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끝나도 마늘은 새로 걸어야 했다 | MovieLAB LAB

로버트 모건은 아침부터 마늘의 냄새를 걱정한다. 향이 약해지면 집을 지킬 수 없다. 새 거울도 구해야 한다. 밤마다 집으로 몰려오는 흡혈귀들을 막으려면 해가 떠 있는 동안 이 일…

세상이 끝나도 마늘은 새로 걸어야 했다 | MovieLAB LAB

로버트 모건은 아침부터 마늘의 냄새를 걱정한다. 향이 약해지면 집을 지킬 수 없다. 새 거울도 구해야 한다. 밤마다 집으로 몰려오는 흡혈귀들을 막으려면 해가 떠 있는 동안 이 일을 끝내야 한다. 〈지구 최후의 인간〉에서 홀로 살아남은 남자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상이 무너진 뒤에도 할 일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빈센트 프라이스가 연기하는 모건에게는 알람 시계와 커피, 식량이 있다. 아침을 맞을 준비는 갖춰져 있다. 문제는 그 아침에 아무런 기대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때 즐거웠던 식사를 몸에 연료를 넣는 일쯤으로 여긴다. 살아남는 방법을 잘 알게 됐는데, 살아 있다는 기쁨은 자꾸 옅어진다.

검은 바탕에 남자의 얼굴, 흰색 여성 형체와 저택을 그린 광고 그림. 아래쪽에는 누운 여성과 영문 크레딧이 배치돼 있다.

밤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하는 일

낮 동안 모건은 시신을 치우고, 잠든 흡혈귀들을 찾아다닌다. 필요한 물건을 구하러 나갔다가 차에 기름이 떨어지면 들를 곳이 하나 더 생긴다. 그는 시간을 확인하고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을지 따진다. 오늘 하루를 넘기는 데 필요한 일이 구체적일수록, 그 하루가 얼마나 버거운지도 잘 보인다.

마늘과 거울은 익숙한 흡혈귀 이야기의 소품이다. 이 영화에서는 그것들을 계속 갈아주고 보충해야 한다. 향이 빠진 마늘을 그대로 걸어둘 수 없고, 거울이 깨져도 모른 척할 수 없다. 집의 안전이 집주인의 부지런함에 달려 있다. 모건이 피곤하다고 하루 쉬면 그만큼 밤이 위험해진다.

그렇다고 손에 익은 일을 무감각하게 해내는 것도 아니다. 모건은 여전히 시신 앞에서 속이 메스껍고, 앞으로 말뚝을 얼마나 더 만들어야 할지 생각한다. 일을 하는 몸과 그 일에 질린 마음이 함께 움직인다. 반복되는 일과를 따라가다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오래 버텼는지와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가 다른 문제로 다가온다.

흙더미 앞에서 한 남자가 여성을 두 팔로 안고 있다. 뒤에는 기름통 여러 개와 차량 일부가 보인다.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 문을 열 수 없는 사람

모건은 무선으로 누군가를 부른다. 응답은 오지 않는다. 그런데 밤이 되면 집 밖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중에는 한때 친구였던 벤 코트먼의 목소리도 있다. 낮에는 다른 사람의 대답을 기다리던 사람이, 밤에는 자기를 찾는 사람을 피해 문을 잠근다.

이 목소리에는 이름 모를 괴물의 위협과 다른 불편함이 있다. 벤은 모건을 알고, 모건도 벤을 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예전 관계의 일부가 남아 있다. 익숙한 이름을 부른다는 사실만으로 다시 친구가 될 수는 없다. 모건에게 문을 연다는 것은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일보다 훨씬 위험한 선택이 됐다.

그가 안에서 틀어놓은 음악에도 문밖의 소리가 섞여든다. 집은 사람의 온기를 되찾는 장소가 되기 어렵다.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데 성공해도 안에서 함께 지낼 사람이 생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침입을 막는 일과 외로움을 견디는 일을 모건 혼자 맡고 있다.

그래서 낮에 마주친 한 여자가 특별해진다. 도망치는 여자를 향해 모건은 해치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중에 루스라는 이름을 알게 되는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에는 반가움과 의심이 함께 있다. 모건은 그녀가 안전한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다. 하지만 확인하려는 행동 자체가 상대를 겁먹게 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잃어버린 신뢰가 돌아오지는 않는다.

빈 도시를 채우는 한 사람의 목소리

영화는 모건의 속말을 자주 들려준다. 해야 할 일을 정리하다가 지나간 삶을 떠올리고, 자신을 다독이거나 질책한다. 누군가와 주고받았을 말들이 혼자 하는 말로 남아 있다. 그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도시가 비었다는 사실보다 말을 건넬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먼저 느껴질 수 있다.

프라이스의 연기도 이 혼잣말과 나란히 볼 만하다. 다음 일을 생각하는 동안 몸은 이미 손에 익은 일을 하고 있다. 버텨야 한다고 자신을 몰아세우는 말과, 또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의 피로 사이에 거리가 있다. 모건을 강한 생존자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집을 지키는 요령과 슬픔을 감당하는 요령이 함께 늘어난 것은 아니다.

텅 빈 도시의 배경이 된 곳은 로마다. 프라이스는 촬영 당시 새벽부터 이동하며 미국 도시처럼 보이는 장소를 찾았다고 회고했다.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할 만큼 추웠다는 기억도 남겼다. 화면 속에 혼자 있는 인물 뒤로, 도시를 골라 담고 촬영을 준비한 사람들의 일이 있었다.

넓고 둥근 상부를 기둥들이 받친 건물 앞에 정장 차림의 남성이 있다. 왼쪽에는 나무와 언덕이 보인다.

이 작품은 리처드 매드슨의 1954년 소설 〈나는 전설이다〉를 처음 영화로 옮겼다. 이후 〈오메가 맨〉과 〈나는 전설이다〉도 같은 소설에서 출발했다. 한 사람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보면 각 영화가 생존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드러난다. 여기서는 식사와 집수리, 물자를 구하는 외출이 모건의 남은 삶을 채운다.

왜 지금 이 영화를 볼까

살아남았다는 사실 이후의 시간을 오래 보여준다. 위기를 넘긴 다음 날에도 마늘을 갈아 걸고 시신을 치워야 한다. 무선기에 대고 말을 걸어볼 수도 있다. 그 일을 계속하는 모건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 밤을 막을 물건만이 아니다. 자기 말에 대답해줄 누군가를 바라면서도, 막상 사람이 나타나면 의심부터 해야 하는 처지가 이 영화의 외로움을 깊게 만든다.

감상 포인트

관련 작품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1968, 조지 로메로)
시체들이 몰려오는 농가에 여러 사람이 갇힌다. 혼자 집을 지켜야 하는 모건의 처지와 나란히 보면, 함께 있는 사람의 수가 늘어날 때 생존의 문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할 수 있다.

〈영혼의 카니발〉 (1962, 허크 하비)
사고에서 살아남은 메리는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일하기 위해 다른 도시로 향한다. 낯선 형체가 그녀를 따라붙고 버려진 호숫가 건물이 그녀를 끌어당긴다. 살아남은 인물이 일상으로 돌아가려 할 때 무엇이 그를 가로막는지 이어서 볼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