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죽은 뒤에도 아파트 대출금을 갚는 존재가 있다. 황승재 감독의 옴니버스 〈귀신들〉 중 「모기지」에서 남규 B(오희준)는 그 일을 하도록 만들어진 AI다. 그런데 남의 빚을…
인간이 죽은 뒤에도 아파트 대출금을 갚는 존재가 있다. 황승재 감독의 옴니버스 〈귀신들〉 중 「모기지」에서 남규 B(오희준)는 그 일을 하도록 만들어진 AI다. 그런데 남의 빚을 갚아온 그에게도 원하는 집이 생긴다. 낡은 집을 벗어나 새 아파트로 가려면 이번에는 자신이 거액을 빌려야 한다. 제안받은 상환 기간은 500년. 사람 대신 빚을 갚는 기술이 생겼는데, 그 기술로 만들어진 존재도 빚을 내야 집을 얻는다. 남규의 이사 고민에는 어처구니없는 웃음과 꽤 익숙한 걱정이 함께 있다.
감독은 「모기지」에 현재의 나를 위해 미래의 나에게 빚을 넘기는 고민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미래다운 미술을 별도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도, 그 시대를 사는 이들은 자기 생활을 특별한 미래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500년이라는 상환 기간은 터무니없지만 낡은 집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만하다. 그래서 남규를 황당한 상품 앞에 선 기계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AI가 원하는 것을 갖게 해주기를 바라다가도 그 대가가 걱정되는 것이다.
「업데이트」의 작가 위기찬(정경호)은 죽은 뒤에도 자기 글이 완성되기를 바란다. 그 작업을 이어갈 AI가 배송되고, 기찬은 자신을 대체할 존재에게 정보를 넘겨야 한다. 여기서 기술은 남겨진 빚을 처리하는 도구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끝내지 못한 글을 남길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대신 써줄 수 있다면 무엇을 어디까지 알려줘야 하는지, 내가 없는 뒤의 글을 여전히 내 글이라고 여길 수 있을지가 궁금해진다.
정경호는 작가와 작가의 AI를 함께 맡는다. “이제부터 작가님의 정보들을 업데이트할 예정입니다.” AI의 안내는 존댓말로 정중하게 절차를 알린다. 하지만 정보를 갱신하는 일이라는 설명으로는, 기찬이 자기 죽음 이후를 준비하는 마음까지 담기 어렵다. 한 배우에게 원본과 대체물을 모두 맡긴 구성에서 이 공손한 말은 더 묘해진다. 내가 해내지 못한 일을 맡아줄 존재가 곧 나를 대신할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AI가 누군가의 몫을 대신한다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졌을 때는 어떻게 될까. 「음성인식」의 AI맘(이요원)은 길거리에 버려진 애완용 AI들을 보호하려 한다. 그 앞에는 고급 아파트 단지의 환경을 정리한다며 버려진 AI를 처리하는 남자(조재윤)가 있다. 한쪽이 돌보려는 존재가 다른 쪽에게는 치워야 할 대상이다. 같은 AI를 두고도 누가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정반대가 된다.
남규가 바라던 새집을 떠올리면, 고급 아파트 주변에서 버려진 AI를 치우려는 일은 더 불편하게 느껴진다. AI의 노동으로 인간의 주거는 유지되는데, 정작 버려진 AI가 살 곳은 누구의 관심인가. 낡은 집을 떠나고 싶어 하는 남규를 알고 나면, 인간에게 편리한지 여부만으로 이 세계를 평가하기 어렵다. 쓰임이 끝나도 그 존재의 생활까지 함께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