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이 주인공이 된 전쟁영화 | MovieLAB LAB

전쟁이 났는데 아이들의 관심은 노래자랑에 가 있다. 〈작은 연못〉의 대문바위골에서는 어른들이 다투고 장난을 치고, 아이들은 동네 밖에서 열릴 대회를 준비한다. 한국전쟁 초기 노근…

한 마을이 주인공이 된 전쟁영화 | MovieLAB LAB

전쟁이 났는데 아이들의 관심은 노래자랑에 가 있다. 〈작은 연못〉의 대문바위골에서는 어른들이 다투고 장난을 치고, 아이들은 동네 밖에서 열릴 대회를 준비한다. 한국전쟁 초기 노근리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라고 알고 보면 이 떠들썩한 시작이 뜻밖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을 만나자마자 희생자로 기억할 필요는 없다. 이들에게도 이웃과 웃고 다투며 지내던 날들이 있었다.

연출을 맡은 이상우는 오랫동안 연극을 만들며 함께한 배우들과 이 마을을 꾸렸다. 문성근과 강신일, 박광정, 김뢰하처럼 익숙한 얼굴들이 모여 있지만 한 배우의 영웅담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들이 연기하는 사람들은 전쟁을 설명하기 위해 모인 증인들보다, 내일도 서로 얼굴을 보며 살 동네 사람들에 가깝다. 영화는 노근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하기에 앞서, 그곳에서 사라진 생활을 관객이 알아보게 한다.

노래자랑을 기다리던 마을의 피난길

대문바위골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가상의 마을이다. 마을의 어른들은 아이들과 함께 살고, 이웃과 다투기도 하며 생활을 이어간다. 누구 한 사람의 특별한 사연보다 여러 사람이 얽혀 살아가는 모습을 먼저 만난다. 주인공과 그를 도와줄 조연을 구별하기보다 각자가 이 동네에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한 마을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의 재미다.

그중 짱이(신명철)는 어른들과 함께 피난길에 오른다. 아이가 전쟁의 사정을 모두 이해하고 떠나는 것은 아니다. 노래를 연습하던 생활에서 짐을 꾸려 이동하는 생활로 바뀌었을 뿐, 당장 누구를 믿고 어느 길로 가야 안전한지는 어른들도 알지 못한다. 피난을 결정했다고 안전한 목적지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점점 드러난다.

이상우 감독은 처음에는 훨씬 많은 인물을 등장시키려 했다고 말했다. 완성된 영화에서도 한 가족의 운명만으로 마을 전체를 대신하지 않으려는 선택이 보인다. 작은 다툼과 농담을 나누는 시간이 충분히 있어야, 뒤에 같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모습에서도 각자의 얼굴을 찾게 된다. 낯선 군중의 행렬과 조금 전까지 함께 웃던 사람들의 피난은 다르게 다가온다.

피난민들이 지나가는 철교 주변

멀리서 바라본 피난민들의 행렬

노근리 사건은 1950년 7월 충북 영동 일대에서 피난하던 민간인들이 미군의 공격으로 희생된 사건이다. 〈작은 연못〉은 이 역사적 사실을 따라가면서도 공격을 지휘하는 쪽의 전략이나 전투의 승패에 이야기의 중심을 두지 않는다. 피난민들이 어디로 움직이고, 몸을 피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 있는지가 절박해진다.

감독은 카메라를 크게 흔들기보다 거리를 두고 찍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폭력의 한가운데로 화면이 뛰어들어 관객의 흥분을 끌어올리는 방식과는 다르다. 이 거리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은 특별한 전투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피난이다. 노인과 아이, 짐을 든 사람들은 함께 이동해야 한다. 군인이 아닌 사람에게 전쟁이 닥쳤다는 사실을 그 이동의 어려움에서 생각하게 된다.

마을을 떠나기 전에는 너른 공간이 사람들을 만나게 했다. 피난길에서는 그 공간에 몸을 숨길 곳이 마땅치 않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길을 가르쳐줄 수 있었던 일상도 더는 이어지기 어렵다. 아이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과 실제로 지킬 수 있는 힘 사이의 차이가, 전투 장면의 규모보다 오래 남는다.

그 노래를 함께 부를 사람들이 있었다

영화에는 김민기의 노래들이 쓰였다. 노래자랑을 준비하는 아이들을 만나고 나면, 영화 속 노래도 그저 슬픈 배경음악으로만 듣기 어렵다. 함께 부를 사람들과 그 노래를 기다리는 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의 규모를 아는 일과 그 안의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은 함께 필요하다. 〈작은 연못〉이 앞부분의 웃음을 쉽게 줄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느껴진다. 죽음을 알리기 위해 살아 있던 시간을 서둘러 지나가지 않는 영화다. 노근리라는 지명을 떠올릴 때, 이제는 노래자랑을 준비하던 아이와 조금 시끄러웠던 마을도 함께 생각나게 된다.

관련 작품

◆ 〈태일이〉 (2021, 홍준표) — 역사 속 이름으로 익숙한 전태일을 가족을 걱정하고 동료들과 어울리는 청년으로 만난다. 마지막 행동을 알고 있더라도 그 전의 생활을 충분히 바라보는 일이 왜 필요한지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 〈공동경비구역 JSA〉 (2000, 박찬욱) — 남북 병사들이 서로 농담하며 가까워지는 시간을 쌓는다. 큰 역사적 조건을 설명하기 전에 한 사람에게 마음이 가게 한다는 점에서 이어진다. 가까워진 사람들을 그 조건이 어떻게 갈라놓는지 보는 경험 또한 두 영화에 남는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