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찾아오자 쉬린은 여자 친구를 룸메이트라고 소개한다. 같은 침대를 쓰는 이유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고 둘러댄다. 유럽에서는 이런 식으로 산다는 말까지 보탠다. 〈이별에 대처…
부모가 찾아오자 쉬린은 여자 친구를 룸메이트라고 소개한다. 같은 침대를 쓰는 이유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고 둘러댄다. 유럽에서는 이런 식으로 산다는 말까지 보탠다.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의 이 장면은 설명할수록 수상해지는 변명을 지켜보게 한다. 쉬린은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관객에게는 두 사람의 관계를 숨기는 수고가 고스란히 보인다.
이 민망한 주인공을 직접 연기한 사람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데지레 아카반이다. 그는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을 그리면서도 그들이 하는 말을 곱게 다듬어 주지 않는다. 허세를 부리고, 눈치를 보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실수도 남겨둔다. 그 때문에 인물을 응원하다가도 편들기 어려운 순간이 온다. 아카반의 코미디는 바로 그런 자리를 잘 찾아낸다.
쉬린은 이란계 미국인 가족에게 자신의 연애를 숨기는 양성애자다. 여자 친구와 헤어진 뒤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부모 앞에서는 별일 없는 딸처럼 지내려 한다. 상황에 맞는 말을 찾느라 바쁜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차분히 설명할 여유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누구에게 어느 만큼 말할지 정하는 것부터 피곤한 일이다.
아카반은 화면에서 자신을 닮은 사람을 찾기 어려웠던 경험을 말한 적이 있다. 피부색이나 성적 지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과 비슷한 유머 감각으로 세상을 보는 인물을 화면에서 만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가 직접 연기하는 주인공의 곤란함은 이 지점에서 흥미롭다. 남들에게 이해받고 싶어 하면서도, 이해받기 좋은 태도로만 행동하지는 않는다.
룸메이트라는 말에 당황하는 것은 관객만이 아니다. 연인은 부모 앞에서 아무 일 없는 얼굴을 해야 한다. 쉬린에게는 당장 이 자리를 넘기는 말이지만, 상대에게는 자신들의 관계를 지우는 말이다. 변명이 우스울수록 그 말에 동의해 줘야 하는 사람의 처지도 선명해진다. 웃음이 누구의 편인지 쉽게 정해지지 않는 이유다.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에서는 말을 고르는 일이 훨씬 절박해진다. 소녀 카메론은 여자 친구와의 관계가 알려진 뒤 성적 지향을 바꾸려는 종교 시설에 보내진다. 여기서는 자기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보다 지도자들이 받아들일 설명을 내놓는 일이 중요하다. 어른들은 이미 무엇이 잘못됐는지 정해 두고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카반은 이 영화의 편집 과정에서 도입을 크게 줄였다. 처음에는 카메론이 시설에 도착하기까지 약 35분이 걸렸다. 가족과 연애를 먼저 차근차근 보여준 것이다. 최종본에서는 그 앞부분을 짧게 압축해 시설로 들어간다. 감독은 카메론을 멀리서 이해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가 느끼는 외로움과 두려움에 관객을 더 가까이 데려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 선택을 따라가면 관객 역시 충분한 설명을 듣고 상황을 정리할 시간을 갖기 어렵다. 낯선 장소에 들어가 어른의 말을 듣고,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야 한다. 카메론의 과거를 다 알아야만 그의 불편함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 마음을 믿지 말라는 말을 거듭 듣는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이곳에서 어떤 대답을 해야 무사할지 신경 쓰게 된다.
그런 가운데 친구 제인과 애덤이 생긴다. 아이들은 함께 걷고 농담하며 지도자 앞에서는 할 수 없던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을 따라갈 때에는 누가 더 아픈 사연을 가졌는지 겨루거나 서로에게 모범적인 답을 들려줄 필요가 없다. 같은 곳에 갇혀 있어도 눈앞의 어른이 얼마나 이상한지 함께 알아채고 웃을 수 있다. 아카반이 코미디에서 익힌 감각은 이 작은 공모에 잘 어울린다.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의 쉬린은 자기가 하는 거짓말로 연인을 곤란하게 만든다. 카메론에게는 어른들이 정한 말을 받아들이라는 압력이 가해진다. 두 인물을 모두 솔직해지는 법을 배우는 사람으로 묶을 수 없는 까닭이다. 카메론에게 친구들이 중요한 것은 속마음을 말했다고 벌받지 않는 상대이기 때문이다. 아카반은 이야기의 무게가 달라진 만큼 웃음을 나누는 관계도 다르게 만든다.
어른이 되고 자신을 이해한 뒤에도 말의 곤란함은 끝나지 않는다. 시리즈 〈The Bisexual〉에서 아카반이 연기하는 레일라는 오랫동안 함께한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남자와도 만난다. 그는 레즈비언으로 살아왔지만 이제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말해야 한다. 자기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앞에서조차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아카반은 자신을 양성애자라고 말할 때 느끼는 불편함에서 이 시리즈가 시작됐다고 했다. 다만 레일라와 자기 이력은 구별했다. 자신은 처음부터 양성애자로 커밍아웃했으며 레즈비언으로 살다가 정체성을 바꿔 설명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느낀 불편함을 인물이 치러야 할 다른 상황으로 옮겼다. 오랜 관계와 익숙한 생활을 두고 나오는 레일라에게는 말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대가가 생긴다.
레일라가 새로 함께 살게 된 남자 게이브 역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 사람이 아니다. 서로 낯선 생활을 설명하다가 각자의 편견이 드러난다. 자기는 충분히 열린 사람이라고 믿는 동안에도 실제 눈앞의 사람을 오해할 수 있다. 이 어긋남은 아카반이 자기 공동체까지 웃음의 대상으로 삼는 이유를 보여준다.
데지레 아카반의 인물들에게는 누군가를 대표하기 위해 점잖게 행동해야 한다는 부담이 덜하다. 쉬린의 변명은 우습고 이기적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자기 연애를 설명하기 어려운 사정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한 사람을 이해하면서도 그의 말과 행동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코미디를 오래 보게 한다.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을 함께 보면 농담이 생기는 자리도 새롭게 보인다. 영화의 무거운 주제를 잠시 잊으라고 삽입한 웃음으로만 듣기 어렵다. 카메론이 누구와 있을 때 자기 말을 할 수 있는지, 그때 표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따라가면 웃음 자체가 관계를 설명해 준다.
◆ 변명을 듣는 사람의 표정 —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에서 쉬린이 말을 둘러댈 때 옆에 있는 연인도 함께 보자. 당장 질문을 피하려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들리는지 살피면 웃음의 불편함이 드러난다. 주인공을 무조건 편들거나 나무라기 전에, 같은 자리에 있는 두 사람의 처지가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 볼 만하다.
◆ 자기 마음을 설명해야 하는 자리 —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에서는 질문의 내용뿐 아니라 어떤 답이 허용되는지 들어보자. 아이가 하는 말을 어른이 어디까지 받아들이는지 살피면 친절한 대화에도 압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감독이 시설에 빨리 들어가도록 도입을 줄인 효과 역시 이 대화를 겪으며 느낄 수 있다.
◆ 친구들끼리 알아듣는 농담 — 카메론이 제인과 애덤 앞에서 말하는 모습을 지도자 앞의 태도와 비교해 보자. 친구의 농담에 반응하고 자기 생각을 꺼내는 순간에는 인물을 사연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웃긴 장면이 있다는 사실보다 누가 그 웃음을 함께 나누는지에 주목하면, 이 영화에서 우정이 하는 일이 더 잘 보인다.
◆ 배우와 인물 사이의 거리 — 아카반이 직접 출연한 작품에서도 인물을 감독 본인으로 단정하지 않고 보자. 자기 경험을 어떤 상황에 옮겼는지, 그 상황이 관계를 어떻게 흔드는지가 더 흥미롭다. 특히 〈The Bisexual〉에서는 이미 익숙하다고 생각한 친구들 앞에서 새로 말을 꺼내야 하는 레일라의 곤란함을 따라갈 만하다.
◆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 — 성적 지향을 바꾸려는 시설에 보내진 소녀의 이야기. 클로이 모레츠가 카메론을 연기한다. 억압적인 환경을 따라가면서도 아이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농담하는 시간을 남겨두는, 아카반의 연출을 만날 수 있다.
◆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 아카반이 쓰고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장편 데뷔작. 헤어진 연인에 대한 미련과 가족 앞에서의 둘러대기가 겹치면서 쉬린의 하루가 꼬인다. 자기 인물을 쉽게 변호해 주지 않는 코미디가 궁금하다면 이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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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