄된 방뿐 아니라 사람이 지나가고 머무는 풍경 전체가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살아남은 장면을 서로 맞춰보는 일

2005~2006년 루치아노 베리아투아가 무르나우재단의 의뢰로 진행한 복원은 1922년 프랑스어 자막이 들어간 착색 질산염 프린트를 바탕으로 삼았다. 빠진 장면은 체코 수출판에서 만들어진 1939년 보존용 프린트 등으로 보완했다. 1930년대 재편집판에 남은 장면도 이용했다. 한 자료에 없는 것이 다른 자료에 남아 있었다.

자막도 따로 맞춰야 했다. 독일 연방기록보관소에 있던 1962년 보존용 프린트에 원래의 삽입 화면과 자막이 많이 남아 있었고, 없는 자막은 원래 글자 모양을 참고해 다시 만들었다. 얼굴과 풍경만 남기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인물이 누구인지, 편지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알려주는 글까지 장면의 흐름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알면 복원이라는 말이 단순히 화면을 선명하게 하는 작업보다 넓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장면이 어느 자료에 남아 있는지 찾고, 그 장면이 들어갈 자리를 판단해야 한다. 다른 언어로 옮겨진 자막과 다른 시기에 복제된 필름을 통해 처음의 영화를 추적하는 일이다.

해외로 나간 사본은 원본에서 멀어진 자료이면서, 원본의 일부를 되찾게 하는 자료이기도 하다. 노스페라투의 생존은 필름 한 벌의 행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여러 곳에 남은 것을 보관하고 다시 읽을 수 있어야 영화의 시간이 이어진다.

장면의 색과 반주를 되찾는다

캔버스 질감의 그림 오른쪽에 두 앞니와 큰 눈이 두드러진 얼굴이 있고, 왼쪽에는 검은 원과 뾰족한 지붕들의 실루엣이 있다.

당시 프린트에는 장면을 일정한 색조로 물들이는 착색이 쓰였다. 낮과 밤, 실내와 바깥의 분위기를 달리하는 색이다. 사진 한 장에서 기억한 모습과 상영 중 이어지는 화면의 인상이 달라질 수 있다.

반주에도 별도의 역사가 있다. 한스 에르트만이 만든 원래 음악은 베른트 헬러의 재구성을 거쳐 다시 연주됐고, 이후 새 음악을 붙인 상영도 이어졌다. 같은 이미지가 어떤 소리와 함께 놓이는지에 따라 기다리는 시간과 움직임의 리듬을 다르게 경험할 수 있다. 오래된 영화를 다시 본다는 일에는 지금 어떤 판본을 만나는지도 포함된다.

지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노스페라투의 유명한 얼굴을 아는 것과 그 얼굴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는 것은 다르다. 후터의 방문과 백작의 이동을 따라가면, 성 안의 공포가 왜 도시 전체의 불안이 되는지 알 수 있다. 누군가 살 집을 거래하는 일이 낯선 존재에게 일상으로 들어오는 길을 열어준다.

그 장면을 지금 볼 수 있기까지의 역사도 함께 생각할 만하다. 폐기 명령 이후 여러 나라에 남은 자료를 모으고, 장면과 글과 색을 맞춘 작업이 있었다. 영화가 오래 살아남았다는 감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엇이 남아야 다음 관객도 영화를 볼 수 있는지 묻게 된다.

감상 포인트

거래 상대가 낯설어지는 순간 — 후터가 성을 찾아간 목적과 그곳에서 알아가는 사실을 나란히 보자. 집을 팔러 간 사람의 일상이 어떻게 흔들리는지 따라갈 수 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아는 관객과 뒤늦게 깨닫는 인물의 차이도 생긴다.

성에서 항구도시까지 — 관과 배가 이야기에서 어떤 이동을 만드는지 살펴보자. 백작이 한 장소에 머무르지 않으면서 위험의 범위도 넓어진다. 도시의 평범한 건물과 길이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몸과 그림자의 크기 — 올록의 실제 몸과 벽에 드리운 형상을 함께 보자. 인물이 화면에서 차지하는 자리보다 그림자가 더 넓게 뻗을 수 있다. 한 배우의 모습이 주변 공간까지 바꾸는 방법이다.

이미지 사이에 들어오는 글 — 대사 자막뿐 아니라 편지와 기록이 어느 대목에 놓이는지 보자. 영화 속 글도 인물의 이동과 판단을 이끈다. 복원 과정에서 자막을 되찾는 일이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있다.

관련 작품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1920) — 비틀린 선과 건물로 낯선 마을을 만드는 영화다. 노스페라투의 실제 촬영지와 비교하면, 풍경을 고르는 일과 세트를 만드는 일이 각각 인물의 인상에 어떻게 참여하는지 볼 수 있다.

골렘 (1920) —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흙으로 만든 존재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인물의 몸과 그 몸이 지나가는 건축물을 함께 볼 만하다. 이 작품 역시 남은 수출용 자료를 바탕으로 잃어버린 독일판에 가까이 가려는 복원이 이루어졌다.

파우스트 (1926) — 전염병에 맞서 사람들을 구하려던 학자가 악마의 유혹을 받는다. 같은 감독이 재앙을 도시 규모의 이미지로 보여주는 다른 방식을 볼 수 있다. 거대한 형상과 그 아래 인간의 크기를 비교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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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