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연인 앞에서 폼이 나지 않는 남자 | MovieLAB LAB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준호(이동휘)는 태블릿으로 강의를 듣는다. 여자친구 아영(정은채)이 출근하면 친구를 불러 게임도 한다. 스스로는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여기지만, 그 모습…

헤어진 연인 앞에서 폼이 나지 않는 남자 | MovieLAB LAB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준호(이동휘)는 태블릿으로 강의를 듣는다. 여자친구 아영(정은채)이 출근하면 친구를 불러 게임도 한다. 스스로는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여기지만, 그 모습을 본 아영의 생각은 다르다. 대학 때부터 함께한 두 사람은 동거 중이다. 아영은 자신의 꿈을 접고 부동산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진다.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는 이 연인이 헤어지는 데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헤어진 다음 각자의 생활에 남은 초라함과 허전함까지 따라가는 이별 코미디다.

사랑하던 사람의 라면 한 입

아영과 준호의 다툼에는 거창한 논쟁 대신 옷차림과 라면이 등장한다. 아영은 친구들 모임에 늘어난 티셔츠와 체크 남방을 입고 온 준호가 못마땅하다. 준호는 먹을 생각이 없다던 아영이 자신이 끓인 라면을 한 입 달라며 다 먹어버리는 데 화가 난다. 함께 지내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법한 일이 이제는 서로의 잘못을 따지는 이유가 된다. 그 사소함 때문에 우습지만, 식탁 앞의 짜증만 떼어놓고 볼 수는 없다.

돈을 벌어오는 아영에게 준호는 몇 년째 시험을 준비하며 기대 사는 남자다. 준호에게는 돈을 번다는 이유로 집안일을 하지 않는 아영의 태도가 불만이다. 싸운 뒤 아영이 생활비 카드를 정지시키면, 두 사람의 경제적 차이는 당장 돈을 쓸 수 있느냐의 문제로 나타난다. 같은 집에서 연애를 이어가던 동안 돈과 집안일을 어떻게 나눠왔는지가 다툼에 따라붙는다.

이동휘는 이런 준호를 거의 꾸미지 않은 얼굴로 연기했다. 자신을 가꾸거나 외모에 신경 쓰는 인물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형슬우 감독이 반복해서 주문한 것은 눈을 덜 크게 뜨라는 지시였다. 이동휘는 완성본의 강한 눈빛을 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고 회고했다. 큰소리치는 준호에게 위협적인 인상까지 더해지면, 한심한 남자의 투정으로 볼 수 있던 말도 다르게 들릴 수 있다.

가게 안에서 귀에 손을 댄 남자

새 연인과 옛 물건 사이

이별 뒤 준호는 아는 형의 가게에서 장사를 배우고, 아영은 부동산 일에 몰두한다. 각자에게 새로운 사람도 생긴다. 아영은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자상한 경일(강길우)을, 준호는 자유분방한 대학생 안나(정다은)를 만난다. 오래 만난 연인에게 지쳐 있던 두 사람이 다른 성격의 상대와 연애하는 동안, 영화는 옛 관계가 사라진 자리를 함께 살핀다. 이동휘가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 것도 오랜 연애의 안정감이 없어진 뒤의 공허함이었다. 보기 싫었던 버릇과 매일 곁에 있던 사람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이 영화의 출발점은 전 연인에게 태블릿을 돌려주러 가는 남자의 단편 구상이었다. 형슬우는 이별하기 전의 생활과 각자의 새 연애를 더해,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장편으로 넓혔다. 만나야 할 이유는 아직 남아 있는 물건 하나로도 충분하다. 더는 연인이 아닌 상대와 예전처럼 말을 나눌 수 있을지는 별개의 일이다.

그 재회에 엉뚱한 몸의 사정이 끼어든다. 준호는 목에 담이 걸려 고개를 왼쪽으로만 돌릴 수 있다. 이동휘는 진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고개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남자를 표현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에게 어떤 말이 남아 있을지 궁금한데, 준호의 뻣뻣한 목까지 신경 쓰인다. 이별의 쓸쓸함과 몸의 우스꽝스러움이 함께 있는 순간이다. 오래 사랑한 사람과 헤어지는 일에도, 이렇게 폼이 나지 않는 모습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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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