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할리우드의 가장 변두리에서 한 남자가 카메라 앞에 서서 여자 옷을 입었다. 자신의 진짜 이름을 숨기고, 가명으로, 하지만 완전한 자신으로. 에드 우드의 글렌 또는 글…
1953년, 할리우드의 가장 변두리에서 한 남자가 카메라 앞에 서서 여자 옷을 입었다. 자신의 진짜 이름을 숨기고, 가명으로, 하지만 완전한 자신으로. 에드 우드의 글렌 또는 글렌다는 '역대 최악의 영화' 목록에 수십 년간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그 평가가 뒤집혔다. 기술적 실패와 예산 결핍을 뚫고, 이 영화는 지금 다르게 읽힌다. 1953년 미국에서 젠더와 정체성을 가장 솔직하게 말한 문서로. 세상이 이 영화를 비웃는 동안, 이 영화는 조용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지금, 이 영화가 마침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에드 우드의 내면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1952년 12월 뉴욕의 신문 1면이 먼저였다. 다만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우드의 방식만은 온전히 개인적이었다. 한 사건이 상업적 착취의 소재가 되는 순간, 누군가는 그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1952년 12월 1일, 뉴욕 데일리 뉴스 1면에 충격적인 헤드라인이 실렸다: "전 GI, 금발 미인이 되다(Ex-GI Becomes Blonde Beauty)". 크리스틴 요르겐센은 미국 육군 출신 남성으로, 덴마크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성이 되어 돌아왔다. 그 사연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미국인이었다. 미국 대중은 이 이야기에 충격과 호기심과 혐오가 뒤섞인 반응을 보였다. 주류 미디어는 요르겐센을 구경거리로 다뤘다. 신문들은 그녀의 수술 세부 사항을 자극적으로 보도했고, 라디오 코미디언들은 그녀를 개그 소재로 삼았다.
바로 이 시점에, 저예산 독립 영화 제작자 조지 와이스가 이 사건을 이용해 돈을 벌 방법을 찾았다. 그는 '성전환자'를 소재로 한 착취 영화(exploitation film)를 만들고 싶었다. 당시 거의 무명이던 에드 우드에게 연출을 맡겼다. 와이스에게 이 영화는 스캔들을 이용한 상품이었다. 그는 우드에게 "크리스틴 요르겐센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지만 요르겐센 본인의 허락 없이" 영화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예산은 턱없이 적었고, 촬영 기간은 짧았으며, 기대치는 낮았다.
그런데 에드 우드는 달랐다. 우드는 이 기회를 단순한 상업적 프로젝트로 보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자리로 받아들였다. 우드는 평생 앙고라 스웨터를 입고 브래지어를 착용했으며, 여성 속옷 위에 군복을 걸친 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남자였다. 그는 교차복장(cross-dressing)을 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수십 년간 숨겨왔다. 1943년 11월 미 해병으로 타라와 전투에 상륙했을 때, 그는 군복 안에 브래지어와 속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훗날 고백했다. 그리고 지금, 카메라가 그 앞에 놓여 있었다.
우드는 각본을 쓰면서 주인공 글렌을 자신의 분신으로 설계했다. 글렌은 여자 친구 바바라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교차복장 성향을 고백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남자다. 우드는 이 역할을 다니엘 데이비스(Daniel Davis)라는 가명으로 직접 연기했다.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기엔 세상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제목 '글렌 또는 글렌다'의 '글렌다'는 우드가 교차복장을 할 때 스스로 불렀던 이름이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고백이었다. 단지 세상이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이 영화가 탄생한 1953년은 매카시즘의 절정기였고, 동성애와 성적 비순응은 정신 질환으로 분류되던 시대였다. 이 맥락을 이해하지 않으면, 이런 영화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웠는지 가늠할 수 없다.
1953년의 미국 정신의학협회 진단 매뉴얼(DSM-I)은 동성애를 '사회병질적 성격 장애(sociopathic personality disturbance)'로 분류했다. 교차복장은 법률적으로도 금지된 행위였다. 많은 도시가 이른바 '가장(masquerade) 조례'로 이성의 복장 착용을 단속했고, 적발되면 구금되거나 정신 병원에 강제 입원될 수 있었다. 미국 우체국은 동성애 관련 출판물을 외설물로 분류하여 배포를 차단했다. 에드 우드가 앙고라 스웨터를 입고 군복무를 했다는 것은, 그가 매일 발각의 공포 속에 살았다는 뜻이다.
이 시대에 착취 영화(exploitation film)는 역설적인 공간이었다. 주류 할리우드가 절대 건드리지 않을 소재들(성병, 마약, 성적 일탈)을 착취 영화들은 '경계'의 이름으로 다뤘다. 표면적으로는 도덕적 경고였지만, 실제로는 금기시된 소재를 알리고 그에 공감할 여지를 열어주었다. 관객들은 '죄악을 보여주는 척'하는 이 영화들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했다. 글렌 또는 글렌다는 이 장르의 문법 안에서 작동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라는 형식으로 포장되었지만, 속내는 '이것은 이해받아야 합니다'였다.
우드는 영화 안에서 이 이중적 전략을 노골적으로 사용했다. 영화는 경찰 검시관이 한 남성의 자살 사건을 조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살한 사람은 여성 속옷을 입고 있었다. 사회가 그를 죽였다. 이 오프닝 자체가 우드가 전달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다. 우드는 그 죽음의 책임을 교차복장자에게 묻지 않는다. 그를 이해하지 못한 사회에 묻는다. 오프닝에서 경찰관은 중립적인 어조로 이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건넨다. 착취 영화의 껍데기를 쓴 탄원서였다.
벨라 루고시는 이 영화에서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지배한다. '과학자'라는 이름의 노인으로 등장해 영화 내내 맥락 없는 독백을 늘어놓고, 이해할 수 없는 실험을 진행하며, 관객에게 수수께끼 같은 시선을 던진다. 이 존재가 왜 거기 있는지 영화는 끝까지 설명하지 않는다.
루고시는 당시 이미 70세였다. 영화 경력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1931년 드라큘라로 정점에 올랐던 그는 이후 20년간 점점 더 작은 역할들로 밀려났다. 모르핀 중독과 재정적 파탄, 그리고 '괴물 배우'라는 고정된 이미지가 그를 주류 바깥으로 밀어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고, 독립 영화 시장에서도 그는 점차 과거의 이름이 되어가고 있었다. 에드 우드는 루고시가 할리우드에서 버려졌다고 느끼던 바로 그 시점에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우정은 루고시가 사망하는 1956년까지 이어졌다.
루고시의 장면들은 서사적 맥락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다. 그는 두개골을 집어 들고 중얼거리거나, 스크린에 홀로 등장해 "비웨어, 비웨어, 비웨어(Beware, Beware, Beware)"를 반복하거나, 짧은 독백 후 사라진다. 제작자 와이스가 루고시에게 장면료를 더 주지 않으려고 계획된 분량을 줄였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뚝뚝 끊긴 채 튀어나오는 루고시의 등장이 영화에 기묘한 초현실적 힘을 불어넣는다. 그가 등장할 때마다 영화는 잠시 현실의 논리에서 이탈하고, 다른 층위로 진입한다.
루고시를 사회적 편견의 목소리, 혹은 그 편견을 냉담하게 관찰하는 신의 시선으로 읽는 해석이 있다. 그가 내뱉는 단어들 — 운명, 죄, 처벌 — 은 1953년 미국이 성적 비순응자들에게 쏟아붓던 언어다. 그의 장면이 끝날 때마다 영화는 글렌의 고통으로 돌아온다. 이 구조 속에서 루고시는 편견의 목소리인 동시에, 그 편견을 조용히 조롱하는 자다. 이 모호함이 의도된 것인지 예산 문제의 산물인지는 지금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불확실함 자체가 이 영화의 정체성 일부를 이룬다.

영화 중반부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꿈의 시퀀스는 이 영화의 가장 기이하고, 동시에 가장 솔직한 순간이다. 우드는 여기서 서사를 완전히 포기한다. 자신의 내면을 날것으로 화면에 쏟아낸다. 기술적 결함으로 보이는 이 대목은 사실 언어의 한계에서 나왔다. 1953년에는 이것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없었다.
글렌이 잠든 사이, 영화는 초현실적인 이미지의 연쇄 속으로 빠져든다. 악마적 형상이 바바라를 위협하고, 연기가 피어오르며, 여러 여성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소파에 앉은 글렌/에드는 앙고라 스웨터와 여성 의복을 걸치고 있고, 화면에는 채찍이 등장한다. 이 이미지들은 어떤 전통적인 서사 문법도 따르지 않는다. 편집의 논리도, 시간의 연속성도 없다. 그냥 감정이 화면으로 흘러나온다.
비평가들은 수십 년간 이 시퀀스를 '편집 실패'나 '예산 부족으로 인한 필러'로 분류했다. 그러나 다르게 읽으면 이것은 교차복장의 죄책감과 욕망, 사회적 처벌의 공포가 뒤엉킨 사람의 내면 지형도다. 우드는 이 시퀀스로 글렌/자신의 심리를 말로 설명하는 대신, 이미지로 제시한다. 1953년에는 이것을 설명할 임상 언어도, 이론적 언어도 빈약했다. 그래서 우드는 이미지를 선택했다. 그 선택이 조악해 보이는 이유는 우드가 무능해서가 아니다. 당시 문화에 그것을 담을 어휘가 없었기 때문이다.
꿈의 시퀀스에서 반복되는 한 이미지가 있다. 앙고라 스웨터를 입은 여성의 모습. 우드는 앙고라 질감에 평생 거의 본능적으로 집착했다고 고백했다. 부드럽고 따뜻한 앙고라의 감촉이 자신을 안정시켰다고, 그리고 그 감촉을 느낄 때 자신이 완전하다고 느꼈다고. 이 집착은 그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반복된다. 꿈의 시퀀스에서 이 이미지는 시각적 선택의 문제를 넘어선다. 우드의 정체성 그 자체가 화면으로 새어 나온 순간이다. 영화를 아무리 조악하게 만들어도, 진짜 감정은 새어 나온다. 그것이 이 시퀀스가 지금까지도 매끄럽게 편집된 어떤 장면보다 강렬하게 남는 이유다.
영화에는 티모시 패럴이 연기하는 알턴 박사가 등장해 교차복장과 트랜스젠더리즘을 의학적으로 설명한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 설명은 분명 불완전하다. 하지만 1953년의 맥락에서 이 장면들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 영화의 핵심을 놓친다.
알턴 박사는 교차복장이 선택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의 성향임을 주장한다. 교차복장은 질병이 아니고, 사회가 이들을 이해해야 하며, 처벌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취지의 서술은 당시에는 거의 선언문에 가까웠다. 주류 의학계가 동성애와 교차복장을 치료 대상의 정신 질환으로 분류하던 시대에, 이 영화의 의사 캐릭터는 '이해'와 '수용'을 처방했다. 당시 의학계의 주류 견해와 정반대되는 주장을 착취 영화가 버젓이 내놓았다.
동시에 영화는 교차복장(cross-dressing)과 성전환(transsexualism)을 명확히 구분하려 한다. 글렌은 여성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여성 의복을 입고 싶을 뿐이다. 영화는 이 구분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 구분이 지금의 언어와 개념으로 얼마나 정확한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1953년의 영화가 이 구분을 시도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의학적 설명까지 곁들여 관객에게 이 '차이'를 이해할 기회를 준 영화는 당대 착취 영화들 사이에서도 드물었다.
물론 영화는 결국 글렌이 바바라에게 진실을 고백하고, 바바라가 이를 받아들이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이 결말은 착취 영화 장르의 관례 — '일탈은 결국 정상화된다' — 를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결말의 메시지를 다시 읽어보라. 교차복장을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수용'이라고 이 영화는 말한다. 그 수용이 가능하다고,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1953년에, 착취 영화 포장 속에서.

에드 우드에게는 '역대 최악의 감독'이라는 칭호가 오래도록 따라붙었다. 1980년 마이클 메드베드가 저서 「골든 터키 어워드(The Golden Turkey Awards)」에서 우드를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명명했을 때, 우드는 이미 2년 전인 1978년에 세상을 떠난 뒤였다. 세상의 조롱이 살아있는 동안 그를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는, 친구들이 남긴 회고로 조각조각 되짚을 수 있다. 우드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팀 버튼의 1994년 전기 영화 에드 우드에서 조니 뎁이 연기한 우드는 이 영화를 보는 경험을 한층 풍부하게 만든다. 버튼의 영화는 우드를 실패자가 아닌 '꿈을 포기하지 않은 자'로 그린다. 마틴 랜도는 벨라 루고시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그가 그려낸 루고시와 우드의 관계는 지금도 가장 감동적인 할리우드 우정 중 하나로 기억된다. 버튼의 렌즈로 글렌 또는 글렌다를 보면, 영화의 모든 결함이 다르게 보인다. 나쁜 영화가 아니다. 가진 것 전부를 쏟아부은 영화다.
2026년, 트랜스젠더와 젠더 비순응에 대한 사회적 논쟁은 어느 때보다 첨예하다. 이 논쟁이 지금 처음 시작된 것처럼 느껴질 때, 1953년에도 같은 싸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상기시킨다. 사회는 항상 '다름'을 질병으로 분류하려 했고, 항상 누군가는 그 분류에 저항했다. 에드 우드는 그 저항의 계보 어딘가에 있다. 아마도 가장 이상하고, 가장 기술적으로 서툴며, 그래서 가장 진정성 있는 자리에. 완벽하게 만들어진 프로파간다보다 삐걱대는 진심이 더 오래 남는 이유가 여기 있다.
◆ 오프닝의 자살 장면 — 여성 속옷을 입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성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오프닝이 우드가 전달하려 한 메시지의 핵심이다. 이해받지 못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우드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 벨라 루고시의 등장 장면 — 루고시가 왜 이 영화에 있는지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그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비웨어, 비웨어, 비웨어"를 반복하는 그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영화가 끝난 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 꿈의 시퀀스 — 혼란스럽고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이 시퀀스를 에드 우드의 내면 풍경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보라. 채찍 소리, 앙고라 스웨터, 악마의 형상 — 모든 이미지가 이 사람이 살았던 내면의 지형이다. 이것은 편집 실패가 아니라 언어의 부재다.
◆ 알턴 박사의 대사 — 사회가 이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사. 이 대사가 1953년에, 착취 영화의 포장 속에서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를 느껴보라. 주류 의학계가 정반대를 말하던 시대에.
◆ 결말의 수용 장면 — 바바라가 글렌의 고백을 받아들이는 방식. 바바라를 연기한 돌로레스 풀러는 당시 에드 우드의 실제 연인이었다. 이 장면이 픽션인지 다큐인지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이 영화의 전부가 보인다.
◆ 제일 베이트 (1954, 에드 우드) — 글렌 또는 글렌다 바로 다음 해에 우드가 내놓은 범죄물. 자전적 고백에서 장르 영화로 넘어가는 궤적이 드러난다. 그가 이야기의 폭을 넓히려 어떻게 분투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 더 시니스터 어지 (1960, 에드 우드) — 우드가 사회적 소외와 도덕 문제를 다룬 후기작. 글렌 또는 글렌다에서 엿보였던 '소외된 자'를 향한 시선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 히치하이커 (1953, 아이다 루피노) — 같은 해 개봉한, 또 다른 할리우드 변두리 감독의 작품. 여성 최초의 누아르 감독과 '최악의 감독'이 같은 해 각자의 영화를 만들었다. 1953년이라는 해가 얼마나 풍요로운 변방의 시간이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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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