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선 벌써 연애 중 | MovieLAB LAB

〈제멋대로 떨고 있어〉의 요시카(마츠오카 마유)는 중학교 동창 이치(키타무라 타쿠미)를 10년째 짝사랑한다. 사귄 적은 없지만 상상 속에서는 벌써 오래된 연인이다. 그런데 같은 …

머릿속에선 벌써 연애 중 | MovieLAB LAB

〈제멋대로 떨고 있어〉의 요시카(마츠오카 마유)는 중학교 동창 이치(키타무라 타쿠미)를 10년째 짝사랑한다. 사귄 적은 없지만 상상 속에서는 벌써 오래된 연인이다. 그런데 같은 회사에 다니는 니(와타나베 다이치)가 불쑥 고백해온다. 요시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치인데, 정작 자신을 만나고 싶다는 사람은 니다. 혼자서 잘 간직해온 짝사랑에 뜻밖의 경쟁자가 생긴 셈이다.

그때부터 가장 바빠지는 사람은 요시카다. 상대가 무심코 한 말을 곱씹다가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한다. 연출을 맡은 오오쿠 아키코는 그 부산한 속마음을 코미디로 만든다. 겉으로는 별일 없이 지나간 하루에도 요시카 혼자서는 연애 한 편을 치러낸다.

밤길에 함께 선 남녀

짝사랑의 상대는 실수할 기회도 없다

요시카는 두 남자를 ‘이치’와 ‘니’, 곧 일과 이로 부른다. 그 호칭에는 이미 순서가 있다. 이치는 오랫동안 좋아해온 특별한 사람이고, 니는 뒤늦게 나타나 평온을 깨뜨린 사람이다. 하지만 오래 좋아했다는 것이 그를 오래 알아왔다는 뜻은 아니다. 요시카가 이치에 관해 확실히 아는 것보다 상상하며 채워온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이치는 멀리 있으니 요시카의 기대를 당장 어길 일이 적다. 반대로 니는 실제로 말을 걸고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한다. 서툰 태도도 눈에 들어오고 부담스러운 순간도 생긴다. 마음속에서 가장 근사했던 사람과 눈앞에서 어색하게 구는 사람을 비교하면, 현실의 상대는 시작부터 불리하다. 요시카의 망설임이 우스우면서도 낯설지 않은 이유다. 막상 만나면 실망할까 봐, 만나지 않은 채 좋아하는 편을 택한 경험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요시카에게는 얄미운 구석도 있다. 자기 취향에 자부심이 강하고 다른 사람을 은근히 내려다보기도 한다. 자신은 상처받고 싶지 않으면서 상대는 쉽게 판단한다. 그 모순 때문에 요시카의 짝사랑은 더 우습고 민망해진다. 응원하던 인물이 못된 생각을 하는데, 그 생각마저 어쩐지 낯설지 않다.

가게 안에서 웃는 요시카와 음료를 마시는 남자

마츠오카 마유가 만드는 혼자만의 소란

마츠오카 마유는 요시카가 머릿속에서 벌이는 소동을 표정과 말의 속도로 보여준다. 남들 앞에서는 꺼내지 못한 말도 혼자 있을 때는 막힘없이 쏟아낸다. 말수가 적어 보이던 요시카에게 이렇게 할 말이 많았다는 사실부터 웃음을 준다.

요시카의 관심사는 연애에만 머물지 않는다. 멸종한 동물을 찾아보는 취미처럼, 남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혼자 몰두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 이런 세부가 쌓이면서 그는 ‘아직 연애를 못 해본 여자’라는 소개보다 훨씬 구체적인 사람이 된다. 영화를 보는 즐거움도 남자친구가 생길지 기다리는 데서, 이 사람이 다음에는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하는 쪽으로 넓어진다.

요시카는 급기야 노래로 감정을 터뜨린다. 평소라면 삼켰을 말을 큰 소리로 부르는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그만큼 속이 시원하기도 하다. 혼자 있을 때만 해봤을 법한 과장된 몸짓과 감정을 마츠오카 마유가 거리낌 없이 연기한다. 사랑에 빠진 모습을 예쁘게만 보여주지 않아서 더 생생한 로맨스다.

상대가 내 상상과 달라지는 순간

와타야 리사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오오쿠는 요시카에게 자신의 모습을 많이 담았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주인공의 편만 들어주지는 않는다. 요시카가 믿어온 이야기가 상대에게도 같은 이야기인지 확인해야 하는 순간을 남겨둔다. 혼자 간직한 추억이 소중하더라도, 상대가 그것을 똑같이 기억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니도 처음의 모습에 머물지는 않는다. 감독은 후반부에 니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이도록 의도했다고 설명했다. 요시카에게 고백을 받아주라고 재촉하는 대신, 니가 좋아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고 본 것이다. 요시카가 그를 다시 보게 되는 과정에는 니 자신의 노력도 있다.

〈제멋대로 떨고 있어〉를 보고 나면 혼자 북받쳤던 감정이 떠오른다. 사소한 말 한마디를 오래 곱씹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며 보낸 시간이다. 돌이키면 낯이 뜨거운 마음을 마츠오카 마유가 끝까지 진지하게 연기한다. 요시카를 보며 실컷 웃고 나면, 한때 그처럼 굴었던 자신도 조금 덜 부끄러워질지 모른다.

관련 작품

◆ 〈접속〉 (1997, 장윤현) — 아직 만나지 않은 상대에게 마음이 깊어지는 과정을 음악과 통신 속 대화로 그린다. 상대를 모르는 만큼 더 많이 상상하게 된다는 점을 이어 볼 수 있다. 요시카의 부산한 속마음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말 사이의 여백이 기다림을 키운다.

◆ 〈소공녀〉 (2017, 전고운) — 남들이 정한 생활의 순서와 다른 선택을 하는 여성을 따라간다. 인물의 취향을 단순한 별난 버릇으로 소비하지 않고, 그 취향이 생활과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함께 볼 만하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