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영화"라는 칭호를 얻고 불멸이 된 영화가 있다. 1980년, 미국의 두 영화 비평가가 《골든 터키 어워드(The Golden Turkey Awards)》라는 책을 출판하…
"최악의 영화"라는 칭호를 얻고 불멸이 된 영화가 있다. 1980년, 미국의 두 영화 비평가가 《골든 터키 어워드(The Golden Turkey Awards)》라는 책을 출판하며 역사상 가장 형편없는 영화 목록을 발표했다. 1위는 플랜 나인 프롬 아우터 스페이스였다. 에드 우드의 이름은 그날 이후 "최악의 감독"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최악이라는 평판이 오히려 이 영화를 살렸다.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많은 B급 영화가 잊혔지만, 플랜 나인은 지금도 상영되고 분석되고 사랑받는다. 무엇이 "최악"을 "불멸"로 만들었는가.

벨라 루고시는 플랜 나인의 완성을 보지 못했다. 1956년 8월, 루고시는 세상을 떠났다. 에드 우드에게는 그와 함께 촬영한 짧은 푸티지만 남았다. 공동묘지 앞을 걷고, 망토를 휘날리는 장면들. 에드 우드는 그 푸티지를 영화에 쓰기로 결정했다.
루고시와 에드 우드의 관계는 1953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루고시는 70세였고, 드라큘라 이후 22년 동안 B급 영화와 저예산 제작을 전전하며 노쇠해 있었다. 마약 중독과 재정 문제로 사실상 커리어가 끝난 상태였다. 에드 우드는 그런 루고시에게 다가가 자신의 첫 번째 영화 글렌 오어 글렌다(1953)의 주연을 제안했다. 루고시는 수락했다. 두 사람은 이후 브라이드 오브 더 몬스터(1955)에서도 함께 작업했다.
1956년 여름, 에드 우드는 루고시에게 새 영화를 위한 짧은 장면을 촬영해달라고 부탁했다. 루고시는 그것이 마지막 촬영이 될 줄 몰랐다. 몇 주 후 그는 사망했고, 에드 우드는 그렇게 남은 이 푸티지를 붙들고 영화를 완성하기로 했다. 루고시가 연기하지 못한 장면들은 그의 지인이었던 척추지압사 톰 메이슨이 망토로 얼굴을 가리고 대신 연기했다. 루고시보다 키가 훨씬 크고 체형도 달랐는데도. 이것은 허술함의 극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에드 우드가 루고시에게 바친 기묘하고 진심 어린 헌사이기도 하다.
플랜 나인의 이 결정은 영화사에서 손꼽히게 논쟁적인 제작 선택으로 남아 있다. 망자의 이미지를 동의 없이 상업 영화에 사용했다는 비판과, 자신이 존경하는 배우를 어떻게든 스크린에 남기려 했던 에드 우드의 집착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보든, 그 결정을 밀어붙인 힘은 냉소가 아니라 과잉된 열정이었다.
"최악의 영화"라는 평판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책(메드베드 형제의 《골든 터키 어워드》)이 플랜 나인을 1위로 지목하면서 이 영화의 운명이 바뀌었다.
책이 나오기 전에도 플랜 나인에는 나름의 컬트 팬덤이 있었다. 심야 텔레비전 방영과 대학가 상영으로 열렬한 팬이 소수나마 생겨났다. 그러나 골든 터키가 이 영화를 "최악 중의 최악"으로 공식화하자, 역설적인 일이 벌어졌다. 최악이라는 인증이 그대로 홍보가 되었다. 사람들은 역사상 가장 나쁜 영화가 어떤 것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했다. 비웃기 위해 찾아온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다른 것을 발견했다. 조잡함 뒤에 숨은 무언가. 설명하기 어렵지만, 느껴지는 무언가.
그것은 에드 우드의 진심이었다. 플랜 나인의 특수효과는 낚싯줄에 매달린 파이 접시 모양의 소품이다. 묘지 세트는 얄팍한 스티로폼 묘비와, 누가 봐도 실내에서 조명을 받은 배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낮에 시작한 야외 장면이 편집 중에 갑자기 밤으로 바뀐다. 같은 장면인데 컷이 바뀌면 배우의 넥타이 색이 달라진다. 이 오류들을 에드 우드는 편집하면서 손보지 않았다. 애초에 눈에 띄지도 않았다는 듯이. 에드 우드는 자기 영화를 한 발 떨어져서 볼 줄 몰랐거나, 그게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찍은 모든 장면을 사랑했고, 그 사랑이 영화에 그대로 배어 있다.
역설이 있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영화는 제작자의 의도만을 전달하지만, 에드 우드의 영화는 의도를 훌쩍 넘어서는 무언가를 전달한다. 그것은 한 인간이 품은 꿈의 크기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다. 그 간극이 우습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하다.
에드 우드는 장소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영화인이 아니었다. 그는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 자체가 세계와 어긋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어긋남이 그를 흔한 B급 감독과 다른 자리에 세운다.
에드워드 데이비스 우드 주니어(1924~1978)는 뉴욕 포킵시 출신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미 해병대원으로 참전했다. 이후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그에게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있었다. 당시 시대가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그는 그것을 표현했다. 자신의 첫 번째 장편 글렌 오어 글렌다에서 직접 여장을 하고 주인공을 연기했다. 이것은 단순한 자전적 프로젝트를 넘어, 1953년이라는 시대에 트랜스젠더 이슈를 정면으로 다룬 거의 유일한 시도였다. 물론 영화는 연출 면에서 엉망이었다. 그러나 그 주제를 다루려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에드 우드는 시대를 앞서 있었다.
그는 할리우드의 전통적인 루트로 들어오지 못했다. 스튜디오 시스템 밖에서, 언제나 부족한 예산으로, 비전통적인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크리스웰은 초능력 예언자 코스프레로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쇼맨이었고, 토르 존슨은 스웨덴 출신의 프로 레슬러였으며, 마일라 누르미는 '뱀파이라'라는 TV 캐릭터로 활동하는 배우였다. 이들은 명배우가 아니었다. 그러나 에드 우드는 이들을 사랑했다. 이들도 에드 우드를 따랐다. 그의 세트에는 기묘한 가족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에드 우드가 실패한 것은 재능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기 재능의 한계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특이한 맹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오손 웰스와 같은 반열에 있다고 믿었다. 이 착각이 비극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가 끊임없이 카메라를 들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다. 체념을 모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플랜 나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읽으면, 에드 우드가 실은 제법 야심찬 주제를 다루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의 완성도는 별개로, 그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는 분명하다.
외계인들이 지구를 방문한다. 그들은 지구인에게 경고를 보내려 했지만 무시당했다. 플랜 9는 죽은 자들을 부활시켜 지구인들의 주의를 끌려는 마지막 시도다. 인류가 핵무기보다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기 전에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외계인 대표는 인류에게 직접 연설한다. 당신들은 빛의 속도로 폭발하는 무기를 개발할 것이다. 그것이 태양에 닿으면 우주 전체가 연쇄 폭발할 것이다. 멈추어야 한다.
이것은 1950년대 미국의 핵공포를 정면으로 다루는 이야기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이후 10년, 냉전이 절정에 달한 시기, 미국인들은 소련의 핵폭탄을 일상적으로 두려워하며 살았다. 드라이브인 극장을 채운 관객들은 그 공포를 몸으로 겪고 있었다. 에드 우드는 그 공포를 SF의 언어로 다루려 했다. 외계인이 막으려는 무기는 수소폭탄의 우화다. 인류의 무모함에 대한 경고다.
이것이 잘 전달되지 않는 이유는 이야기 구성과 연출이 너무 허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드 우드가 이 이야기를 쓸 때 진지했다는 것은 의심하기 어렵다. 그는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예산이 없었고, 기술이 부족했고, 배우들이 어색했지만 — 그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충동 자체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진심의 흔적이 영화 곳곳에 남아있다.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들 사이사이에, 에드 우드가 말하려 했던 것이 어설프게 빛난다.

1994년, 팀 버튼이 에드 우드의 전기 영화 에드 우드를 만들었을 때, 이 이야기는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흑백으로 촬영된 이 영화에는 에드 우드를 비웃는 시선이 없다. 그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조니 뎁이 연기한 에드 우드는 지칠 줄 모르는 낙관주의자다. 배우들이 불평하고, 제작비가 없어지고, 완성된 영화가 조롱받아도 — 에드 우드는 포기하지 않는다. 팀 버튼은 이 인물에게서 자신과 닮은 구석을 보았다. 할리우드의 주류 문법에 편입되지 못하는 기묘한 감수성, 자신이 만드는 세계를 세상보다 더 사랑하는 감독. 팀 버튼의 에드 우드는 비극적 인물이 아니다. 끝까지 자신의 꿈을 놓지 않은 사람이다.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마틴 랜도가 연기한 벨라 루고시가 에드 우드와 드라이브인 극장에서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함께 보는 장면이다. 루고시는 드라큘라 코트를 입은 채 스크린 앞에 서서, 젊은 날의 자신을 본다. 마틴 랜도는 이 장면을 포함한 연기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팀 버튼의 에드 우드는 플랜 나인을 읽는 방식을 영영 바꾸어 놓았다. 이제 이 영화는 웃음거리에 그치지 않고, 영화를 향한 맹목적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되었다.
에드 우드는 1978년 세상을 떠났다. 가난했고, 알코올 중독이었으며, 자신이 만든 영화들이 불멸이 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살아 있는 동안 한 번도 영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아마 이 이야기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일 것이다.
플랜 나인을 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비웃으면서 보는 것이다. 낚싯줄에 매달린 UFO, 갑자기 낮이 되는 밤 장면, 손으로 건드리면 흔들리는 스티로폼 묘비. 이것은 쉽고 재미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 영화를 다 보았다고 할 수는 없다.
두 번째 방법은 에드 우드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를 생각하면서 보는 것이다. 그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에드 우드는 이 영화로 핵전쟁을 경고하려 했고, 자신이 사랑한 벨라 루고시를 스크린에 남기려 했으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영화를 완성하려 했다. 그 의도와 결과 사이의 거리가 이 영화의 진짜 드라마다. 결과가 의도를 배신할 때 — 하지만 의도 자체는 진지할 때 — 우리는 웃음과 동시에 무언가 다른 감정을 느낀다.
2026년, 알고리즘이 생성하는 완벽하게 다듬어진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플랜 나인은 한 가지를 상기시킨다. 완성도와 진심은 별개다. 기술이 없어도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충동은 막을 수 없고, 그 충동이 남긴 흔적은 기술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오손 웰스가 완성도로 영화사를 바꾸었다면, 에드 우드는 완성도의 부재로 영화사에 남았다. 그 역설이 플랜 나인의 진짜 존재 이유다. 퍼블릭 도메인으로 공개된 이 영화는 어디서든 무료로 볼 수 있다. 80분이다. 비웃고 싶다면 비웃어도 좋다. 단, 끝나고 나서 에드 우드의 이름이 왜 기억되는지를 한번쯤 생각해보기 바란다.
◆ 오프닝 나레이션 — 크리스웰의 "미래를 예언하는 자" 포즈로 시작하는 나레이션을 들어보라. 이 목소리의 자신감이 영화의 모든 것을 예고한다.
◆ UFO의 낚싯줄 — 화면 상단을 주의 깊게 보라. 날아다니는 접시에 연결된 낚싯줄을 발견하는 순간, 이 영화의 제작 방식 전체가 한눈에 이해된다.
◆ 벨라 루고시와 톰 메이슨 — 에드 우드가 사용한 루고시의 실제 푸티지 장면과, 루고시 역할을 대신한 톰 메이슨의 장면을 비교해보라. 두 배우의 체형 차이를 편집이 어떻게 무시하고 넘어가는지 확인하는 것이 이 영화 감상의 핵심이다.
◆ 낮과 밤 편집 — 야외 장면에서 낮과 밤이 교차하는 편집 오류를 추적하라. 연속 편집의 규칙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지켜보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큰 즐거움이다.
◆ 외계인 연설 — 클라이맥스의 외계인 연설 장면을 진지하게 들어보라. 에드 우드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이 장면에 모여 있다. 허술한 세트와 어색한 연기를 걷어내면, 핵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외침이 들린다.
◆ 글렌 오어 글렌다 (1953, 에드 우드) — 에드 우드가 직접 주연을 맡아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다룬 자전적 작품. 1953년이라는 시대에 이 주제를 다루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한 맥락이 된다. 플랜 나인을 보기 전에 에드 우드라는 인물을 먼저 이해하고 싶다면 여기서 시작하라.
◆ 스크리밍 스컬 (1958, 알렉스 니콜) — 같은 시대의 저예산 B급 공포 영화. 에드 우드와 다른 방향의 저예산 감독이 어떻게 같은 시기에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비교하는 좋은 대조 작품이다. 두 영화를 연속으로 보면 1950년대 말 B급 영화의 스펙트럼이 입체적으로 보인다.
◆ 더 바이올런트 이어스 (1956, 각본 에드 우드) — 에드 우드가 직접 각본을 쓴 동시대의 저예산 작품. 감독의 자리에 앉지 않았을 때에도 그의 과잉된 열정과 기묘한 진지함이 어떻게 이야기에 배어드는지 확인할 수 있다. 플랜 나인의 세계를 다른 각도에서 이어 보고 싶을 때 좋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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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