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였던 이창동은 〈버닝〉의 주인공을 작가 지망생으로 바꿨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에서는 이미 작가로 활동하던 남자다. 영화 속 종수(유아인)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소설가였던 이창동은 〈버닝〉의 주인공을 작가 지망생으로 바꿨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에서는 이미 작가로 활동하던 남자다. 영화 속 종수(유아인)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무엇을 쓸 거냐는 물음에는 답하기 어려워한다. 자신이 겪는 일부터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그보다 앞선 〈시〉에도 처음 쓰려는 사람이 있었다. 동네 문화센터에서 시를 배우는 미자다. 두 사람은 나이도 처지도 다르지만, 아직 자기 작품이 없다는 점은 같다. 소설과 영화를 만들어온 이창동은 왜 첫 작품을 앞둔 사람들에게 거듭 돌아갔을까.
이창동은 두 인물에게 첫 작품이라는 조건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이미 작품을 써온 사람에게는 익숙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 반면 처음 쓰는 사람은 시란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가 쓸 만한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종수를 아직 작가가 아닌 청년으로 바꾼 것도, 그가 세상을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윤정희가 연기하는 미자에게는 시를 배우는 일 자체가 즐겁다. 꽃과 나무에서 아름다운 것을 찾아보고, 늘 보던 사물 앞에 멈춰 선다. 그런데 시 수업을 듣던 시기에 함께 사는 손자가 성폭력 사건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름다움을 찾아다니는 일과 가족이 저지른 일을 감당하는 일이 한 사람의 생활에 겹친다.
이제 미자가 시를 쓰는 모습을 편안하게 바라보기는 어렵다. 꽃이 아름답다는 감탄은 여전히 가능하지만, 그 감탄만으로는 피해를 입은 아이에 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시를 쓰려는 미자가 그 아이의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마음에 걸린다. 처음에는 시 수업이 미자의 생활에 작은 즐거움을 더해주는 듯했다. 사건을 알고 나면 그가 어떤 시를 쓸 수 있을지 기다리는 마음에도 걱정이 섞인다.
유아인이 연기하는 종수는 벤(스티븐 연)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모른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넓은 집과 비싼 차를 가진 남자의 생활을 보면서도, 그 부유함을 설명할 수 없다. 해미(전종서)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벤을 향한 질투도 끼어든다. 소설가 지망생이라는 직업 소개만으로 종수가 다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원작의 작가를 지망생으로 바꾼 선택은 여기서 실감이 난다. 종수는 자신이 겪는 일을 차분히 정리해 들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무엇이 일어나는지 몰라 답답해하고, 의심하는 상대를 직접 따라다닌다. 관객은 그가 보고 들은 것을 따라가면서도 그 판단이 맞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과 남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자신감 사이에는 아직 거리가 있다.
이창동은 벤을 연기하는 스티븐 연과 작업할 때도, 벤이 누구이며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배우들에게 평소보다 더 많은 자유를 주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화면 속 벤은 상대를 위협하지 않고도 종수를 불편하게 만든다. 여유로운 말투와 태도만으로는 친절한 사람인지, 종수의 사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 인물을 두고 감독과 배우가 고민했다는 말을 떠올리면, 그 애매함을 유지하는 연기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짐작하게 된다.

이창동 자신도 다음에 무엇을 써야 할지 오래 망설였다. 〈시〉와 〈버닝〉 사이에는 8년이 있다. 그는 그동안 시나리오 세 편을 완성했지만 영화로 만들 확신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공백 동안 이야기를 준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준비한 이야기를 왜 꼭 영화로 만들어야 하는지가 남아 있었다.
그가 밝혔듯, 그 시나리오들에는 청년의 분노와 무력감이라는 공통된 관심이 있었다. 세상에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은 있는데 무엇 때문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상태다. 종수의 막막함에도 그런 사정이 있다. 벤과 자신의 생활이 왜 그렇게 다른지, 그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다. 이창동은 오래 생각해온 문제를 모든 답을 아는 인물에게 맡기지 않았다. 그 차이를 몸소 겪으며 당황하는 청년을 통해 영화로 옮겼다.
소설을 쓰게 된 동기를 돌아보는 이창동의 말은 이 망설임과 함께 읽을 만하다. 어린 시절 자주 이사하며 혼자 지냈던 그는, 모르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어 글을 썼다고 했다. 소설을 쓸 때는 자신의 글을 읽고 감정을 나눌 한 사람을 떠올렸다고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영화를 만들면서도 그는 자신을 종수에 견주었다. 어떤 이야기를 써야 사람들에게 가닿을 수 있을지 여전히 묻는다는 것이다.
작품을 완성해본 경험이 쌓여도 다음 이야기를 고르는 일은 쉬워지지 않았던 셈이다. 미자와 종수의 서툶을 보면서 감독의 창작 고민까지 떠올리게 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두 사람을 이창동의 분신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미자는 손자가 저지른 일을 감당해야 하고, 종수는 자신이 겪는 일을 이해하려 애쓴다.

이창동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지 오래 망설였다는 말을 알고 나면, 미자가 시를 쓰려고 애쓰는 시간이나 종수가 소설 이야기를 하다 막히는 순간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무엇을 쓸지 몰라 멈칫하는 순간이 감독에게도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미자의 첫 시를 기다리게 되는 데에는 잘 썼으면 하는 마음뿐 아니라, 알게 된 고통을 어떻게든 말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이창동은 이들이 쓸 말을 찾으며 애쓰는 시간을 오래 보여준다. 덕분에 아직 쓰지 못한 사람에게도 마음을 쓰게 된다.
◆ 〈시〉 (2010, 이창동) — 처음 시를 쓰려는 미자가 아름다움을 찾는 즐거움과 가족이 저지른 일의 고통을 함께 겪는다. 시를 완성할 수 있을지 기다리며 한 사람의 생활을 들여다보게 된다.
◆ 〈버닝〉 (2018, 이창동) — 아직 쓸 이야기를 정하지 못한 종수가 해미와 벤을 만나며 혼란을 겪는다. 주인공의 직업을 바꾼 각색이 영화의 불확실함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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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