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실종 사건의 용의자가 됐다 | MovieLAB LAB

여자친구가 사라져 도움을 청했는데, 경찰이 나를 의심한다. 〈어브로드〉의 태민(장성범)은 오로라를 보려고 연인 민지(임영주)와 미국에 왔다. 외딴 숙소에 도착한 뒤 밖에서 나는 …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실종 사건의 용의자가 됐다 | MovieLAB LAB

여자친구가 사라져 도움을 청했는데, 경찰이 나를 의심한다. 〈어브로드〉의 태민(장성범)은 오로라를 보려고 연인 민지(임영주)와 미국에 왔다. 외딴 숙소에 도착한 뒤 밖에서 나는 소리를 확인하러 잠시 나간 사이 민지가 사라진다. 영어도 익숙하지 않은 태민에게는 사람을 찾아달라는 말조차 쉽지 않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설명해야 한다.

낯선 곳에서 벌어진 실종은 익숙한 스릴러의 출발점이다. 〈어브로드〉가 그 설정에서 붙잡는 것은 태민의 무력함이다. 그는 현지 사정을 훤히 아는 수사관도,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영웅도 아니다.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해야 상황이 나아질지 알 수 없는 여행자다. 사건의 답을 찾는 동안 자기 말을 알아듣고 믿어줄 사람부터 찾아야 한다.

앞을 향해 권총을 겨눈 남자

함께 온 사람이 사라지자 여행이 끝났다

민지는 태민보다 영어를 잘한다.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그 차이는 여행 중의 작은 불편으로 넘길 수도 있다. 한 사람이 말을 대신하거나 도와주면 되기 때문이다. 민지가 사라진 뒤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가장 먼저 찾아야 할 사람이 동시에 자신과 낯선 환경 사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태민에게 영어는 실력을 평가받는 문제가 아니다. 방금 겪은 일을 설명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오해가 생겼을 때 바로잡을 수 있는지, 누군가 질문한 뜻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가 중요해진다. 평소라면 잠깐 웃고 지나갈 수 있었던 말의 막힘이 이곳에서는 불안으로 이어진다.

장성범은 이런 상황에서 관객이 기대고 따라갈 얼굴이다. 태민의 한국어를 이해하는 관객에게 그의 조급함은 가까이 느껴진다. 그러나 극중 상대에게도 그 뜻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태민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면서도 대신 설명해줄 수 없다. 인물과 같은 편에 서서 함께 답답해지는 스릴러의 방식이다.

연인도 찾고, 알리바이도 증명해야 한다

보안관의 의심을 받게 되면서 태민이 해야 할 일은 늘어난다. 민지의 행방을 찾는 동시에 자기 행적을 증언해줄 사람도 찾아야 한다. 가까운 사람이 사라졌다는 그의 말은 더는 그 자체로 믿음을 얻지 못한다. 도움을 청하는 행동까지 수사의 대상으로 돌아오는 상황이다.

이때 낯선 동네의 사람들은 단순히 길을 물을 상대가 아니다. 자신이 그때 어디 있었는지 말해줄 수도 있고, 반대로 불리한 말을 할 수도 있는 이들이다. 여행자가 스쳐 지나간 만남에 다시 매달려야 한다. 잠깐의 대화와 방문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기억하는지에 그의 처지가 달라진다.

영화는 이런 조건을 통해 태민이 움직일수록 더 고립되는 느낌을 만든다. 사건을 해결할 단서를 찾아다니는 일이 곧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고, 말을 잘할 수 없어도 계속 설명해야 한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의 행동이 주변에서는 수상하게 읽힐 수 있다는 간격이 긴장을 만든다.

관광객의 눈으로 보던 풍경이 달라진다

연출을 맡은 지오바니 푸무 감독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해왔다. 그는 이방인이 낯선 곳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할수록 일이 꼬이는 느낌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국 북부 미네소타를 배경으로 고른 것도 그런 감각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한국인 연인이 미국으로 여행 간다는 설정에는 장소와 언어를 잘 모르는 사람의 경험이 들어 있다.

오로라를 보러 떠났다는 목적은 이후의 사건과 거리가 멀어서 더 씁쓸하다. 둘이 함께 볼 것을 기대했던 풍경이, 한 사람이 사라지자 전혀 다른 장소가 된다. 외딴 숙소의 한적함도 처음에는 여행의 매력이었을 수 있지만 이제는 도움을 구할 사람이 가까이 없다는 뜻으로 느껴진다. 공간이 바뀌지 않아도 그곳에 머무는 사람의 처지가 달라지면 풍경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감독은 한국어로 대화하는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번역한 대본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제작 자체도 서로 다른 언어를 건너는 일이었다. 그 결과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말과 낯선 풍경이 한 화면에 놓인다. 평범하게 대화하던 두 사람 중 하나가 사라지면서, 남은 사람에게 그 익숙함마저 줄어든다.

〈어브로드〉는 여행의 즐거움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잘 작동하는 불안을 갖고 있다. 낯선 풍경은 함께 바라볼 사람이 있고 필요할 때 도움을 구할 수 있을 때 설레는 것이기도 하다. 민지를 찾아 헤매는 태민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 이들이 보려고 했던 오로라보다 다시 둘이 대화할 수 있을지가 더 절실해진다. 영화는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렇게 가까운 두 사람의 문제로 만든다.

관련 작품

◆ 〈만추〉 (2010, 김태용) — 시애틀에서 만난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언어로 가까워진다. 말이 완전히 통하지 않는 상황을 불안과 의심 대신 기다림과 관심으로 풀어낸다. 같은 이방인의 경험에서 얼마나 다른 감정이 생기는지 비교하며 볼 수 있다.

◆ 〈버닝〉 (2018, 이창동) — 한 사람이 사라진 뒤 남겨진 인물이 그전의 말과 행동을 다시 떠올린다. 상대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이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도 의심하게 된다. 실종이 남은 사람의 시선을 바꾸는 영화로 이어진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