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 바르다는 왜 자기 손을 찍었을까 | MovieLAB LAB

버려진 감자를 줍는 사람들을 찍던 영화에 감독 자신의 손이 나온다. 한 손으로 작은 카메라를 들고 다른 손의 주름을 찍는다.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의 아녜스 바르다는 남의 생…

아녜스 바르다는 왜 자기 손을 찍었을까 | MovieLAB LAB

버려진 감자를 줍는 사람들을 찍던 영화에 감독 자신의 손이 나온다. 한 손으로 작은 카메라를 들고 다른 손의 주름을 찍는다.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의 아녜스 바르다는 남의 생활을 보러 갔다가, 늙어가는 자기 몸도 영화에 들여놓았다. 감자를 버리는 사회를 이야기하는 데 감독의 손까지 필요했을까. 얼핏 옆길로 샌 듯한 이 장면을 따라가면 바르다가 사람을 찍어온 방식이 보인다. 카메라 앞의 누군가를 설명하다가도, 그를 보고 있는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돌아본다.

바르다의 영화에는 파리의 가수도, 길을 떠도는 여자도, 동네 가게 주인도 나온다. 다정한 만남을 찍는가 하면, 가까이 다가가도 끝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을 남겨두기도 한다. 사진으로 시작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전시장을 오간 경력에서 흥미로운 것은 작품 수보다 이런 차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말을 걸고, 어떤 사람은 멀찍이 따라가며, 어떤 기억은 배우를 불러 다시 만들어야 했다.

부부의 고민 옆에는 어촌의 생활이 있었다

영화감독이 되기 전 바르다는 사진가였다. 프랑스의 연극 무대를 찍던 그가 1954년 촬영한 첫 장편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은 두 종류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는다. 한 부부가 자기들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동안, 어촌 주민들은 고기를 잡고 먹고살 문제를 겪는다. 부부 역은 배우들이 맡았고, 영화에는 그곳에서 살아온 주민들도 참여했다.

보통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마을이 이 작품에서는 자기 몫의 시간을 갖는다. 부부에게는 사랑을 계속할지의 문제가 절박하지만, 동네 사람들의 하루가 그 고민을 설명하기 위해 돌아가지는 않는다. 바르다는 두 이야기를 번갈아 보여주며 서로 다른 생활을 한 영화에 남겼다. 개인에게 몰두하면서도 그 주변의 세계를 지우지 않는 구성이 첫 작품부터 있었다.

그 출발을 알아두면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의 파리도 달라 보인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클레오에게는 시간이 더디게 가지만, 거리는 그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카페 손님들은 자기 대화를 하고, 행인들은 저마다 갈 곳으로 간다. 영화는 가수의 불안을 따라가면서 그가 만나는 도시에도 관심을 둔다. 아름다운 여성을 보기 위해 모인 시선들 사이에서, 그 여성 자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조금씩 물어가는 것이다.

차 안에 나란히 앉은 두 여자

여성의 삶을 한 가지 모범으로 만들지 않기

〈행복〉(1965)에서는 화사한 색과 다정한 가족의 모습이 오히려 의심을 부른다. 가정을 둔 남자가 다른 여성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행복이 더 커졌다고 여긴다. 그 말을 듣는 여성에게도 같은 계산이 가능할까. 바르다는 화면의 아름다움과 남자가 말하는 행복을 가까이 붙여놓는다. 그 덕분에 관객은 보기 좋은 풍경을 즐기다가, 그 안에서 누구의 사정이 빠져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와 달리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1977)는 여성들의 입장을 훨씬 직접적으로 들려준다. 서로 다른 삶을 사는 두 친구에게 출산과 피임, 임신중지의 문제는 생활의 구체적인 선택이다. 바르다는 삽입곡의 가사를 직접 썼다. 서로 다른 반응을 충분히 그리기 위해 극영화를 택했다고 바르다는 설명했다. 같은 문제를 겪는다고 똑같이 행동할 필요는 없었다.

〈방랑자〉(1985)의 모나는 여기서도 한발 비켜선다. 관객이 쉽게 응원하도록 행동하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를 만났던 사람들의 말은 모나에 대한 이해를 보태면서 동시에 말하는 사람의 기준을 드러낸다. 자유롭게 사는 여성을 그렸다는 설명만으로 이 영화가 편안해지지 않는 이유다. 상대를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에는,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정리하고 싶다는 욕심도 섞여 있다.

세 작품을 함께 보면 바르다의 여성 인물들이 서로를 닮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중요해진다. 자신의 몸을 결정할 권리를 노래하는 영화와, 이해하기 어려운 여자를 오래 따라가는 영화가 같은 감독에게서 나왔다. 여성의 삶을 다룬다는 것은 올바른 선택의 예시를 만드는 일과 달랐다.

물건을 사던 가게에서 사람을 만나다

〈다게레오타입〉(1975)의 촬영지는 집 가까이에 있었다. 바르다가 살던 다게르 거리의 작은 상점과 상인들을 찍은 다큐멘터리다. 영화의 재료를 찾으러 반드시 먼 곳에 갈 필요는 없었다. 늘 지나치던 가게에도 한 사람의 직업과 기억, 함께 살아온 시간이 있었다. 평소에는 물건을 사는 데 필요한 말만 나눴을 사이를 영화가 조금 더 오래 붙잡는다.

상인을 찍을 때는 손님으로 드나들 때와 다른 시간이 필요하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간판만 읽어도 알 수 있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잠깐의 거래로 알기 어렵다. 바르다는 늘 보던 얼굴 앞에서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데 흥미를 느낀다. 작은 가게를 큰 사회의 축소판으로 서둘러 설명하기 전에, 가게 주인이 들려줄 이야기를 듣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어린 시절을 다시 찍다

〈낭트의 자코〉(1991)는 남편이자 영화감독인 자크 드미의 어린 시절을 재현한 영화다. 병을 앓던 드미가 적은 유년의 기억이 작업의 출발점이었다. 바르다는 어린 배우들을 통해 과거를 만들고, 드미의 영화 장면을 그 기억 사이에 놓는다. 동시에 당시의 드미를 카메라에 담는다.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몸과 오랜 세월을 살아온 몸이 한 영화 안에 있다.

이때 바르다는 사랑하는 감독이 어떤 명작들을 남겼는지 소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던 아이에게 시간을 돌려준다. 완성된 작품만 보고는 알기 어려운 욕망과 손의 수고를 어린 시절의 놀이에서 찾아보는 것이다. 전기영화의 인물과 그를 기억하는 사람의 애정이 떨어져 있지 않다.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2008)에서는 자신이 기억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인생을 말하는 장소는 책상 앞이 아니라 여러 해변이다. 어린 시절과 가족, 일했던 장소가 영화의 순서를 만든다. 옛 사진과 영화의 일부를 꺼내 쓰는 한편, 지금의 사람들을 불러 새로운 장면도 촬영했다. 자서전이면서 또 한 편의 제작 현장이 된 셈이다. 기억을 정확한 연표로만 옮길 수 없을 때, 바르다는 풍경과 사람을 다시 배치해 무엇이 마음에 남았는지 보여준다.

해변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있는 아녜스 바르다

카메라가 작아지자 감독의 몸도 들어왔다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0)는 여러 촬영자가 함께 만든 영화다. 그 안에서 바르다는 작은 디지털카메라를 직접 들기도 했다. 손에 들고 자기 몸을 찍을 수 있는 도구가 생기자, 바르다는 늙은 손과 머리카락도 촬영했다. 남에게 다가가는 영화에 자기 노화가 끼어든다. 버려지는 사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정작 자신의 변화는 화면 밖에 감춰두지 않은 것이다.

카메라에 담긴 감자는 전시장으로도 갔다. 바르다는 싹이 트고 주름진 감자를 영상 설치로 보여주었고, 자신의 영화 필름을 재료로 작은 집도 만들었다. 화면 안에서 보던 것을 이번에는 관객이 몸을 움직여 돌아본다. 영화를 담았던 필름이 벽이 되면 손때 묻은 작업 재료도 새로운 구경거리가 된다. 남들이 버린 사물에서 영화를 찾던 사람이 자기 영화에서도 다시 쓸 것을 찾았다.

사진가 JR과 공동 연출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서는 만난 사람들의 초상을 크게 출력해 건물과 벽에 붙인다. 사진의 주인공도 거대해진 자기 얼굴을 바라볼 수 있다. 감독만 이미지를 고르고 감상하는 관계가 아니다. 남의 얼굴을 찍어 만든 결과를 그 사람의 생활 속으로 가져와 함께 본다. 바르다가 오랫동안 해온 촬영과 만남이 길 위에서 새로운 모양을 얻는다.

첫 장편에서 부부의 대화 옆에 어촌의 하루를 놓았던 사람이, 노년에는 다른 사람의 초상 옆에 자기 손을 놓았다. 바르다의 영화가 친근한 까닭을 성격이 좋았다는 말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누구를 크게 보여줄지, 누구의 말을 더 들을지, 자신은 어디에 들어갈지를 작품마다 다시 정했다. 관객이 바르다를 알아갈수록 함께 알게 되는 낯선 얼굴들이 많아진다.

지금 이 감독의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바르다에게 들어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극영화가 익숙하다면 〈클레오〉에서 시작해 〈행복〉과 〈방랑자〉의 차이를 볼 수 있다. 감독이 직접 사람을 만나는 모습이 궁금하다면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에서 출발해도 좋다. 어느 쪽을 먼저 보든, 다음 작품에서 예상과 다른 바르다를 만나게 된다는 점이 이 경력을 따라가는 즐거움이다.

몇 편을 본 뒤에는 〈낭트의 자코〉와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을 나란히 놓아볼 만하다. 남의 어린 시절을 재현하는 일과 자기 기억을 영화로 만드는 일이 어떻게 다른지 보인다. 감독의 삶을 미리 공부해야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순서는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왜 그 사람이 이런 장면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지는 쪽에 가깝다.

감상 포인트

주인공 곁에서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 — 〈클레오〉의 카페와 거리에서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자. 그들의 하루는 주인공의 불안과 같은 속도로 흘러가지 않는다. 중심인물과 주변의 시간을 함께 두는 바르다의 구성이 눈에 들어온다.

여성 인물을 설명하는 서로 다른 목소리 —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의 노래와 〈방랑자〉에서 모나를 말하는 사람들을 비교해보자. 자기 뜻을 직접 들려주는 경우와 남의 기억을 통해 알려지는 경우에, 우리가 인물을 이해하는 방법도 달라진다.

재현한 과거와 실제 인물의 몸 — 〈낭트의 자코〉에서 유년의 재현 장면과 드미를 직접 촬영한 이미지가 어떤 간격으로 놓이는지 살펴보자.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유명 감독의 이력 소개를 넘어, 지금 그를 기억하려는 사람의 영화가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감독이 화면에 들어오는 방식 —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에서 바르다 자신을 담는 순간과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순간을 함께 보자. 〈해변〉의 본격적인 자기 이야기와도 비교할 수 있다. 감독의 출연이 늘 같은 종류의 자기 고백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관련 작품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1962, 아녜스 바르다) — 한 사람의 불안을 따라가면서 도시의 생활도 함께 남기는 극영화. 바르다의 초기 작업에서 인물과 주변을 함께 보는 방법을 접할 수 있다.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2000, 아녜스 바르다) — 작은 카메라로 낯선 사람과 자기 몸을 오가는 다큐멘터리. 앞선 극영화와 나란히 보면 관심의 연속성과 촬영 방식의 변화를 함께 읽을 수 있다.

──────────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