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호가 함께 가도 되겠느냐고 묻자, 마담 B는 자신이 곁에서 지켜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여정이었다. 작은 카메라를 든 감독은 길을 안내하거나 …
윤재호가 함께 가도 되겠느냐고 묻자, 마담 B는 자신이 곁에서 지켜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여정이었다. 작은 카메라를 든 감독은 길을 안내하거나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를 믿고 촬영을 받아준 사람이 동시에 그가 의지해야 할 사람이었다. 〈마담 B〉의 동행에는 카메라 앞뒤를 그렇게 오가는 신뢰가 있다.
윤재호는 다른 영화의 시나리오를 준비하다 마담 B를 만났다. 당시 그녀는 그가 탈북민들을 만나 인터뷰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사람이었다. 중국인 남편과 사는 집에 초대받아 함께 지내면서, 중개 역할을 하던 여성 자신의 생활이 궁금해졌다. 한 사람이 들려줄 정보를 찾으러 갔다가 그 사람을 더 알고 싶어진 것이다.
마담 B는 생계를 위해 북한을 떠났다가 브로커에게 속아 중국 농가로 팔려간 여성이다. 이후 중국인 남편과 관계를 맺고 살면서 북한에 둔 가족도 돌보려 했다. 윤재호가 따라간 한국행에는 두 가족 사이에서 바라는 삶을 찾으려는 사정이 있었다. 감독은 처음부터 그녀의 인생을 한 편으로 정리할 계획을 갖고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함께 이동하던 다른 탈북민들에게도 자신의 신분을 숨기지 않았다. 마담 B가 그를 남한에서 온 영화감독으로 소개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고, 윤재호도 그때는 사진이나 영상을 찍지 않았다고 말했다. 긴 여정을 함께하며 조금씩 신뢰를 얻었다.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갖고 있다는 것과 찍어도 되는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이 과정은 영화 속 일상을 보는 감각에도 영향을 준다. 마담 B가 감독에게 자기 상황을 정리해 설명하는 순간만이 아니라, 가족과 이야기하고 생활하는 시간이 있다. 카메라를 위해 준비한 소개보다 여러 사람과 부딪히는 태도에서 성격이 드러난다. 일하는 사람, 가족을 걱정하는 사람, 자기 삶을 원하는 사람이 한 얼굴에 함께 있다. 윤재호는 함께 지내며 알게 된 이런 모습을 영화에 남기고자 했다.
다만 감독이 고생한 만큼 위험한 여정을 길게 넣은 것은 아니다. 윤재호는 그 여정이 영화의 중심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고 밝혔다. 나중에 영화를 본 마담 B는 오랫동안 고생한 길이 왜 이렇게 짧게 나왔느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같은 길을 걸었지만, 그 시간을 영화에서 얼마나 보여줄지는 감독의 선택이었다. 이 반응을 알면 다큐멘터리의 친밀함 속에도 만드는 사람과 살아온 사람의 차이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마담 B〉에 들어간 일기의 목소리도 함께 지내는 동안 얻은 것이다. 마담 B는 오래전부터 일기를 써왔고, 촬영이 한창일 때 자신이 읽어주고 싶은 대목을 골라 직접 읽었다. 윤재호는 그때 녹음한 목소리를 편집하면서 사용했다. 카메라가 따라가며 본 생활에, 당사자가 자신의 말로 돌이킨 시간이 더해졌다.
누군가의 하루를 보는 것과 그 사람이 골라 들려주는 기억을 듣는 것은 다르다. 화면에서는 일을 처리하고 상대를 대하는 모습이 먼저 보일 수 있다. 일기를 읽는 목소리를 들으면 그 생활을 지나온 사람이 무엇을 오래 품고 있었는지 귀를 기울이게 된다. 감독이 인물의 마음을 대신 설명하는 대신, 마담 B가 직접 읽어주는 말이 들어갈 자리를 만든 선택이다.
마지막 노래방 장면에서는 윤재호의 선택이 다시 드러난다. 그는 마담 B와 친구들이 평소 가던 모임에 따라가도 되는지 물었고, 그날 부른 여러 노래 가운데 한 곡을 골랐다. 감독에게 그 노래가 마담 B의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부른 노래와, 그 노래로 영화를 마치려는 사람의 감상이 한 장면에서 만난다.
이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앞선 일기의 낭독과 비교해볼 만하다. 직접 쓴 말로 자기 시간을 읽을 때와 이미 만들어진 노래에 목소리를 실을 때, 말을 전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모두 설명하지 않아도 한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다. 노랫말이 그 사람의 삶과 정확히 일치하는지 따지기보다, 말하는 사람과 노래하는 사람을 이어 보며 가까워지는 경험이 생긴다.
극영화 〈뷰티풀 데이즈〉에서 윤재호는 다른 방식으로 한 여성의 삶을 다뤘다. 어머니 역을 맡은 이나영에게는 감정을 담담하게 표현해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만난 탈북민들의 삶을 돌아보며, 오랜 일을 겪은 사람이 자기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감독이 캐릭터를 만들며 내린 선택이다.
외모에도 그 판단이 들어갔다. 윤재호는 탈북 여성에게 으레 기대되는 고정된 이미지를 피하고 싶어 붉은 머리와 강한 인상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관객이 인물을 보자마자 불쌍한 사연을 예상하도록 만들기보다,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인지 먼저 만나게 한다. 어머니의 과거를 알아가는 아들의 시선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처음 본 모습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사람이 이야기가 진행되며 달리 보일 수 있다.
촬영할 얼굴도 한 번 정하고 끝내지 않았다. 윤재호는 이나영이 빛과 카메라의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는 데 놀랐다고 했다. 촬영감독과 현장을 오가는 길에도 그날의 얼굴과 다음 날 찍을 모습을 계속 이야기했다. 각본 속 인물의 사정이 정해져 있어도, 눈앞의 배우에게서 아직 보지 못한 표정이 남아 있었다. 다음 촬영을 준비하는 대화가 출퇴근길까지 이어진 이유다.
◆ 가족 앞의 마담 B — 마담 B가 가족과 이야기할 때의 말투와 표정을 보자. 생계를 꾸리는 사람으로 보이던 얼굴에 걱정이나 서운함이 함께 들어오는 순간, 그녀를 한 역할로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 생활과 일기의 목소리 — 화면 속 일상에서 말을 주고받을 때와 일기를 읽는 목소리를 비교해보자.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 말과 자기 시간을 돌아보는 말이 같은 사람을 얼마나 다르게 느끼게 하는지 들을 수 있다.
◆ 읽는 목소리에서 노래하는 목소리로 — 끝의 노래방에서는 노래의 뜻만 좇지 말고 부르는 얼굴과 목소리에 머물러보자. 일기처럼 사정을 직접 들려주는 순간과 달리, 한 사람의 감정을 노래하는 동안 함께 기다리게 된다.
◆ 과거를 알기 전의 얼굴 — 〈뷰티풀 데이즈〉에서 어머니의 모습에 처음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기억해보자. 아들이 과거를 알게 된 뒤 같은 얼굴이 다르게 느껴지는지 보면, 감독이 외양과 감정 표현에 둔 선택을 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다.
◆ 〈마담 B〉 (2018, 윤재호) — 촬영자의 시선과 실제 인물의 목소리가 함께 놓인 다큐멘터리. 그녀가 생활하는 모습과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나란히 볼 수 있다.
◆ 〈뷰티풀 데이즈〉 (2018, 윤재호) — 한 여성의 삶을 배우의 얼굴과 아들이 알아가는 순서로 보여준다. 다큐멘터리의 인물을 만나는 경험이 극영화에서 어떤 선택으로 이어지는지 비교할 수 있다.
──────────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