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같은 만남을 두 번 보는 재미 | MovieLAB LAB

유명한 영화감독이 낯선 도시에서 화가를 만난다. 함께 그림을 보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신다. 제법 가까워진 것 같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영화가 다시 첫 만남으로 돌아…

홍상수, 같은 만남을 두 번 보는 재미 | MovieLAB LAB

유명한 영화감독이 낯선 도시에서 화가를 만난다. 함께 그림을 보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신다. 제법 가까워진 것 같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영화가 다시 첫 만남으로 돌아간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는 정재영과 김민희를 같은 출발점에 세워놓고 말과 행동을 조금씩 바꾼다. 이미 한 번 들은 대화라 사소한 차이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첫 만남에서는 그럴듯했던 말이 두 번째에는 다르게 들린다. 상대를 칭찬한 것인지, 환심을 사려 한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홍상수의 영화 여러 편에 술자리와 우연한 만남이 나오는 것도 이런 즐거움과 관계가 있다. 식탁 위에 놓인 것은 비슷해도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의 처지와 말의 쓰임은 달라진다. 한 번 본 것으로 충분히 안다고 여겼던 사람에게서 아직 못 본 모습을 발견한다.

마루에 나란히 앉은 남녀

술자리의 말보다 오래 남는 버릇

〈생활의 발견〉(2002)의 경수는 춘천에서 자기를 좋아하는 명숙을 만나고, 경주로 향하다 만난 선영에게는 자신이 매달린다. 김상경이 연기하는 이 남자는 사랑을 대하는 기준을 상대에 따라 바꾼다. 예지원의 명숙이 보이는 적극성에는 부담을 느끼면서, 추상미의 선영을 따라갈 때는 자기 마음을 특별하게 여긴다.

두 만남 사이에 경수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쪽과 좋아함을 받는 쪽을 번갈아 맡으면서, 같은 행동을 두고 내리는 평가가 달라졌을 뿐이다. 춘천에서의 경수를 기억하고 있기에 경주에서의 진지함에도 곧장 동의하기 어렵다. 자기 행동을 설명하는 말은 언제나 충분한데, 먼저 본 행동이 그 말을 의심하게 한다.

말만 듣지 않고 몸을 보면 더 재미있다. 경수는 술을 마시며 몸을 흔들고, 당황할 때는 손으로 부채질한다. 이 동작들에는 김상경이 들려준 자기 버릇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갔다. 홍상수는 배우와 나눈 이야기에서 그 재료를 골랐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두 만남에서는 말하기를 주저하는 시간과 상대의 반응까지 비교하게 된다. 두 번째 이야기를 더 나은 연애를 위한 정답처럼 볼 필요는 없다. 같은 사람끼리도 말을 고르는 방식에 따라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이미 본 대목이라 줄거리보다 말을 주고받는 모습에 더 신경이 쓰인다.

누군가를 만나고 다시 일하고 싶어질 때

홍상수의 인물은 영화감독, 배우, 작가인 경우가 많다. 자기 일에 관해 설명하고 평가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술을 논하는 말과 눈앞의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어긋날 때 민망함도 크다. 하지만 최근의 작업까지 이들의 허세를 들추는 영화라고만 부르면, 만남을 통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놓치게 된다.

〈소설가의 영화〉(2022)에서 이혜영이 연기하는 준희는 자기 글쓰기에 확신을 잃은 소설가다. 우연한 만남이 이어진 끝에 김민희의 길수를 만나고, 그와 영화를 만들고 싶어진다. 작품을 잘 설명해주는 이론보다 함께 무언가 해보고 싶은 사람이 먼저 나타난 셈이다. 대화가 이미 완성된 생각을 전달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다음 일을 시작할 계기가 된다.

준희의 직업은 남의 이야기를 쓰는 소설가다. 그런데 정작 자기가 다음에 무엇을 쓸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말과 이야기를 잘 다룰 듯한 사람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에는 누군가를 만나는 우연이 필요하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늘 손해나 민망함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생활의 발견〉과는 다른 기분이 남는다.

두 작품의 대화를 이어 떠올리면 듣는 자세도 달라진다. 경수의 말에서는 자기가 한 행동을 어떻게 변명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준희가 길수에게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할 때에는 그 말이 실제로 무엇을 시작하게 할지 궁금해진다. 같은 감독이 식탁 앞에 사람들을 앉혀놓아도, 관객이 기다리는 것은 매번 다를 수 있다.

카메라 앞에서 정해지는 것들

〈물안에서〉에서는 세 젊은이가 섬에 도착해 영화를 찍으려 한다. 신석호가 연기하는 성모는 자기 돈을 들여 친구들을 불렀지만 아직 무엇을 찍을지 정하지 못했다. 완성된 시나리오대로 현장을 움직이는 익숙한 제작의 순서가 뒤집힌다. 이미 함께 있는 사람과 장소에서 찍고 싶은 것을 찾아야 한다.

〈물안에서〉의 흐릿한 화면은 이 작품을 가장 먼저 기억하게 하는 특징이다. 홍상수는 첫 장면을 준비하며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다 이런 화면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그 자리에서 내린 선택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촬영이 시작될 때 결정된 화면이 이후의 장면들을 찍는 방식까지 바꿨다.

흐릿한 얼굴에서는 평소처럼 표정을 읽기 어렵다. 대신 사람 사이의 거리와 몸이 움직이는 방향, 화면에 들리는 목소리를 더 찾게 된다. 배우의 얼굴만 보고 마음을 빨리 알아내려던 습관이 잠깐 멈춘다. 얼굴이 흐려지자 평소에 덜 보던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해변에서 삼각대 위 카메라를 다루는 사람들

다 안다고 생각한 뒤에 들리는 말

홍상수의 영화를 계속 본다는 것은 반복되는 버릇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버릇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익숙한 배우의 얼굴을 알아본 다음에는, 이번 인물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야 한다. 이번에는 누구의 말을 듣고 있는지, 그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어떤 시간이 필요했는지에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로 돌아가면 두 번째 이야기는 인물에게만 주어진 기회가 아니다. 관객도 같은 얼굴을 다시 만난다. 먼저 본 대화를 기억하고 있으므로 이번에는 무엇이 달라질지 기다리게 된다. 그 기다림 때문에 전에는 흘려들었던 말투 하나가 크게 들릴 수도 있다.

두 번의 차이를 모두 맞혀야 하는 시험처럼 볼 필요는 없다. 처음에 마음에 들었던 사람이 이번에는 왜 거슬리는지,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말이 왜 다정하게 들리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상대는 같은 사람인데 대화를 듣는 내 마음은 이미 조금 달라져 있다. 홍상수의 반복은 관객에게도 지난번과 다르게 볼 시간을 준다.

지금 이 감독의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대화의 뜻을 빨리 파악하려고 하면 사람의 말도 요점만 남기게 된다. 홍상수의 영화에서는 요점에 도착하기 전의 머뭇거림과 말이 끝난 뒤의 표정도 볼 시간이 있다. 칭찬을 받고도 편안해지지 않는 사람, 진심이라고 강조할수록 수상해지는 말 같은 것을 긴 설명 없이 알아차리게 된다.

〈생활의 발견〉에서 웃었던 버릇을 기억하며 〈소설가의 영화〉를 보면, 익숙한 대화가 다른 방향으로 이어지는 즐거움도 있다. 만남이 누군가의 허세를 드러낼 때도 있고, 그만두었던 일을 다시 해보고 싶게 만들 때도 있다. 비슷한 사람들의 비슷한 하루라는 첫인상에서 조금 더 머물 이유다.

감상 포인트

두 번째 장면에 남은 첫 번째 기억 — 비슷한 만남이 되풀이되면 달라진 부분 하나를 골라보자. 대사뿐 아니라 말하는 순서와 상대가 반응하는 시간도 좋다. 그 차이 때문에 사람에 대한 첫인상이 달라졌다면, 영화의 구성과 자신의 기억이 함께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말과 몸이 어긋나는 순간 — 〈생활의 발견〉에서 경수의 자기 설명과 작은 몸짓을 함께 살펴보자. 자신 있게 말하는 내용과 당황한 몸이 다른 인상을 줄 수 있다. 연기에 더해진 버릇을 따라가면 인물의 성격을 한 단어로 규정하기보다 그때그때의 불편함을 볼 수 있다.

누구에게 말할 기회가 있는가 — 식탁이나 카페 장면에서 말을 오래 하는 사람과 주로 듣는 사람을 구별해보자. 다음 만남에서 그 순서가 바뀌는지도 살필 만하다. 대화의 내용뿐 아니라 말할 시간을 누가 차지하는지가 관계의 친밀함과 불균형을 함께 드러낸다.

선명하지 않은 화면에서 보이는 것 — 〈물안에서〉의 흐린 화면에서는 평소처럼 얼굴 표정만 좇기 어렵다. 대신 사람 사이의 간격, 움직임과 목소리에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지 살펴보자. 모든 장면의 상징을 맞히려 하지 않아도 보는 방식이 달라지는 경험은 남는다.

관련 작품

◆ 〈생활의 발견〉 — 두 도시에서 사랑하는 쪽과 사랑받는 쪽을 번갈아 맡는 남자를 따라간다. 두 번째 만남을 본 뒤 첫 번째 행동을 떠올리면, 경수의 진심을 대하는 자신의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

◆ 〈소설가의 영화〉 —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영화를 만들고 싶어지는 소설가를 만난다. 같은 대화의 형식이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변화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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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