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삶을 찍던 감독은 어머니 역 배우를 안았다 | MovieLAB LAB

〈다잉〉의 긴 모자 대화를 찍고 나서 매티아스 글래스너는 어머니 역 배우 코리나 하르포히에게 다가가 팔을 둘렀다. 아들 톰을 연기한 라르스 아이딩거에게는 등을 보인 채였다. 아이…

자기 삶을 찍던 감독은 어머니 역 배우를 안았다 | MovieLAB LAB

〈다잉〉의 긴 모자 대화를 찍고 나서 매티아스 글래스너는 어머니 역 배우 코리나 하르포히에게 다가가 팔을 둘렀다. 아들 톰을 연기한 라르스 아이딩거에게는 등을 보인 채였다. 아이딩거는 자신이 뭔가 잘못했나 생각했다가, 감독의 관심이 그 순간 어머니 쪽에 가 있다고 이해했다. 자기 삶에서 출발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자신의 분신보다 어머니를 연기한 배우에게 먼저 다가간 것이다. 이 장면을 회고한 아이딩거의 이야기는 글래스너가 개인적인 기억을 다른 사람의 연기로 만나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다잉〉에서 지휘자인 톰은 늙고 병든 부모를 마주하는 한편, 친구의 곡을 무대에 올리려 한다. 가족 사이에 오래 쌓인 감정과 음악을 함께 만드는 일이 한 영화 안에 있다. 글래스너는 자신의 가족을 바탕으로 각본을 썼지만, 촬영 현장에서는 배우와 작곡가가 그 이야기에 들어왔다. 아주 사적인 영화가 여러 사람의 작업이 되는 과정을 따라가면, 이 가족극의 고통뿐 아니라 뜻밖의 웃음과 연주의 기쁨도 함께 보인다.

자기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기

글래스너가 출발점으로 밝힌 것은 부모를 잃은 한순간보다 오랫동안 죽음을 향해가는 부모와 지낸 시간이었다. 그는 그 과정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자신이 왜 부모에게서 물러서려 하는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상실은 이미 끝난 사건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생활과 감정을 계속 바꾸는 일이었다. 영화의 제목도 그 진행 중인 상태에 머문다.

그렇다고 감독의 경험이 톰 한 사람에게만 모인 것은 아니다. 글래스너는 술에 기대어 살아가는 여동생 엘렌(릴리트 슈탕엔베르크)에게도 자신의 일부가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누이의 초상이라기보다 자신이 갔을 수도 있는 다른 길이라는 것이다. 같은 사람의 경험과 상상이 서로 다른 인물에게 나뉘어 들어간다. 자전적이라는 말을 알고 보면 인물마다 실제 모델을 찾고 싶어지지만, 감독은 자기 삶에서 출발해 여러 가능성을 만들었다.

이 선택은 가족의 갈등을 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준다. 톰을 감독의 대변인으로만 생각하기보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버티는 가족의 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엘렌의 행동을 지켜보는 일 역시 주인공 주변의 문제를 구경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글래스너 자신이 그 인물에게도 가능성을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지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달라질 수 있다.

객석을 등진 남성이 지휘봉을 든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아픈 대화를 맡길 배우에게 웃음도 기대했다

아이딩거가 받은 각본의 표지에는 이 영화가 코미디이기도 하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글래스너의 캐스팅 조건에도 웃음을 만들어낼 감각이 들어 있었다. 죽음과 질병, 가족 사이의 상처를 다루는 이야기에서 감독이 찾은 것은 무거운 감정을 표현할 능력만이 아니었다.

이 주문을 알고 나면 대화의 엇박자와 당혹스러운 반응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인물에게는 심각한 사정인데 상대에게는 다른 용무가 있고,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을 몸의 상태가 따라주지 않기도 한다. 웃음이 생겨도 그 사람이 겪는 곤란은 사라지지 않는다. 글래스너는 비극을 밀고 나가다 보면 그것과 붙어 있는 우스꽝스러움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상황의 당사자에게 가까이 있을수록 웃기다가도 다시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유다.

어머니 리시와 톰의 대화에는 그 복잡함을 받아낼 두 배우가 필요했다. 아이딩거에 따르면 리허설 없이 찍은 첫 테이크가 영화에 쓰였다. 감독은 자기 경험을 들고 현장에 왔지만, 그 경험을 눈앞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일은 하르포히와 아이딩거에게 맡겨졌다. 사연을 얼마나 정확히 설명하는가와 별개로, 상대의 말을 듣는 동안 배우에게 생기는 반응을 함께 찍어야 했다.

촬영 뒤 감독이 하르포히를 안았을 때 아이딩거가 잠시 불안해했다는 회고에는 배우의 부담도 담겨 있다. 그는 실제 모델이 바로 앞에서 연출까지 하는 상황을 무겁게 느꼈다고 말했다. 글래스너가 의도한 자기 모습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이었다. 그런데 그가 현장에서 본 감독은 어머니를 연기한 사람에게 먼저 마음을 쓰고 있었다. 그때 감독이 어머니의 관점에 있었다는 것은 아이딩거의 해석이다. 적어도 이 배우가 기억하는 촬영은 감독 자신을 닮게 만드는 일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두운 술집 카운터 앞에서 여성이 몸을 움직이고 주변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지휘자가 되지 못한 감독이 음악을 만드는 법

톰의 직업에도 글래스너의 오래된 관심이 들어 있다. 그는 젊을 때 곡을 쓰고 지휘자가 되기를 바랐지만 피아노 실력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잉〉에서는 지휘봉을 직접 잡는 대신, 그 일을 하는 인물을 만들고 영화 속 음악을 준비했다. 음악은 완성된 장면 위에 분위기를 더하는 용도에 머물 수 없었다. 톰과 동료들이 힘을 쏟을 만한 곡이어야 했다.

작곡가 로렌츠 당엘은 처음으로 각본을 받은 사람이었다. 글래스너와 당엘은 여러 해 동안 방향을 바꿔가며 곡을 다듬었다. 현대음악을 만드는 인물의 작품으로 납득할 수 있으면서도, 영화의 관객이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음악을 찾았다. 인물의 직업을 믿게 하는 일과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만드는 일이 같은 협업 안에 있었다.

글래스너는 연주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악기에 집중하는 시간을 영화에 충분히 두었다. 함께 곡을 연주한다는 행위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가족과의 대화에서는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부족했던 톰이, 연주할 때는 다른 사람들과 하나의 작업을 이어간다. 관객도 말을 통해 사정을 이해하던 자리에서 잠시 벗어나 그들이 만드는 소리를 듣는다.

자기 가족의 기억에서 시작한 영화가 이 대목에서는 함께 맞춰보는 음악의 시간이 된다. 작곡가와 오래 준비한 곡, 그것을 연주하는 사람들, 그 연주를 지켜보는 얼굴이 한자리에 모인다. 글래스너가 자신의 경험을 영화로 만든 결과에는 과거를 되돌아보는 아픔과 더불어 지금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해내는 기쁨도 남는다.

감상 포인트

◆ 톰 곁의 엘렌 — 남매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로 살펴보자. 엘렌에게도 감독 자신의 가능성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 톰을 기준으로 다른 가족을 판단하던 시선이 조금 넓어진다.

◆ 심각한 상황의 엇박자 — 인물의 다급한 사정과 상대의 반응이 어긋날 때를 보자. 웃음과 불편함이 함께 생기는 순간을 따라가면 배우에게 코미디 감각을 기대한 이유를 느낄 수 있다.

◆ 어머니와 아들의 반응 — 모자 대화에서 말하는 사람뿐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도 눈을 두어보자. 첫 테이크를 사용했다는 배우의 회고를 떠올리며, 서로의 말을 받아내는 시간을 볼 만하다.

◆ 연주하는 얼굴과 손 — 음악이 이어질 때 곡을 완성하는 사람들을 살펴보자. 혼자 품은 감정을 말하는 장면과 달리, 여러 사람이 같은 작업에 집중하는 시간이 생긴다.

관련 작품

◆ 〈다잉〉 (2024, 매티아스 글래스너) — 개인적인 가족의 기억을 배우의 반응과 음악 협업으로 펼친 연결작. 슬픔과 웃음이 어떤 사람들의 작업을 거쳐 함께 놓였는지 살필 수 있다.

◆ 〈가을 소나타〉 (1978, 잉마르 베리만) —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와 딸이 오랜 불화를 마주하는 영화. 음악을 하는 사람의 능력과 가족 안에서 상대에게 다가가는 능력이 어떻게 다르게 드러나는지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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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