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어린 나와 한방에 지낸다면 | MovieLAB LAB

지금 살기도 빠듯한데 어린 시절의 내가 찾아온다. 잊었다고 생각한 모습으로, 이미 지나갔다고 여긴 나이로. 반갑다고 안아줄 수 있을까. 그 아이의 사정을 너무 잘 알아서 오히려 …

돌아온 어린 나와 한방에 지낸다면 | MovieLAB LAB

지금 살기도 빠듯한데 어린 시절의 내가 찾아온다. 잊었다고 생각한 모습으로, 이미 지나갔다고 여긴 나이로. 반갑다고 안아줄 수 있을까. 그 아이의 사정을 너무 잘 알아서 오히려 피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과거의 자신을 아끼자는 말은 따뜻하지만, 실제로 곁에 두고 지내는 일은 그 말보다 복잡할 것이다.

최진영태어나길 잘했어는 그 만남을 춘희의 생활 안에 들여놓는다. 강진아가 연기하는 어른 춘희는 외가의 다락방에 살며 마늘을 까서 돈을 번다. 다한증 수술을 받으려고 모으는 돈이다. 벼락을 맞은 뒤에는 박혜진이 맡은 어린 춘희가 나타난다. 1998년 부모를 잃고 외가에서 지내던 시절의 자신이다. 어린 나를 다시 만난다는 판타지에, 춘희가 오랫동안 살아온 구체적인 사정이 겹친다.

좋았던 때만 골라 돌아갈 수 있다면

옛날을 떠올릴 때에는 기억할 장면을 고를 수 있다. 즐거웠던 일은 오래 생각하고, 부끄러운 일은 금세 다른 생각으로 넘기기도 한다. 하지만 춘희 앞에 온 아이는 편집된 추억이 아니다. 부모를 잃은 뒤 누군가의 집에 머물러야 했던 때의 자신이다. 그 아이가 현재의 생활에 끼어들면서 지나간 시절도 다시 상대해야 할 일이 된다.

감독은 어린 춘희가 나타나는 때에 특별한 규칙을 두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어른이 슬프거나 힘들 때만 찾아오는 존재로 정하지 않은 것이다. 춘희가 필요할 때 위로를 받고 돌려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아이가 불쑥 나타났을 때 지금의 춘희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 만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게 된다.

어린 자신을 안다고 해서 그 아이를 대할 방법까지 아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내가 겪은 일을 설명하는 것과,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건네는 일은 다르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관객도 어린 춘희를 어른의 사연을 알려주는 존재로만 보기 어려워진다. 같은 사람의 두 시기이면서 각자 자기 말을 해야 하는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겹쳐진 손을 크게 담은 세로 포스터다. 위에 태어나길 잘했어라는 제목이 있고 아래에 The Slug가 적혀 있다.

자기 사정을 한 가지 말로 줄이지 않기

춘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세는 일은 쉽다. 자기 집이 없고 돈이 넉넉하지 않으며, 손에 나는 땀 때문에 다른 사람과 손잡는 일도 어렵다. 이런 정보를 먼저 알고 나면 춘희의 모든 행동을 그 사정의 결과로 해석하기 쉽다. 일을 하는 모습이나 누군가와 어울리는 기분까지 비슷한 표정으로 예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의 춘희는 씩씩한 면도 있다. 각본의 인물이 더 어둡고 답답했을 때, 강진아는 우울한 인물의 틀을 벗어나보자고 제안했다. 감독과 배우가 받아들인 변화는 과거의 상실을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 그 과거를 가진 사람도 지금 여러 감정을 드러내며 살 수 있게 하는 일이었다.

푸른 안경을 쓴 여성이 장갑 낀 손으로 탁자 위 마늘을 손질하고 있다. 옆에 마늘과 껍질, 노란색·연두색 그릇과 분무기가 놓여 있다.

마늘을 까는 모습에는 이런 생각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감독은 손에 땀이 많은 춘희에게 손으로 잘하는 일이 있기를 바랐다고 했다. 수술비가 필요하다는 설명을 들은 뒤에 그 손의 솜씨를 보게 되는 것이다. 자기 몸에 불편한 부분이 있어도 그 몸으로 이미 해내는 일이 있다. 춘희를 더 알아갈수록 고쳐야 할 것의 목록만으로는 이 사람을 소개하기 어려워진다.

주황을 만나면서도 비슷한 차이가 보인다. 그는 말을 더듬지만 태평소를 분다. 춘희에게 새로 생긴 관계에는 서로가 어려워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함께 들어 있다. 한 사람의 불편을 먼저 알고 만나는 것과, 같이 시간을 보내며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다른 경험이다.

나눌 것이 있는 사람으로 살기

춘희는 길에서 만난 노숙인과 빵을 나누고 신발을 건넨다. 자기 살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내어주는 장면이다. 춘희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지 생각하던 관객은 여기서 그가 무엇을 줄 수 있는지도 보게 된다. 돈과 집이 부족하다는 사정이 그의 관계 속 역할까지 고정하지는 않는다.

공원 벤치에 두 여성이 앉아 간식을 먹는다. 왼쪽 여성은 자수 무늬 가방을 무릎 위에 두었고, 오른쪽 여성은 보라색 천을 어깨에 두르고 분홍색 다리 토시를 하고 있다.

남에게 무언가를 줄 때는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살피게 된다. 과거의 자신을 대할 때도 그런 주의가 필요할 수 있다. 왜 그렇게 살았느냐고 따지기 전에, 그때 무엇이 없었고 무엇이 필요했는지를 보는 일이다. 어린 춘희의 등장을 지나온 나를 평가할 기회로만 생각하지 않으면, 지금의 춘희가 그 아이 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궁금해진다.

다락방에 남아 있는 춘희의 모습도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외가 식구들이 이사한 뒤에도 그는 더 큰 방으로 옮겨가지 않는다. 감독은 처음에는 용기와 연결해 생각했던 행동을 나중에는 익숙한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돌아봤다. 방이 비었다는 사실만으로 당사자가 그곳을 자기 자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보면 자신을 아끼는 일은 한 번의 결심보다 생활에 가깝다. 익숙한 자리를 떠날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의 호의를 받을 수 있는지, 어린 자신이 곁에 왔을 때 어떤 말을 할 수 있는지에 걸려 있다. 태어났다는 사실을 긍정하는 제목도 춘희의 하루를 지난 뒤에야 그만의 무게를 갖는다.

지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 말이 격려인지 훈계인지 생각해볼 만하다. 더 잘했어야 한다는 말을 다정한 충고처럼 건네고 싶어질 때도 있다. 이 영화는 어린 자신을 실제 상대처럼 곁에 두면서, 그 아이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내어줄 수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춘희의 생활이 구체적이어서 그 질문도 막연한 위로로 끝나지 않는다. 일하는 손과 남에게 건네는 신발, 계속 머무는 방을 보게 된다. 자신을 좋게 평가할 이유를 찾기 전에, 지금까지 그 몸으로 살아온 시간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하는 이야기다.

감상 포인트

어린 내가 나타난 때의 생활 — 아이의 등장에 숨은 규칙을 찾기보다 어른 춘희가 하던 일에 주목해보자. 현재의 하루에 과거의 자신이 끼어드는 상황이다. 반가움과 불편함을 미리 정하지 않고 둘의 만남을 따라갈 수 있다.

춘희의 여러 기분 — 형편을 알고 나서 모든 표정을 같은 감정으로 해석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자. 혼자 일하는 때와 사람을 만나는 때의 차이도 있다. 한 사람의 사연과 현재의 성격을 함께 알아가는 재미다.

신발을 내어주는 행동 — 춘희가 호의를 받는 순간과 다른 사람을 살피는 순간을 나란히 보자. 어느 한쪽의 역할만 맡고 사는 사람은 아니다. 가진 것의 크기와 관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나누어 생각하게 된다.

비어도 옮겨가지 않는 방 — 공간이 생기는 일과 그곳을 내 자리로 여기는 일 사이의 차이에 주목하자. 춘희가 오래 머문 방을 곧바로 게으름이나 용기의 증거로 읽기보다, 그곳이 익숙해진 시간을 함께 볼 수 있다.

관련 작품

홈리스 (2020) — 아이와 함께 머물 곳을 찾는 부부가 타인의 빈집에 들어간다. 몸을 눕힐 지붕이 있다는 사실과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는 감각은 다르다. 춘희의 다락방처럼 주거가 관계와 선택을 어떻게 제한하는지 보게 한다.

정말 먼 곳 (2021) — 화천의 목장에서 아이를 키우던 진우 앞에 여동생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꾸려온 생활에 가족의 요구가 들어오면서 함께 사는 관계를 다시 묻게 된다. 누구에게 어떤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지, 내 생활을 결정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하며 이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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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