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돌아다니는 배달원이 여자친구의 집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락다운 213주〉의 니코와 사라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함께 있을 수 없는 연인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만나…
도시를 돌아다니는 배달원이 여자친구의 집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락다운 213주〉의 니코와 사라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함께 있을 수 없는 연인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만나지 못하는 사이라면 거리를 좁혀볼 텐데, 이들에게는 집 앞까지 오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애덤 메이슨 감독이 설정한 무대는 봉쇄가 4년째 이어지는 가상의 2024년 로스앤젤레스다. 바이러스는 변이했고,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은 집에서 끌려나가 격리 구역인 Q존으로 보내진다. KJ 아파가 연기하는 니코는 면역이 있어 밖을 다닐 수 있다. 소피아 카슨이 맡은 사라는 집에 머물러야 한다. 두 사람이 연락을 주고받는 화면과 닫힌 문이 이 연애의 장소가 된다.

니코의 이동은 배달하는 일과 연결돼 있다. 각본을 쓴 사이먼 보이스는 여러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는 필수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각자의 집에 머무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물건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니코를 따라가면 닫힌 집들의 생활이 배달 경로 위에서 이어진다.
여기서 면역은 단지 남들보다 안전한 몸이라는 설정에 그치지 않는다. 밖을 다닐 수 있는 니코는 집에 있는 사람들의 필요를 받아 움직인다. 물건을 기다리는 쪽과 가져다주는 쪽은 같은 문을 사이에 두고도 맡은 일이 다르다. 사라의 집 앞에서는 이 차이가 더 절실해진다. 배달을 하며 건물 사이를 오갈 수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머무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라에게도 니코를 기다리는 것 외의 생활이 있다. 그녀는 할머니와 함께 산다. 혼자 갇힌 사람의 외로움만으로 이 집을 설명하면, 가까이에서 함께 지내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게 된다. 그 집에 감염의 의심이 닿을 때는 사라가 계속 그곳에서 살 수 있는지까지 문제가 된다. 니코는 사라가 끌려가기 전에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윌리엄과 파이퍼 부부는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브래들리 휘트포드와 데미 무어가 연기하는 두 사람은 함께 살지만 관계가 소원하다. 각본가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괴로움뿐 아니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사람과 지내야 하는 곤경에도 관심을 뒀다고 설명했다.
니코와 사라에게는 같은 방에 있는 것이 소원일 수 있지만, 그 조건을 갖췄다고 다정한 생활이 생기지는 않는다. 부부의 집을 연인의 집과 나란히 놓으면 닫힌 문이 서로 다른 일을 한다. 한쪽에서는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을 가로막고, 다른 쪽에서는 이미 멀어진 관계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한다. 같은 봉쇄 아래 사는 인물들을 모두 똑같이 외로운 사람으로 묶기 어려운 이유다.
이 영화를 만들던 사람들에게도 떨어져 일할 방법이 필요했다. 시작은 친구인 배우들과 휴대전화와 노트북으로 영화를 찍어보자는 구상이었다. 제작 규모가 커진 뒤에는 현장 카메라의 영상을 멀리서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작업 방식을 마련했다. 제작자들이 집에서 촬영분을 보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도 각자의 기기로 화면을 확인했다.
첫 촬영 날에는 감독의 휴대전화로 뜻밖의 의견이 도착했다. 두 테이크를 찍었을 무렵, 제작자 애덤 굿맨이 장면 뒤쪽에 크리스마스 조명을 더하자고 연락한 것이다. 메이슨은 그제야 집에 있는 제작자가 자신이 찍는 화면을 동시에 보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회고했다. 촬영장에 오지 않은 사람도 방금 찍은 장면을 두고 구체적인 제안을 할 수 있었다.
완성된 영화에는 전문 카메라로 찍은 영상뿐 아니라 휴대전화와 소셜미디어에서 가져온 영상도 섞였다. 제작진이 밝힌 이 선택을 알고 보면, 화면의 질감이 달라질 때 그것이 어떤 경로로 전해진 영상인지도 궁금해진다. 인물들이 서로 연락하는 작은 화면과, 도시를 보여주는 화면을 함께 보게 되는 영화다.

집은 누구에게나 같은 장소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는 밖을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 집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 함께 살아도 가까워지지 못하는 사람이 서로 얽힌다. 니코의 발걸음을 따라가면서 닫힌 문이 각각 무엇을 지키고 가로막는지 볼 수 있다. 연인의 간절함과 배달원의 이동을 한 인물에게 맡긴 설정이 이 스릴러를 움직인다.
◆ 문 앞에 도착한 뒤 — 니코가 사라와 연락하거나 집 앞에 있을 때 두 사람에게 허용되는 접촉을 살펴보자. 상대의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공간에 머무르는 일은 다르다. 사라에게 가까이 갔다는 사실만으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니코가 갈 수 있는 거리와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어디에서 어긋나는지 관심을 둘 만하다.
◆ 물건을 건네는 사람 — 니코의 배달 경로는 서로 떨어진 인물들을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물건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이며, 그 일을 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어떤 부탁을 하는지 따라가보자. 문이 닫혀 있어도 생활이 저절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바깥을 다닐 수 있는 주인공을 통해 집 안의 생활과 그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 함께 보인다.
◆ 함께 있다는 조건 — 니코와 사라의 관계를 윌리엄과 파이퍼의 생활에 비춰볼 수 있다. 한쪽이 간절히 원하는 조건을 다른 쪽은 이미 갖췄지만, 그 안에서 겪는 곤경은 다르다. 같은 집에 사는지뿐 아니라 상대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어떻게 대하는지 살펴보자. 인물을 한데 묶어 봉쇄의 피해자라고 부를 때는 드러나지 않는 관계의 차이가 있다.
◆ 작은 화면이 보여주는 범위 — 휴대전화로 전해지는 사람의 모습과 주변 공간을 함께 살펴보자. 화면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상대 곁에 있어야 알 수 있는 것은 다르다. 누군가의 얼굴과 목소리를 바로 볼 수 있어도 필요한 순간에 직접 도울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통신이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인물의 불안이 남을 수 있는 까닭을 생각해볼 만하다.
◆ 코르사주 (2022, 마리 크로이처) — 황후 엘리자베트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외모와 공적인 역할에 묶여 있다. 봉쇄된 도시와 궁정은 다른 공간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기 어려운 인물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함께 볼 만하다.
◆ 홈리스 (2020, 임승현) — 아이의 병원비가 급해진 한결은 빈집을 찾는다. 집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과 머물 집이 필요한 사람을 나란히 보면, 같은 문을 앞에 두고도 무엇이 가장 절실한지는 달라진다. 두 영화에서 집이 인물의 선택에 어떤 조건이 되는지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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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