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멈춰도 영화는 계속된다, 장뤽 고다르 | MovieLAB LAB

첫 장편이 너무 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장뤽 고다르는 영화 여기저기에서 몇 초씩 잘라냈다. 장면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부분까지 덜어내자 인물의 움직임과 배경이 툭툭 건너뛰었다.…

이야기가 멈춰도 영화는 계속된다, 장뤽 고다르 | MovieLAB LAB

첫 장편이 너무 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장뤽 고다르는 영화 여기저기에서 몇 초씩 잘라냈다. 장면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부분까지 덜어내자 인물의 움직임과 배경이 툭툭 건너뛰었다. 〈네 멋대로 해라〉의 편집에 관해 그가 훗날 밝힌 기준은 단순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을 남긴다는 것이었다.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도 보고 싶은 순간은 살릴 수 있었다. 그 결정을 알고 보면 화면의 끊김은 서투름보다 취향에 가까워진다.

그 뒤의 영화에서는 이야기에 빠져들 만하면 다른 무언가가 끼어든다. 범죄영화에 긴 대화와 춤이 들어오고, 공장 파업을 다루는 영화에는 제작비를 지불하는 수표가 등장한다. 나중에는 다른 영화의 장면과 기록 영상, 글자를 모아 새 영화를 만든다. 배우의 몸짓을 즐겨 보던 사람이 어쩌다 편집실에서 영화의 역사를 쓰게 됐을까. 고다르의 경력에는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변화들이 있다.

영화를 보며 배운 몸짓으로 살 수 있을까

고다르는 영화를 만들기 전에 영화에 관한 글을 썼다. 미국의 범죄영화를 좋아하던 비평가가 만든 〈네 멋대로 해라〉에는 영화배우 험프리 보가트를 흉내 내는 청년이 나온다. 미셸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마치 영화 속 멋진 주인공처럼 행동한다. 그를 연기한 장폴 벨몽도의 몸짓에는 매력이 있지만, 매력만으로 행동의 결과까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다르는 자신이 즐겨 보던 영화의 멋을 새 영화에 가져오면서, 그 멋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도 함께 보여줬다. 그래서 이 작품은 범죄의 다음 수순만 따라가지 않는다. 미셸과 파트리샤가 방에서 나누는 긴 대화에는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과 좀처럼 맞지 않는 생각이 같이 있다. 도망치는 사람의 시간 안에 연애하는 사람의 시간이 끼어든다.

〈국외자들〉에서는 안나 카리나가 두 남자와 나란히 춤을 춘다. 범죄영화의 줄거리만 궁금하다면 잠시 기다려야 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세 사람의 발을 따라가다 보면 사건을 빨리 진행시키는 것만이 영화가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의 몸과 음악이 한동안 화면을 차지해도 된다. 이야기를 멈췄다고 영화의 즐거움까지 멎는 것은 아니다.

카페에서 나란히 춤추는 세 사람

영화가 만들어지는 돈과 노동을 화면에 넣다

1968년 프랑스에서 학생과 노동자의 시위가 이어지던 무렵, 고다르도 영화의 정치적 역할을 실험했다. 장피에르 고랭 등과 지가 베르토프 집단의 이름으로 영화를 만든 것은 그 시도 중 하나였다. 노동자와 혁명을 소재로 고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누가 만들고 누가 말하는지까지 바꾸려 했다. 이때의 영화를 이전보다 더 멋있는 장르영화로 기대하면 당황하기 쉽다. 인물의 행동을 따라가기보다 주장과 반론을 들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고랭과 공동 연출한 〈만사형통〉(1972)은 소시지 공장의 파업을 다룬다. 그런데 도입에 보이는 것은 제작비를 치르기 위해 차례로 서명하는 수표들이다. 제인 폰다와 이브 몽탕 같은 스타를 출연시키는 일에도 돈이 든다. 노동자들의 사정을 보러 온 관객은 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비용부터 보게 된다. 자본을 비판하는 영화 역시 자본이 있어야 만들어진다는 모순을 도입부터 드러낸다.

보통 제작비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해결해두는 문제다. 관객이 보는 것은 그 돈으로 완성한 장면들이다. 〈만사형통〉은 돈을 쓰는 과정을 첫머리에 놓아, 영화에 몰입하려던 사람에게 먼저 제작의 사정을 알린다. 고다르는 이야기를 멈추게 하는 방법을 여기서도 썼다. 춤을 즐길 시간을 주던 중단이 이번에는 영화를 만드는 조건을 돌아보게 한다.

안 마리 미에빌과 화면을 다시 배우다

1970년대에는 안 마리 미에빌과의 협업이 시작된다. 두 사람은 파리를 떠나 그르노블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비디오를 다뤘다. 미에빌은 각본과 편집, 공동 연출에 참여하며 고다르가 찍은 영상에도 의견을 보탰다. 이름난 감독의 작업을 도와주는 역할에 그치지 않았다. 이전 영화가 사람들을 보여주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영화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와 저기〉(1976)에는 고다르와 고랭이 팔레스타인에서 찍었던 영상과 프랑스 가정의 일상이 함께 나온다. 그 위로 미에빌과 고다르의 목소리가 대화를 나눈다. 미에빌의 말은 이미 찍힌 영상을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고, 촬영하고 보여주는 방식의 문제를 짚는다. 멀리 있는 사람들의 투쟁을 찍었다고 해서 그들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한때 확신을 담아 만들려던 영화를, 다른 사람과 다시 보면서 고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넘버 투〉(1975)에서는 한 화면 안에 두 개의 비디오 화면이 놓인다. 관객은 무엇을 먼저 볼지, 한쪽의 소리를 들으며 다른 쪽을 어떻게 볼지 선택해야 한다. 극장의 큰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장면 하나를 보는 경험과 다르다. 영상이 겹치거나 나뉜다는 기술적인 특징이 곧 주의를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음향 장비의 조절 장치 위에 놓인 손

그 뒤 배우와 이야기를 중심에 둔 장편으로 돌아가면서도 이런 실험은 남았다. 한 동작을 느리게 분해하면 행동의 결과보다 움직이는 몸 자체를 오래 보게 된다. 인물이 무엇을 했는지 이미 알아도 장면이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이야기를 따라가던 눈을 잠시 다른 곳에 붙잡아두는 방법은 계속 바뀌었다.

이미 본 영화에서 아직 못 본 관계를 찾다

1988년부터 1998년까지 이어진 〈영화의 역사(들)〉에서는 오래된 영화 장면과 기록 영상, 목소리와 음악, 글자가 겹쳐진다. 감독과 작품을 연도순으로 설명하는 영화사는 아니다. 극영화가 보여준 세계와 같은 시대의 전쟁 기록을 함께 보게 하는 작업이다. 영화를 많이 보아온 비평가의 기억에, 영화가 현실을 얼마나 보여줬는지 따지는 질문이 더해졌다.

〈언어와의 작별〉(2014)에서는 3D를 시험했다. 촬영감독 파브리스 아라그노가 고안한 방식 중에는 입체 영상을 만드는 두 카메라가 서로 다른 대상을 향하게 하는 것도 있었다. 두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가 갈라지면 편안하게 하나의 장면으로 보기 어렵다. 하나의 화면 안에 두 화면을 놓았던 〈넘버 투〉에서 더 나아가, 이번에는 관객의 두 눈이 서로 다른 화면을 받아들인다. 새 도구는 영화를 더 매끄럽게 만드는 데만 쓰이지 않았다.

〈이미지 북〉(2018)은 이미 찍힌 화면을 가져와 색과 소리, 순서를 바꾼다. 이미지가 찌그러지고 소리가 갑자기 끊기기도 한다. 출처가 다른 영상들을 이어 붙였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화면이 끊긴 자리에서 앞서 본 장면과 새 장면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초기작에서 영화 주인공을 흉내 내는 청년을 보여줬다면, 후기작에서는 우리 머릿속의 세계가 어떤 영상들로 만들어졌는지 되묻는다.

처음에는 한 장면에서 무엇을 남길지 골랐고, 나중에는 수많은 영화와 기록에서 무엇을 나란히 놓을지 골랐다. 좋아하는 순간을 살리던 일이 이미 찍힌 세계를 다시 따져보는 일로 이어졌다. 그래서 고다르의 후기 작업을 볼 때는 낯선 이름을 얼마나 아느냐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서로 다른 화면이 부딪힐 때 내 눈에 무엇이 남는지부터 시작할 수 있다.

지금 이 감독의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영화에서 사건이 멈추면 다음 장면을 기다리기 쉽다. 고다르의 초기작은 그 기다리는 시간을 다르게 쓴다. 〈네 멋대로 해라〉의 연인은 한 방에 있으면서도 좀처럼 같은 생각에 도착하지 못하고, 〈국외자들〉의 세 사람은 범죄의 계획에서 잠시 벗어나 함께 춤춘다.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동안에도 배우와 음악, 말의 어긋남을 즐길 수 있다.

후기작은 거기서 한 걸음 더 요구한다. 귀에 들리는 말이 눈앞의 화면을 제대로 설명하는지, 서로 다른 두 영상을 나란히 볼 때 첫인상이 달라지는지 살펴야 한다. 매일 많은 영상을 보면서도 그 연결을 고른 사람은 쉽게 잊는다. 고다르의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을 움직인 장면뿐 아니라, 그렇게 느끼도록 만든 편집도 궁금해진다. 다른 영화를 다시 볼 이유가 하나 늘어나는 것이다.

감상 포인트

잘려나간 시간 — 〈네 멋대로 해라〉의 이동 장면에서 인물은 이어져 보이는데 배경이 건너뛰는 순간을 보자. 필요한 정보를 모두 잃지 않고도 화면의 연결이 달라질 수 있다. 끊김이 장면의 속도와 인물의 인상에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느낄 수 있다.

사건이 잠시 미뤄지는 대화와 춤 — 초기작에서 줄거리의 다음 사건이 오지 않는 동안 배우가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자. 대화의 어긋남이나 동작의 즐거움이 이야기와 별개로 관객을 붙잡는다. 고다르의 영화를 관념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화면 안의 다른 화면 — 〈넘버 투〉처럼 이미지가 둘 이상 놓일 때 눈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지 의식해보자. 무엇을 보지 못했는지까지 느껴지는 구성이, 관객의 선택을 영화의 일부로 만든다. 이후의 중첩된 이미지에도 적용해볼 수 있는 관람법이다.

그림을 설명해주지 않는 소리 — 후기 작업에서는 화면과 목소리가 같은 내용을 말하는지부터 확인해보자. 다른 이야기가 겹치면 이미지에 대한 첫 느낌도 흔들릴 수 있다. 소리를 배경으로 흘려듣지 않을 때 편집이 만드는 관계가 더 많이 들린다.

관련 작품

〈네 멋대로 해라〉 (1960, 장뤽 고다르) — 범죄영화의 멋, 연인의 긴 대화, 거칠게 건너뛰는 편집이 함께 있다. 영화에 대한 애정과 영화의 규칙을 바꾸려는 선택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출발점이다.

〈히치콕 트뤼포〉 (2015, 켄트 존스) — 영화를 열심히 보던 비평가가 감독과 대화하며 연출을 다시 이해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글과 말이 새로운 영화의 출발점이 되던 환경을 곁에서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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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