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마지막 전투」의 크레딧에서 그가 맡은 배역에는 이름이 없다. 브뤼트, 우리말로 옮기면 짐승이나 난폭한 자쯤 되는 호칭이다. 대사도 거의 없다. 열한 해 뒤 같은 감독…
1983년 「마지막 전투」의 크레딧에서 그가 맡은 배역에는 이름이 없다. 브뤼트, 우리말로 옮기면 짐승이나 난폭한 자쯤 되는 호칭이다. 대사도 거의 없다. 열한 해 뒤 같은 감독의 영화에서는 그가 맡은 배역의 이름이 그대로 제목에 오른다. 그 사이의 네 편을 무비랩이 함께 틀고 있어서, 장 르노라는 배우가 화면에서 어떻게 자리를 얻어 갔는지를 크레딧만 이어도 볼 수 있다.
배역명 네 개를 순서대로 놓으면 궤적이 그대로 나온다. 마지막 전투의 브뤼트, 서브웨이의 드러머, 그랑블루 감독판의 엔조 몰리나리, 레옹의 레옹 몬타나.
장 르노는 1948년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났다. TMDB에 올라 있는 출연작은 119편이며 그 가운데 베송과 함께한 편이 넷이다. 백 편이 넘는 이력에서 한 감독과의 구간만 떼어 차례로 이어 보는 일은 대개 불가능한데, 그 넷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 글이 다루는 것은 그 드문 경우다.
앞의 둘은 이름이 아니다. 무엇인지를 가리키는 호칭일 뿐이다. 짐승이라 불리는 사람, 드럼을 치는 사람. 세 번째에서 성과 이름이 붙고, 네 번째에서 그 이름이 영화 제목이 된다. 배우의 십여 년이 이렇게 네 칸으로 요약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브뤼트라는 호칭은 그가 처음 받은 것도 아니었다. 두 해 전 뤽 베송의 단편에서 이미 같은 호칭을 달고 나왔고, 감독은 장편을 만들면서 같은 배우에게 같은 자리를 한 번 더 맡겼다. 첫 장편의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대사가 거의 없는 흑백 영화였으니 르노가 쓸 수 있는 도구는 몸뿐이었다. 이 영화는 1983년 아보리아즈 판타스틱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과 비평가상을, 같은 해 시체스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는다. 상은 감독에게 갔지만 그 덕에 다음 편의 문이 열렸다. 르노는 그 문을 함께 지났다.
두 번째 편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브웨이에서 그의 크레딧은 이름이 아니라 무대에서 맡은 자리, 곧 드러머다. 이 영화는 1986년 제11회 세자르상에서 13개 부문 후보에 올라 남우주연상과 미술상, 음향상을 받았다. 그 목록 어디에도 르노는 없다. 이 편에서 그가 얻은 쪽은 상이 아니라 화면에 서 있는 시간이었다.
베송이 르노에게 준 자리는 네 번 다 말이 막힌 자리였다. 우연이라기에는 조건이 지나치게 일정하다.
첫 편의 세계에서는 인물들이 말을 잃었다. 두 번째 편의 드러머는 연주하는 동안 입을 뗄 자리가 없다. 세 번째 편에서 인물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물속이고, 물속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네 번째 편의 킬러는 말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기로 한 사람이다. 조건은 조금씩 다른데 결과는 같다. 관객은 그의 말을 듣는 대신 그의 몸을 본다.
대사가 없으면 남는 것은 걷는 속도, 손이 멈추는 자리, 상대를 보는 시간의 길이다. 르노가 다루는 것은 표정의 크기보다 반응의 시차다. 상대가 말을 끝내고 나서 그가 움직이기까지 남는 짧은 공백이 인물의 성격을 정한다. 공백이 길면 둔한 사람이 되며 지나치게 짧으면 계산이 빠른 사람이 된다. 르노는 그 사이를 잡는다.
이 방식은 배우에게 불리해 보인다. 말이 없으면 보여줄 것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 편을 이어 보면 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말이 막힌 자리에 같은 배우가 반복해서 놓이는 동안, 관객은 그 얼굴을 읽는 법을 배우게 된다. 배역이 커진 것은 그다음이다.
세 번째 편의 엔조만 예외다. 말이 많고 자신을 크게 드러내며 화면을 끌고 간다. 앞의 두 배역과 성질이 정반대다.
말수가 적은 인물을 잘 다루던 배우에게 감독이 반대쪽을 시켜 봤다. 그 시도가 통했다. 이 영화는 1989년 제14회 세자르상에서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영화음악상과 음향상을 받았다. 수중 장면은 배우들이 직접 물에 들어가 찍었고, 물에서 보낸 시간만 아홉 달이었다.
이 궤적을 배우 혼자 걸어온 길로 읽으면 절반만 보게 된다. 베송의 현장에는 반복해서 붙는 이름들이 있다. 음악을 맡은 에릭 세라는 무비랩이 트는 다섯 편 내내 함께했고, 두 번째 편에서는 지하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화면 안에 직접 선다. 카메라는 앞의 세 편을 카를로 바리니가, 레옹과 제5원소를 티에리 아르보가스트가 맡았다. 르노는 그 두 카메라를 모두 통과한 배우다.
무비랩이 트는 베송의 다섯 편 가운데 네 편에 이 배우가 있다. 연도순으로 이어 보면 한 사람이 화면에서 자리를 넓혀 가는 과정이 그대로 남는다. 배우의 이력을 이렇게 한자리에서 따라갈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보는 순서를 정한다면 연도순이 가장 낫다. 브뤼트부터 시작하면 배역의 크기보다 배우의 태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말이 없을 때 무엇을 하는지, 상대의 말을 어떻게 받는지가 네 편 내내 같은 방식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커진 것은 배역이지 연기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 순서로 봐야 확인된다.
이름 없는 배역을 맡은 배우가 무엇을 해서 이름을 얻는가. 이 질문에 네 편으로 답할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다.
◆ 반응이 시작되는 순간 — 상대가 말을 끝낸 뒤 르노가 언제 움직이는지 보라. 그가 인물의 성격을 만드는 자리는 표정이 아니라 그 공백이다.
◆ 손이 하는 일 — 대사가 없는 장면에서 그의 손이 무엇을 쥐고 어디서 멈추는지 보라. 말 대신 손이 그 인물의 사정을 알려준다.
◆ 배역명의 변화 — 브뤼트, 드러머, 엔조 몰리나리, 레옹 몬타나. 크레딧만 이어 봐도 이 배우의 십여 년이 어떻게 흘렀는지 읽힌다.
◆ 엔조라는 예외 — 그랑블루에서 그는 말이 많고 몸짓도 크다. 다른 세 편의 조용한 인물들과 무엇이 달라지는지 견주어 보라.
◆ 두 카메라 — 바리니가 찍은 세 편과 아르보가스트가 찍은 레옹에서 같은 얼굴이 어떻게 다르게 놓이는지 보라.
◆ 마지막 전투 (1983, 뤽 베송) — 시작점이다. 대사가 거의 없는 흑백 영화에서 르노가 쓸 수 있는 도구는 몸뿐이었고, 그 조건이 이후 네 편의 방법을 만들었다. 배역명이 아직 이름이 아니던 시절의 얼굴을 볼 수 있다.
◆ 그랑블루 감독판 (1988, 뤽 베송) — 말이 많은 엔조를 맡은 편이다. 이 배우의 폭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하려면 여기를 봐야 한다. 168분 판본에서 늘어난 시간의 상당 부분이 이 인물에게 간다.
◆ 제5원소 (1997, 뤽 베송) — 무비랩이 트는 다섯 편 가운데 르노가 없는 유일한 편이다. 세라의 음악과 아르보가스트의 카메라만 남았을 때 베송의 화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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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