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사건을 기다리는 동안 선수들은 운동했다 | MovieLAB LAB

박재민은 여자 씨름팀을 찍으며 팀 안에서 큰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고 기대했다. 감정이 부딪치고 관계가 흔들리는 일이 카메라에 담기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선수들은 묵묵히 훈련…

감독이 사건을 기다리는 동안 선수들은 운동했다 | MovieLAB LAB

박재민은 여자 씨름팀을 찍으며 팀 안에서 큰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고 기대했다. 감정이 부딪치고 관계가 흔들리는 일이 카메라에 담기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선수들은 묵묵히 훈련했다. 특히 챔피언 임수정의 성실함이 놀라웠다. 〈모래바람〉을 만드는 동안 감독에게 중요해진 것은 승부에 이르기까지 매일 몸을 단련해온 사람이었다.

이 고백에는 영화를 시작한 사람과 오래 찍은 사람 사이의 차이가 있다. 처음에는 무엇이 벌어질지 기다리며 선수들을 보았다면, 나중에는 이미 눈앞에서 계속되고 있는 일에 감탄한다. 연습하는 하루를 영화가 될 사건에 앞선 준비 기간으로만 여겼다면 놓쳤을 인물들이다. 박재민의 첫 장편은 여자 씨름을 알아가는 과정이자, 감독 자신이 무엇을 볼 것인지 바꾸어간 작업이다.

연출자를 찾던 사람이 카메라를 들다

박재민은 영화사 경영지원 업무를 하던 사람이었다. 영화와 가까이 일했지만 자신이 보고 싶은 여성의 삶이 충분히 만들어지고 있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여자 씨름에 관심을 갖고 영화를 기획했을 때도 처음부터 연출을 맡으려던 것은 아니다. 기획 PD로서 함께할 감독을 찾았다. 그러다 그 대상에게 마음이 가는 사람이 직접 찍어보라는 다른 감독의 권유를 받고 용기를 냈다.

이 출발을 알고 보면 그의 전문성은 흥미로운 위치에 있다. 종목을 잘 알아서 관객에게 설명하러 들어간 사람이 아니다.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이 생겨서 영화 만드는 역할까지 맡은 사람이다. 기술을 소개하는 전문가라면 정확한 해설이 우선이겠지만, 박재민에게는 선수들이 자기 시간을 내어주고 생활을 보여줄 만큼 가까워지는 일이 필요했다.

선수들의 첫 반응은 뜻밖이었다. 자기들 이야기를 누가 보겠느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박재민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영화를 꼭 완성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협회에 여자 씨름 자료를 문의했을 때도 원하는 역사와 기록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운동하는 선수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중요해졌다.

관객이 모일지 묻는 선수들과 영화를 만들겠다는 감독 사이에는 아직 실물이 없는 약속이 생긴다. 그 약속은 대단한 경기가 열리는 날에만 성립하지 않는다. 영화가 될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의 연습 시간에도 카메라를 가지고 가야 한다. 박재민이 받아 든 것은 흥미로운 소재인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 작업을 마쳐야 하는 책임이었다.

야외 모래판에서 한 선수가 다른 선수를 들어 올리고 관중들이 둘러앉아 있다

두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던 팀

처음 박재민의 시선을 붙든 선수는 송송화였다. 나이 차이가 큰 상대와 힘을 겨루는 모습을 보고 촬영을 시작했다. 같은 콜핑팀에 있던 임수정도 주요 인물이 되었다. 오래 운동하는 선수와 정상의 선수라는 두 갈래로 출발한 셈이다. 그러나 함께 성장하고 서로 영향을 주는 관계를 담으려 하자 두 사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김다혜, 최희화, 양윤서가 더해지며 영화의 중심이 다섯 사람으로 넓어졌다.

이는 등장인물 수를 늘리는 것 이상의 선택이다. 한 선수를 중심에 놓으면 동료는 그 사람을 설명하는 증언자가 되기 쉽다. 여러 선수에게 자기 경기를 보여줄 자리를 주면, 같은 팀에 속했다는 사실도 다르게 읽힌다. 앞서가는 사람과 따라가는 사람의 목표가 만나고 때로는 부딪친다. 누군가를 존경하는 마음과 그를 이기고 싶은 마음이 함께 생길 수 있다.

〈모래바람〉에서 이들은 경기 밖에서는 동료이며 모래판에서는 경쟁 상대다. 함께해온 시간이 길다고 상대에게 승리를 양보할 수는 없다. 감독이 관심을 둔 연대는 승부를 지운 화목함과는 거리가 있다. 다른 사람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본 선수가 그 사람과 전력을 다해 맞서는 관계에 가깝다. 상대가 강해질수록 같은 팀의 성과도 커지지만 내 경기는 어려워진다.

다섯 사람을 따라가는 구성은 관객의 응원도 움직이게 한다. 경기 전에 알게 된 사정이 한쪽에만 있지 않으므로, 이긴 선수에게 기뻐하다가 진 선수의 다음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박재민이 팀으로 시야를 넓힌 덕분에 패자는 우승자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사라지는 자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록에 남는 것은 우승만이 아니다

로테르담영화제의 작품 소개는 2017년부터 다섯 해 동안 이어진 촬영을 설명하며 부상과 슬럼프, 나이의 문제를 함께 짚는다. 긴 시간은 선수의 몸을 단순한 강함의 증거로 남겨두지 않는다. 지금 힘을 쓸 수 있는 몸에도 쉬어야 하는 때가 있고, 경기력과 별개로 앞으로 얼마나 더 운동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때가 있다.

이 대목에서 처음의 기다림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건을 기다리는 촬영은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인물이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반면 운동을 계속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변화가 더디거나 성과가 보이지 않는 날도 그 사람의 선택을 담고 있다. 매일 연습하러 나오는 일 자체가 다음 경기에 나가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승리의 순간과 그 밖의 시간이 서로 다른 무게로 보이기 시작한다.

박재민은 씨름 기술보다 씨름하는 사람에게 끌렸다고 설명했다. 이 관심은 영화가 누구를 만날 것인지에도 이어진다. 그는 극장에서 씨름 경기를 보는 즐거움을 느낄 노년 관객과, 자기 삶에 힘을 얻을 젊은 관객을 함께 떠올렸다. 동일한 모래판을 보고도 먼저 반가워할 것이 다른 사람들이다. 익숙한 종목을 보러 온 관객 옆에 처음 선수의 이름을 알게 된 관객이 앉을 수 있다. 박재민이 처음 혼자 보고 싶어 했던 영화는 그렇게 서로 다른 관객에게 건네진다.

감상 포인트

◆ 경기 전부터 알고 있던 두 선수 — 서로 맞붙는 선수들이 앞서 어떤 목표를 말했는지 떠올려보자. 한쪽의 승리만 기다릴 때와 양쪽의 사정을 알고 볼 때, 같은 결과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달라진다.

◆ 훈련하는 몸과 겨루는 몸 — 연습과 실제 경기에서 힘을 쓰는 모습을 이어 보자. 대회에서 잠깐 드러나는 능력이 일상에서도 거듭 요구된다는 점에 주목하면, 훈련 장면의 반복을 성과 없는 시간으로 흘려보내기 어렵다.

◆ 동료가 상대가 되는 자리 — 경기 밖에서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 모래판에서 맞서는 모습을 비교해보자. 친밀함을 안다고 승부욕까지 줄어들지는 않는다. 서로를 잘 아는 관계가 경기의 긴장을 더하는 지점을 볼 수 있다.

◆ 강한 몸이 말하는 걱정 — 경기에서 보인 힘과 선수들이 털어놓는 부상·나이의 고민을 함께 듣자. 잘한다는 평가만으로는 알 수 없던 선수 생활의 지속 문제가 드러난다. 다음 승부를 기다리는 마음에 그 이후의 시간도 들어온다.

관련 작품

◆ 〈모래바람〉 (2024, 박재민) — 두 선수에서 다섯 선수로 넓어진 구성을 따라가면, 한 사람의 성적이 팀 전체의 경험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점이 보인다. 감독이 기록할 대상을 고른 선택을 실제 인물들의 비중과 관계에서 확인할 작품이다.

◆ 〈땐뽀걸즈〉 (2017, 이승문) — 댄스스포츠 동아리 여학생들의 연습과 생활을 함께 담는다. 무대나 모래판에 오르는 순간 밖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함께 연습하는 사람들의 다른 사정이 어떻게 보이는지 비교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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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