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영상통화로 딸의 얼굴을 보다가 방까지 확인한다. 독립해서 따로 사는 딸 연수(하윤경)가 혼자 있는지 알고 싶은 경아(김정영)에게는 그것도 걱정의 일부다. 〈경아의 딸〉은 …
엄마는 영상통화로 딸의 얼굴을 보다가 방까지 확인한다. 독립해서 따로 사는 딸 연수(하윤경)가 혼자 있는지 알고 싶은 경아(김정영)에게는 그것도 걱정의 일부다. 〈경아의 딸〉은 이 익숙하고도 불편한 통화에서 시작한다. 집을 따로 얻은 것으로는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충분히 달라지지 않았다. 경아는 여전히 딸의 생활을 확인해야 안심하고, 연수는 엄마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자기 모습을 골라야 한다.
연수는 교사이고 경아는 요양보호사다. 각자의 일상을 꾸리던 모녀에게, 연수의 전 남자친구가 사적인 영상을 유포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 영상은 경아에게도 도착한다. 연수에게 필요한 것은 곁에서 자기 말을 믿어줄 사람이지만, 엄마의 입에서는 딸을 탓하는 말이 나온다. 밖에서 입은 상처를 집에서 설명하다가 다시 상처받는 상황. 이 영화의 아픔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도 상대를 외롭게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경아의 걱정에는 딸이 자기처럼 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경아는 남편의 폭력을 겪고도 그를 돌보며 살았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와 살던 집에 머문다. 김정영은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자기 몫으로 받아들여온 사람이 요양보호사로 일하게 되었다고 인물을 이해했다.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염려하는 이 사람 자신도, 안전하고 자유로운 삶에 익숙하지 않다.
그 사정을 알면 경아의 불안은 이해된다. 하지만 불안을 달래려고 딸의 행동부터 단속할 때, 연수에게는 자기 경험을 말할 자리가 줄어든다. 피해를 입은 뒤에도 엄마가 먼저 묻는 것이 딸의 잘못이라면, 연수는 도움을 청하기 전에 자신부터 변명해야 한다. 모녀가 가까운 만큼 경아의 말은 남의 말처럼 흘려버리기도 어렵다. 딸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딸에게 가장 말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버린다.
김정은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며, 이런 일을 겪었을 때 자신이 가장 마주하기 두려울 사람으로 엄마를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피해 이후의 이야기에 모녀 관계가 들어왔다. 경아를 맡은 김정영과는 감정이 지나치게 쏟아지지 않도록 조절했다. 소리를 지르는 나쁜 엄마 하나로 관계를 정리했다면, 연수가 왜 그 말에 오래 붙잡히는지도 단순해졌을 것이다. 경아는 연수를 아끼고, 연수 역시 엄마가 소중하다. 영화는 그 친밀함이 안심할 근거가 되지 못하는 순간을 들여다본다.
연수는 피해를 겪은 뒤에도 휴대전화로 예능 영상을 보며 웃는다. 다시 움츠러드는 시간도 있다. 하윤경은 괴로운 일이 있어도 배가 고프고 웃기도 하는 것이 생활이라고 설명했다.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인물을 줄곧 같은 표정 안에 두지 않으려 한 것이다.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 알고 나면, 웃는 얼굴을 본 것으로 이 사람의 상태를 다 알았다고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이 작은 변화들이 연수를 한 사건의 피해자로만 기억하지 않게 한다. 그는 누군가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다시 무엇을 해보려는 사람이기도 하다. 모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엄마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엄마가 걱정된다는 마음이 함께 있을 수 있다. 어느 한쪽을 골라야만 진실한 감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윤경이 감정의 과장을 피하려 했다는 설명은, 이처럼 한꺼번에 정리되지 않는 마음을 따라갈 때 더 와닿는다.
사건 뒤 직장을 그만둔 연수는 제자 하나(박혜진)와 다시 만난다. 감독은 하나가 연수에게 다시 일할 용기를 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학생의 말을 들어주면서 연수 역시 힘을 얻는다. 도움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건네는 사람이기도 한 것이다.
하나는 연수에게 남자친구와의 관계, 연애와 성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연수는 그 말을 듣고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하윤경은 자신이라면 남자친구를 만나지 말라고 더 강하게 말했을 것 같지만, 연수는 엄마처럼 말하지 않으려고 조심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누군가를 걱정하는 어른의 위치에 서자 자신도 경아와 닮은 말을 할 수 있음을 깨닫는 장면이다. 연수는 그 자리에서 말을 고른다.
이 망설임이 모녀의 긴 이야기와 이어진다. 경아가 딸을 걱정하며 해온 말이 있었고, 그 말 때문에 딸이 감춘 생활이 있었다. 이제 연수 앞에는 자기 고민을 이야기하는 더 어린 사람이 있다. 연수는 그 대화를 같은 방식으로 닫아버리고 싶지 않다. 자신이 들었던 말에 다른 답을 내놓는 일은, 엄마를 무조건 미워하거나 모든 말을 용서하는 것보다 훨씬 구체적인 변화다.
감독은 이 모녀에게 완전한 화해보다 각자의 독립이 먼저 필요하다고 보았다. 딸에게만 독립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다. 경아에게도 남편과 딸을 돌보는 일 밖에서 자기 생활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를 위해 얼마나 많이 참았는지 확인하는 것으로는 이 관계가 달라지기 어렵다.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 서두르지 않는 것, 걱정하면서도 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는 것. 〈경아의 딸〉에서 기대하게 되는 다음 대화는 그런 작은 차이에서 시작된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