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끝까지 배달해야 할 물건이 있다 | MovieLAB LAB

〈소곤소곤 별〉의 우주에서는 인류가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행성마다 흩어져 사는 사람들에게 소포를 가져다주는 이는 안드로이드 요코(가구라자카 메구미)다. 배달에는 몇 년씩 걸린…

우주 끝까지 배달해야 할 물건이 있다 | MovieLAB LAB

〈소곤소곤 별〉의 우주에서는 인류가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 행성마다 흩어져 사는 사람들에게 소포를 가져다주는 이는 안드로이드 요코(가구라자카 메구미)다. 배달에는 몇 년씩 걸린다. 그런데 그 먼 길을 건너는 물건들이 요코의 눈에는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왜 이런 것을 보내고 기다리는 것일까.

소노 시온 감독은 이 의문에서 조용한 SF를 시작한다. 요코가 소포를 건네러 다니는 동안 관객도 그 안의 물건을 살핀다. 처음에는 배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다가, 차츰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무슨 사연이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남이 보면 버려도 될 것 같은 물건을 자신만은 간직하고 싶었던 경험이 있다면, 요코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그리 낯설지 않다.

낡은 문 앞에서 소포를 든 요코

멀리 떨어진 사람들을 찾아가는 배달부

요코가 만나는 사람들은 우주선을 타고 찾아가야 할 만큼 멀리 떨어져 산다. 사람이 드문 이곳에도 배달은 계속된다. 소포가 있다는 것은 멀리서 무엇인가를 보내준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텅 빈 풍경을 보다 그 물건을 기다리는 사람을 만나면, 아무와도 연락하지 못한 채 홀로 남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하게 된다.

몇 년씩 기다려야 한다면 당장 쓸 물건을 주문한 것은 아닐 것이다. 로봇인 요코는 별 쓸모도 없어 보이는 것을 왜 기다리는지 모른다. 관객은 그 답을 조금 짐작할 수 있다. 소중한 물건을 간직하는 데는 쓸모 외의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누가 무엇을 보냈을지 상상하며 다음 배달을 따라가게 된다.

요코는 물건에 얽힌 사연을 대신 설명해주거나 먼저 감동하지 않는다. 그 담담한 태도 덕분에 관객도 서둘러 감동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물건과 받는 사람을 바라볼 수 있다.

방파제와 모래사장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

먼 미래의 행성에 남은 후쿠시마

화면의 황량한 풍경은 상상으로만 만든 미래가 아니다. 영화는 후쿠시마의 피난 지역에서 촬영했다. 감독이 앞선 작품을 준비하며 만났던 주민들도 참여했다. 사람이 떠난 실제 장소가 먼 미래의 행성으로 나타나는 셈이다. 이 사실을 알고 보면 빈 풍경을 그저 분위기 있는 SF의 배경으로 넘기기 어렵다.

소노 시온은 오래전에 이 영화의 각본과 그림을 구상해두었다. 폐허가 된 장소를 찾아 해외를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가까운 곳에서 닥친 재난이 촬영 장소를 바꾸었다. 상상 속에서 찾던 장소와 실제 피해 지역이 겹쳤다는 사정이 이 영화의 흑백 화면에 무게를 더한다.

후쿠시마의 풍경에 요코가 들어서면 그곳은 사람이 떠난 흔적만 있는 장소로 보이지 않는다. 그가 찾아갈 주소가 있고, 소포를 받을 사람도 있다. 영화는 실제 재난의 흔적을 보여주면서, 그곳에서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눈을 돌리게 한다.

얼굴 대신 그림자가 남는 순간

요코가 지나가는 복도에는 종이문 너머로 사람들의 그림자가 비친다. 얼굴이나 이름은 알 수 없고, 몸의 윤곽과 움직임만 보인다. 얼굴을 직접 보여주지 않아도 문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감독은 이 장면을 설명하며 돌아보면 짧게 느껴지는 삶, 붙잡을 수 없는 지난 시간을 이야기했다. 재난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려는 마음도 담았다고 밝혔다. 그 말을 알고 나면 누군지 알 수 없던 그림자를 조금 더 바라보게 된다.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도, 한때 그곳에 살며 움직이던 사람을 떠올릴 수 있다.

우주 끝까지 소포를 보낸다는 설정은 처음에는 기발한 상상처럼 들린다. 배달을 따라가다 보면 그 먼 곳에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남는다. 오래전에 보낸 물건을 아직 기다리는 사람, 그 주소를 잊지 않은 사람.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하는 우주에서 둘을 이어주는 요코의 일이 점점 소중해진다.

관련 작품

◆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2000, 아녜스 바르다) — 다른 사람이 버린 것에서 쓸모와 즐거움을 발견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평범한 물건이 누구의 손에 놓이는지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점에서 이어 읽기 좋다. 바르다 자신이 카메라를 들고 수집에 참여하는 유쾌함은 이 영화와 다른 활기를 준다.

◆ 〈사운드 오브 폴링〉 (2025, 마샤 실린스키) — 한 장소에 겹쳐 있는 여러 시대의 삶을 따라간다. 눈앞에 사람이 없더라도 공간에는 누군가 살아온 흔적이 남는다는 감각을, 훨씬 복잡한 시간의 구성으로 경험하게 하는 영화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