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배역에서 제목이 되기까지 | MovieLAB LAB

1983년 마지막 전투에서 장 르노가 맡은 배역에는 이름이 없다. 브뤼트, 우리말로 옮기면 난폭한 자쯤 되는 호칭이다. 열한 해 뒤 같은 감독의 영화에서는 그가 맡은 배역의 이름…

이름 없는 배역에서 제목이 되기까지 | MovieLAB LAB

1983년 마지막 전투에서 장 르노가 맡은 배역에는 이름이 없다. 브뤼트, 우리말로 옮기면 난폭한 자쯤 되는 호칭이다. 열한 해 뒤 같은 감독의 영화에서는 그가 맡은 배역의 이름이 그대로 제목에 오른다. 레옹이다. 한쪽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협으로 나타나던 배우가, 다른 쪽에서는 관객이 일상을 궁금해하는 주인공이 된다.

그 사이에 서브웨이의 드러머와 그랑블루 감독판의 엔조 몰리나리가 있다. 네 배역의 이름을 나란히 놓으면 배우가 점점 큰 역할을 얻어간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영화를 들여다보면 이름의 크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차이가 있다. 르노는 위협적인 남자일 수도 있고, 곁에 있으면 시끄럽고 즐거운 친구일 수도 있다.

이름 대신 하는 일로 불리는 사람들

앞의 두 배역을 배우의 처지로만 읽으면 어긋난다. 마지막 전투에서는 르노만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남자, 의사, 대위처럼 다른 주요 인물들도 역할로 불린다. 서브웨이에도 꽃장수나 롤러처럼 하는 일과 특징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드러머라는 이름은 르노의 배역이 그 지하 세계에 속한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뤽 베송의 첫 장편인 마지막 전투는 인류가 말을 잃은 뒤의 세상을 그린다. 문명이 무너진 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서로에게 다가가거나, 문을 막거나, 공격한다. 르노가 맡은 브뤼트는 폐허 속 진료소에 들어가려는 난폭한 남자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설명을 듣기 전에 그의 접근을 경계하게 된다.

이 조건에서는 다가오는 몸 자체가 사건이다. 상대가 누구인지, 어떤 목적이 있는지 말로 확인할 수 없으니 거리를 좁히는 행동부터 의심하게 된다. 브뤼트에게 이름이 없다는 사실은 그런 불확실함과도 어울린다. 자신을 소개하지 않는 사람이 문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서브웨이에서는 그 몸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린다. 도망치다 지하철로 숨어든 프레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르노는 그중 드럼을 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드러머라는 호칭에는 위협보다 함께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구체적인 쓸모가 담겨 있다. 같은 배우에게 이름을 주지 않더라도 두 영화가 그를 대하는 방식은 다르다.

엔조는 조용히 물러나 있지 않는다

《Le Grand Bleu》 스틸 — 주황색 잠수복 지퍼를 반쯤 연 남자가 둥근 금테 안경을 쓴 채 위를 보며 입을 벌리고 웃고 있다. 뒤쪽 연푸른 금속 벽면에는 놋쇠 밸브 손잡이와 압력계가 빽빽하게 붙어 있다

그랑블루의 엔조는 말이 많고 자신을 크게 드러낸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잠수 선수 자크와 경쟁하면서도 그를 가까이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바다에 깊이 들어가는 능력은 두 남자가 공유하지만, 물 밖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여기 실린 사진에서도 엔조는 잠수복 지퍼를 열어둔 채 입을 벌리고 웃는다. 뒤에는 밸브와 압력계가 가득하다. 잠수를 둘러싼 기계들 사이에서도 사람의 목소리가 들릴 듯한 사진이다. 이 얼굴을 보고 나면 르노를 말수 적은 남자의 전문 배우로만 기억하기는 어렵다.

자크의 관심이 바다 깊은 곳으로 향할수록 엔조의 활기는 두 사람 사이에 차이를 만든다. 친구이면서 경쟁자인 상대를 곁에 두려는 마음에는 다정함과 자존심이 함께 들어 있다. 르노가 크게 웃고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은 이 관계를 그만큼 가까이 느끼게 한다. 엔조가 화면에 들어오면 다른 사람과 부딪치고 어울릴 일이 생긴다.

우유잔을 쥔 킬러

흰 러닝셔츠 차림의 남자가 부엌 식탁에 앉아 우유가 담긴 유리잔을 손으로 감싸 쥐고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고 있다. 뒤로는 창문과 초록색 선풍기, 냉장고가 있고 오른쪽에는 우유갑과 파스타 상자가 놓여 있다

레옹의 부엌으로 옮겨오면 분위기가 바뀐다. 흰 러닝셔츠 차림의 남자가 우유잔을 쥐고 앉아 있다. 창문 앞에는 선풍기가 있고, 식탁에는 우유갑과 파스타 상자가 놓였다. 총을 다루는 직업과 별개로 혼자 먹고 마시는 생활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 제목이 된 인물을 집 안에서 만나면, 그가 위험한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만 궁금한 것은 아니다.

이웃 소녀 마틸다를 집 안에 들이면서 그 생활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 혼자라면 설명할 필요가 없던 일들을 묻고, 도움을 요구하는 사람이다. 르노가 맡는 자리도 달라진다. 마지막 전투에서는 문 안의 사람을 위협하는 쪽이었다면, 여기서는 문을 열고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쪽이다. 같은 큰 몸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존재가 되는지 두 영화는 서로 다른 상황을 준다.

르노 자신은 레옹을 좋아하는 배역으로 꼽으면서 그가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인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유를 마시고 소녀를 돌보는 모습이 살인을 없던 일로 만들지는 않는다. 이 서로 맞지 않는 모습이 한 사람 안에 있기 때문에 레옹은 간단한 설명으로 끝나지 않는다.

배우를 오래 기억하게 하는 것도 이런 차이일 것이다. 브뤼트와 엔조와 레옹을 모두 같은 과묵함으로 묶으면, 르노가 각 영화에서 누구와 어떻게 지내는지가 사라진다. 한 남자가 다가오는 일이 두려울 때도 있고, 그가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게 될 때도 있다. 이름 없는 배역에서 제목이 되기까지, 르노의 몸은 그 사이를 오간다.

지금 이 배우를 다시 보는 이유

레옹의 인상으로 르노를 기억한다면 엔조의 웃음과 브뤼트의 접근을 함께 보아도 좋다. 같은 얼굴이 익숙해지는 즐거움에 더해, 그 얼굴을 믿어도 되는지가 영화마다 달라진다. 네 작품을 꼭 순서대로 볼 필요는 없다. 한 배역을 본 뒤 다른 배역이 낯설어지는 경험이 이 배우를 다시 보게 한다.

감상 포인트

문을 사이에 둔 두 남자
마지막 전투의 브뤼트는 진료소 안으로 들어가려 하고, 레옹은 자기 집으로 찾아온 소녀를 맞는다. 문을 넘으려는 사람과 문을 열어주는 사람의 차이에 주목할 만하다. 비슷하게 위험해 보일 수 있는 몸이 관계에 따라 다른 의미를 얻는다.

엔조가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방식
엔조는 자크의 잠수 기록에만 관심이 있는 경쟁자가 아니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를 대하는 친밀함도 함께 보인다. 크게 드러내는 자신감과 친구를 향한 마음을 같이 볼 때 이 인물의 활기를 승부욕 하나로 줄이지 않을 수 있다.

일을 하지 않을 때의 레옹
우유잔과 식탁이 있는 부엌은 킬러의 생활을 보여준다. 위험한 일을 하는 모습과 혼자 지내는 모습, 마틸다와 함께 있는 모습을 이어보면 그의 익숙함과 서투름이 어디에서 달라지는지 눈에 들어온다.

이름이 없어도 달라지는 자리
브뤼트와 드러머는 모두 고유한 이름 없이 불리지만 주변 사람과 맺는 관계가 다르다. 배역명의 길이보다 그 사람이 나타났을 때 무엇이 시작되는지를 보아도 좋다. 위협과 연주처럼 서로 다른 행동이 먼저 그를 소개한다.

관련 작품

마지막 전투 (1983)
말을 잃은 세계에서 르노가 맡은 남자는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레옹이 누군가를 보호하는 모습에 익숙하다면 이 초기 배역의 접근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같은 배우의 몸이 상대에게 안심을 주는지, 경계를 일으키는지 비교할 수 있다.

그랑블루 감독판 (1988)
르노의 유쾌하고 떠들썩한 면을 만날 수 있는 영화다. 엔조와 자크의 경쟁을 따라가면서, 두 사람이 왜 오랜 친구로 남아 있는지도 함께 보게 된다. 잠수의 고요함과 물 밖에서 어울리는 모습 사이에 이 관계의 매력이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