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의 주인공들은 왜 웃기다가도 걱정스러울까 | MovieLAB LAB

한강에 괴물이 나타났는데, 딸을 구하러 가야 할 사람은 매점에서 일하던 아빠다. 〈괴물〉의 강두가 그동안 살아온 모습에서는 이런 위기를 헤쳐나갈 능력을 찾기 어렵다. 평소에 좀 …

봉준호의 주인공들은 왜 웃기다가도 걱정스러울까 | MovieLAB LAB

한강에 괴물이 나타났는데, 딸을 구하러 가야 할 사람은 매점에서 일하던 아빠다. 〈괴물〉의 강두가 그동안 살아온 모습에서는 이런 위기를 헤쳐나갈 능력을 찾기 어렵다. 평소에 좀 못 미더웠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가장 잘해야 하는 일을 떠맡는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이 아빠가 걱정스럽다. 딸이 돌아오기만을 바라면서도,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를 때마다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조마조마하다.

봉준호는 인물을 좋아할 이유를 말끔하게 정리해주지 않는다. 둔한 사람은 둔한 채로, 서투른 사람은 서투른 채로 큰일을 겪는다. 웃음이 났던 버릇도 위기가 닥쳤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같은 행동을 보고 웃다가 걱정하게 되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사람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있다.

주인공이 되기 전에도 살고 있던 사람

그런 사람은 첫 장편 〈플란다스의 개〉부터 있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현남은 자기 일에 대단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다. 축 늘어져 있던 그는 사라진 개를 찾는 일에는 이상할 만큼 열심이다. 사람이 늘 같은 기운으로 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배두나의 몸이 보여준다. 평소에 무심해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막상 일이 생겼을 때도 무심하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

같은 아파트의 시간강사 윤주는 개 짖는 소리를 견디지 못한다. 교수 자리를 얻고 싶은 그에게 개는 가뜩이나 꼬인 하루를 더 망치는 존재다. 현남에게는 찾아줘야 할 개가 윤주에게는 없어졌으면 하는 소음이다. 두 사람을 번갈아 따라가는 동안 작은 아파트 사건에도 좀처럼 하나의 답이 나오지 않는다. 누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인지부터 매기고 보면 현남이 굳이 뛰어다니는 이유를 놓치게 된다.

관리사무소 직원이 주인공이 되면 아파트도 달라 보인다. 집을 사거나 팔 때 따져보는 입지와 평수 대신, 민원이 들어오고 누군가는 그 일을 처리해야 하는 하루가 있다. 현남은 그 안에서 지루해하다가도 누군가의 개를 찾는 일에 힘을 쓴다. 우리에게는 별일 없이 지나간 날이 누군가에게는 한 번쯤 활약해볼 수 있었던 날일지 모른다. 봉준호는 그 가능성을 장난스럽게 건드린다.

이런 인물에게 거창한 사연을 보태지 않는 것도 좋다. 왜 저렇게 사는지 모두 설명받지 않아도, 늘어진 자세와 갑자기 빨라진 발걸음 사이에서 성격이 보인다. 관객이 그 사람에게 정드는 시간은 사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흐른다. 나중에 큰일이 닥치면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주인공이라는 역할보다, 조금 전까지 빈둥거리던 바로 그 사람이다.

개를 안고 아파트 복도를 달리는 현남

우스운 가족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을 때

〈괴물〉은 그 애착을 훨씬 위태로운 곳으로 데려간다. 강두는 딸이 살아 있다는 전화를 받지만, 그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구조대가 움직이지는 않는다.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으로 통제받는 처지라 직접 찾아나서는 일도 쉽지 않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 그 일을 바로잡을 권한이 없다. 가족은 도움을 기다리다가 자기들끼리 움직이려 한다.

준비가 충분해서 나서는 사람들이 아니므로 자꾸 손발이 어긋난다. 그런데 그 서투름은 영화가 잠깐 쉬어가려고 넣은 농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잘못 움직이면 누군가 다칠 수 있고, 시간을 허비하면 딸을 찾을 기회가 줄어든다. 가족을 보며 웃었던 기억은 그대로인데 웃음의 여유만 없어진다. 코미디와 공포 사이에 선을 긋기 어려운 까닭이다.

송강호의 강두는 딸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갑자기 영리해지지 않는다. 영웅다운 말이나 자세를 얻기까지 기다릴 여유도 없다. 그 부족함을 안고 움직일 때, 관객 역시 완벽한 사람을 응원하는 편안함을 누리지 못한다. 제발 이번에는 잘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보게 된다. 봉준호는 한 사람에게 정을 붙이는 일이 그의 능력을 보증하는 일과 다르다는 것을 안다.

가족에게 더 유능해지라고 요구하기 전에 돌아볼 곳도 있다. 아이를 찾는 일을 왜 이 사람들끼리 해결해야 하는가. 가족의 실수는 눈앞에서 벌어져 쉽게 보이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쪽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 일은 절차와 설명 속에 가려진다. 영화가 강두에게 오래 머물수록 그 바깥의 무책임도 구체적으로 보인다. 괴물이 크고 가족이 작다는 차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곤란이다.

그렇다고 서툰 사람이 늘 무고한 것은 아니다

봉준호는 못난 사람에게 정을 붙였다는 이유로 그를 끝까지 감싸지도 않는다. 〈살인의 추억〉의 형사들은 범인을 잡고 싶어 하고, 일이 풀리지 않으면 초조해진다. 서로 부딪히는 모습에는 웃긴 데가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용의자를 불러들여 다그치고 힘을 행사할 권한이 있다.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 강두와는 사정이 다르다.

두 영화에 모두 송강호가 나온다는 사실이 이 차이를 더 잘 보이게 한다. 익숙한 얼굴에 웃다 보면 관객은 그 사람이 벌이는 일에도 익숙해지기 쉽다. 수사가 답답하다는 심정에 동의하는 동안, 누가 그 답답함을 대신 감당하는지는 잊을 수 있다. 이 형사들을 가까이 보는 일에는 자기 편의 무례를 대수롭지 않게 넘길 위험도 있다.

그래서 봉준호의 인물을 약자라는 말 하나로 묶으면 재미있는 부분이 사라진다. 도움을 받을 길이 없는 가족과 남을 조사할 권한이 있는 형사는 서로 다른 책임을 진다. 같은 서투름도 누가 저지르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는다. 영화가 웃음을 멈추게 할 때 우리는 그제야, 방금 무엇을 보고 웃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총을 들고 앞을 바라보는 희봉과 두 아들

같은 거실에서도 마음 놓을 사람은 따로 있다

〈기생충〉의 기우는 반지하 집을 나와 과외 면접을 보러 간다. 그가 들어간 집에서는 누군가가 쉬고, 다른 누군가는 일한다. 같은 소파가 보여도 편히 앉을 수 있는 사람과 허락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이 나뉜다. 부잣집이 좋다는 감상보다 먼저,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면 무엇을 알아야 할지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일을 얻기 위해 자기 모습을 잘 꾸미려는 사람을 보는 것은 재미있다. 얼마나 능숙하게 해낼지 기대하다가도, 조금만 어긋나면 들킬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한다. 웃음과 불안이 바뀌는 데 큰 사건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나 예고 없이 가까워지는 발소리만으로도 방 안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집을 쓰는 권한이 다르다는 사실이 몸의 긴장으로 전해진다.

봉준호와 미술감독 이하준은 이 관계를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이 식탁 쪽에서 보이는지 같은 조건까지 세트 설계에 들어갔다. 사람이 서로를 볼 수 있는 자리와 피할 수 있는 자리가 정해져 있어야 배우의 움직임도 관객의 긴장을 만들 수 있다. 단순히 비싼 집을 보여주는 일로는 얻을 수 없는 효과다.

이런 영화에서는 상징을 찾아내는 눈만큼 생활에 익숙한 눈도 쓸모가 있다. 남의 집에 처음 들어갔을 때 어디에 서야 할지 모르던 순간, 일을 맡긴 사람의 기분을 살피던 순간을 안다면 기우의 조심스러움도 알아볼 수 있다. 계급이라는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아도 그 집에서 누가 편하고 누가 불편한지는 보인다. 봉준호의 정교함은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그런 작은 감각에 기대고 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한강 매점, 부잣집 거실은 규모도 모양도 다르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세상을 대표하려고 나오지 않는다. 자기 일자리가 필요하고, 아이를 찾아야 하고, 오늘 들어온 민원을 넘기고 싶을 뿐이다. 봉준호는 그 사정을 충분히 구체적으로 만든 뒤에야 더 큰 문제를 보게 한다. 영화가 끝나고 남는 것도 사회를 설명하는 문장만은 아니다. 잘됐으면 했던 얼굴과 웃고 나서 마음에 걸린 행동이 함께 남는다.

지금 이 감독의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괴물〉을 다시 보면 괴물이 나타나기 전의 강두도 궁금해진다. 무엇이 그를 둔해 보이게 했고, 언제부터 그 둔함이 걱정으로 바뀌었는지 따라갈 수 있다. 가족의 행동을 잘 아는 관객에게도 남는 질문이다. 사건의 결과를 기억하는 것과, 그 사람에게 정이 붙던 과정을 기억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작품에서도 마음이 기우는 순간을 찾아볼 만하다. 현남이 대수롭지 않던 일에 뛰어들 때, 형사들의 농담이 갑자기 불편해질 때, 취업의 기쁨 속에 긴장이 섞일 때가 있다. 봉준호는 우리가 한 번 정한 감정을 오래 편하게 유지하도록 두지 않는다. 익숙한 영화를 다시 볼수록 그때의 웃음에 어떤 기대와 무심함이 함께 있었는지 조금 더 알게 된다.

감상 포인트

큰일이 생기기 전의 몸 — 〈플란다스의 개〉의 현남과 〈괴물〉의 강두가 평소에 어떻게 서고 움직이는지 살펴보자. 사건이 닥친 뒤에도 남아 있는 버릇이 있다. 위기에 맞춰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대신 평소의 몸으로 버텨야 한다는 점이, 이들을 걱정하게 만드는 이유인지 생각해볼 만하다.

웃음이 끝난 뒤의 사정 — 우스운 실수나 농담이 나온 뒤 그 행동을 감당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따라가보자. 형사의 실수와 매점 주인의 실수는 같은 무게로 남지 않는다. 웃겼던 장면을 혼자 떼어 기억할 때와 앞뒤 상황 속에서 다시 볼 때 감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누가 말을 들어주는가 — 〈괴물〉에서 강두가 딸에 관해 아는 것을 말할 때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자. 말이 사실인지와 말하는 사람이 믿을 만해 보이는지는 서로 다른 문제다. 가족이 어떤 도움을 구하고 어디에서 막히는지를 따라가면, 이들의 행동을 답답함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거실에서 서 있는 자리 — 〈기생충〉의 집을 볼 때 가구와 장식에 더해 사람 사이의 거리도 살펴보자. 누구는 기다리고 누구는 마음대로 움직이는지, 상대가 다가오면 누가 자세를 바꾸는지가 보인다. 공간에 붙은 의미를 설명하기 전에 그곳을 쓰는 사람의 불편함부터 알아보는 관람법이다.

관련 작품

〈괴물〉 — 못 미더워 보이던 가족을 걱정하게 되는 과정을 따라가볼 작품. 인물의 서투름을 웃음과 위험 양쪽으로 쓰는 봉준호의 연출이 가장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플란다스의 개〉 — 관리사무소의 하루와 사라진 개를 찾는 일에서 뜻밖의 주인공이 나타난다. 이후의 큰 사건들보다 먼저, 봉준호가 어떤 사람에게 시간을 내주었는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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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