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의 프랜(데이지 리들리)에게는 업무보다 동료와의 대화가 더 어렵다. 맡은 일은 곧잘 해내지만, 사람들이 모여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는 좀처럼 끼…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의 프랜(데이지 리들리)에게는 업무보다 동료와의 대화가 더 어렵다. 맡은 일은 곧잘 해내지만, 사람들이 모여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는 좀처럼 끼어들지 못한다. 집과 사무실을 오가는 하루는 익숙하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머릿속에는 자신이 죽어 있는 광경이 떠오르곤 한다.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생각들이다.
새 동료 로버트(데이브 메르헤예)가 들어오면서 프랜의 하루에 변화가 생긴다. 두 사람은 업무용 메신저로 농담을 나누고 함께 영화를 보러 간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직장인의 연애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프랜에게는 가벼운 농담 하나, 극장에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이 모두 새로운 경험이다. 이 영화는 그 작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큰 사건일 수 있는지 알아본다.

새 직원을 맞는 자리에서 동료들은 좋아하는 음식을 말한다. 프랜이 내놓는 대답은 코티지치즈다. 이야기의 소재는 사소하지만, 이런 질문과 대답을 거치며 프랜도 동료들 앞에서 자기 취향을 조금씩 드러낸다.
프랜의 동료들은 사무실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떠들고 어울린다. 이들 가운데는 코미디에 능한 배우들이 많았고, 연출을 맡은 레이첼 램버트는 즉흥적인 반응이 나올 여지를 두었다. 덕분에 동료들의 대화는 프랜의 외로움을 설명하려고 배치한 배경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끼리 주고받는 말에도 유쾌함이 있다. 가까이서 듣고 있으면 재미있지만, 막상 그 수다에 자연스럽게 합류하는 일은 별개다.
이 차이를 알고 보면 사무실 장면을 웃으면서도 프랜에게 마음이 간다. 누가 그를 괴롭혀서 생기는 거리만은 아니다. 모두가 나쁘지 않은 사람이어도 함께 있을 때 편하지 않을 수 있다. 좋은 사람들이니 적극적으로 어울리면 되지 않느냐는 말로 해결하기 어려운 어색함이다. 영화는 프랜의 침묵과 동료들의 웃음을 같은 공간에 두고, 둘 중 어느 쪽도 억지로 없애지 않는다.
로버트와 나누는 메신저 대화는 조금 다른 기회를 준다.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와 달리 화면에 적어 보낼 수 있고, 둘만 아는 농담도 생긴다. 사무용 알림음 하나가 사적인 기대와 연결된다. 일하던 자리와 컴퓨터는 그대로인데 그 화면을 기다리는 이유가 달라진다. 로맨스가 시작되는 곳으로 이 사무실이 꽤 다정하게 보이는 순간이다.

프랜은 자기 마음을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도 그의 침묵을 모두 독백으로 번역해주지는 않는다. 대신 움직임을 줄인 카메라로 프랜이 공간 안에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하는 사람에게 즉시 시선을 옮기기보다 정해진 구도 안에서 인물들의 반응을 살핀다. 대화의 내용만큼 누가 함께 있고 누가 한발 물러나 있는지도 보인다.
이 고정된 화면과 달리 음악은 프랜의 마음을 훨씬 풍성하게 전한다. 감독은 시나리오에 있던 많은 내레이션을 쓰지 않았고, 음악이 프랜의 내면을 들려주는 역할을 하도록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겉으로 별다른 일이 없어 보이는 시간에도 영화는 단조롭게만 흐르지 않는다. 프랜이 말로 꺼내지 않은 감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소리로 느끼게 한다.
죽음을 상상하는 장면 역시 프랜이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내면의 일부다. 그렇다고 그 장면들만으로 프랜의 상태를 단정하거나, 그의 하루를 전부 절망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일을 해내는 만족도 있고, 누군가의 농담을 받아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영화는 이 여러 감각이 한 사람에게 함께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무거운 제목을 보고 예상했던 것보다 웃거나 설레는 순간이 많다.
로버트에게도 자기 사정과 서툰 면이 있다. 함께 영화를 보러 간다고 두 사람의 감상이 꼭 맞는 것도 아니다. 이제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만큼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그 대답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렸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둘의 데이트에는 들뜬 기대만큼이나 서로를 잘 모르는 데서 오는 긴장이 있다.
프랜이 로버트에게 마음을 조금 열었다고 해서 다음 대화까지 쉬워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처음에는 좋아하는 음식만 짧게 말하던 사람에게, 이제는 함께 본 영화에 관해 이야기할 상대가 생겼다. 그 변화가 크게 느껴지는 것은 영화가 그동안 프랜의 혼자 있는 시간을 충분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지고, 어색해도 그 대화를 조금 더 듣고 싶어진다.
◆ 〈접속〉 (1997, 장윤현) — 얼굴을 마주하기 전, 화면에 남긴 말과 음악을 통해 가까워지는 사람들을 그린다. 프랜과 로버트의 메신저 대화에서 느꼈던 설렘을 다른 시대의 통신 환경에서 만나볼 수 있다. 직접 대면하기 어려운 마음이 오히려 글로 먼저 전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 〈바다의 뚜껑〉 (2015, 도요시마 게이스케) — 바닷가 마을의 빙수 가게에서 두 여자가 함께 일하며 시간을 보낸다. 관계가 깊어지는 속도를 큰 고백이나 사건만으로 정하지 않는다. 하루의 일을 함께하는 동안 생기는 친밀함을 따라가며, 낯선 사람에게 익숙해지는 또 다른 시간을 만날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