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오진을 인정한다. 헤이즐은 죽을 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곧 찾아온 기자는 바로 그 병 때문에 그를 뉴욕에 초대한다. 신문사가 여행을 마련하고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겠다는…
의사가 오진을 인정한다. 헤이즐은 죽을 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곧 찾아온 기자는 바로 그 병 때문에 그를 뉴욕에 초대한다. 신문사가 여행을 마련하고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겠다는 것이다. 헤이즐은 정정할 기회를 놓친다. 병은 없지만, 생전 처음 갈 뉴욕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Nothing Sacred〉는 이 거짓말을 관객에게 일찌감치 알려준다. 그러니 건강한 몸을 들킬까 봐 조마조마할 뿐, 헤이즐의 목숨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대신 그를 걱정한다는 사람들의 행동이 눈에 들어온다. 죽음을 앞둔 여자를 위로한다면서, 정작 그 여자에게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안겨준다.
프레드릭 마치가 연기하는 기자 월리 쿡에게도 이번 취재는 기회다. 그는 앞서 왕족을 사칭한 인물에게 속아 신문사를 망신시켰다. 화가 난 편집장은 쿡을 부고 담당으로 보낸다. 쿡이 다시 큰 기사를 쓸 수 있도록 가져온 이야기가 버몬트의 시골 마을에 사는 헤이즐이다.
신문사가 처음 속았을 때도 상대는 아주 매력적인 손님이었다. 큰 기부금을 내겠다는 왕족이라면 성대한 환대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이제는 죽음을 앞둔 젊은 여자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기부와 동정이라는 서로 다른 명분 아래, 신문사는 자신이 주최한 행사와 자신이 발굴한 인물을 내세울 수 있다.
이 순서가 코미디의 짓궂은 점이다. 한 번의 실수를 겪었다고 해서 다음에는 더 차분하게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만회할 기사가 급해진다. 쿡에게 필요한 것은 헤이즐의 사연이고, 헤이즐에게 필요한 것은 쿡의 초대다. 둘은 서로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지만, 병이 없다는 사실은 한쪽만 안다.

뉴욕은 헤이즐을 크게 환영한다. 색종이가 날리는 퍼레이드가 열리고 도시의 열쇠를 건넨다. 레슬링 경기에도 귀빈으로 초청한다. 나이트클럽은 헤이즐의 이름을 내건 밤을 마련한다. 위로의 규모가 커질수록 헤이즐은 더 많은 사람 앞에 나서야 한다.
이렇게 환대받는 여행이 싫을 리는 없다. 다만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초대도 아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앞둔 용감한 여자를 보러 왔다. 즐겁고 활기찬 모습을 보일 때조차 헤이즐은 건강한 여행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뉴욕 사람들이 알고 있는 병과, 관객이 알고 있는 오진 사이에서 같은 행동의 뜻이 달라진다.
캐롤 롬바드의 헤이즐은 그래서 얌전히 동정만 받기에는 너무 바쁜 인물이다. 여행을 즐기고 싶고, 비밀을 지켜야 하고, 자신을 데려온 남자에게도 마음이 간다. 시한부라는 설정이 인물을 가만히 눕혀두기보다 계속 움직이게 한다. 병이 없다고 말하는 순간 이 여행이 끝날지도 모른다.

쿡을 끝까지 계산적인 기자라고만 보면 이 영화의 연애가 설명되지 않는다. 헤이즐을 둘러싼 소란과 과장된 찬사에 화가 나면서 그는 실제로 그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처음 뉴욕에 데려올 때와 달리, 취재 대상의 건강이 자기 일이 된다. 그는 라듐 중독 전문가까지 부른다.
상대가 진심으로 걱정할수록 헤이즐에게는 말하기 더 어려운 비밀이 생긴다. 신문사를 속였다고 털어놓는 것과, 자신을 염려하는 사람에게 병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부담이 다르다. 쿡의 관심이 일에서 사랑으로 바뀌는 동안, 헤이즐이 감추는 사실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이 어긋남 덕분에 언론 풍자가 두 사람의 연애와 따로 놀지 않는다. 신문이 만들어낸 인연 안에서 진짜 마음이 생겨버렸다. 거짓말만 그만두면 된다고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헤이즐이 지금 가진 즐거운 여행과 새로운 관계 모두, 말하지 않은 그 사실에 걸려 있다.
이 영화의 웃음은 누가 거짓말쟁이인지 밝혀내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관객은 이미 알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사실대로 말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말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초대를 수락할 때는 작은 여행의 비밀이던 것이, 도시가 환대하는 사람이 된 뒤에는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일이 된다.
헤이즐이 아프지 않다는 소식은 그에게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그 좋은 소식을 전하기가 곤란해진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행사에 그 사람의 실제 사정이 들어갈 자리가 있는지, 영화는 웃음을 끊지 않고 묻는다.
◆ 관객만 아는 사실
오진이라는 사실이 언제 공개되는지 기억해두자. 헤이즐의 병을 믿는 사람들과 함께 보면 슬플 행동이, 사정을 아는 관객에게는 우스워진다. 어떤 인물이 거짓말을 알아채는지 추리하는 것과 함께, 한 행동을 두 가지로 이해하게 만드는 장면을 찾아볼 만하다.
◆ 환영 행사의 크기
거리의 퍼레이드부터 경기장과 나이트클럽까지, 헤이즐을 부르는 장소가 늘어난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그에게 무엇을 해주려는지, 무엇을 보여달라고 하는지 구별해보자. 초대받은 사람인 동시에 구경거리가 되는 처지가 행사마다 조금씩 다르게 드러난다.
◆ 걱정하는 쿡의 변화
처음 헤이즐을 찾아갈 때와 전문가를 부를 때 쿡이 원하는 것을 비교해보자. 처음에는 헤이즐의 사연으로 기사를 쓰려 했고, 나중에는 병을 해결하고 싶어진다. 같은 건강 문제를 두고 기자와 연인의 반응이 달라지면서 두 사람의 대화가 왜 더 어려워지는지 보인다.
◆ 병을 둘러싼 연애
헤이즐에게 병 이야기는 신문사에 들킬 위험이면서, 좋아하는 남자에게 해야 할 고백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순간을 볼 때도 그 비밀을 함께 떠올려보자. 사랑을 확인하는 말과 사실을 털어놓는 말 가운데 어느 쪽을 먼저 꺼낼 수 있을지, 연애의 긴장이 생긴다.
◆ My Man Godfrey (1936) — 그레고리 라 카바 감독. 부유한 집안의 딸이 거리에서 만난 남자를 집사로 고용한다. 캐롤 롬바드가 이번에는 호의를 베푸는 쪽에 선다. 상대가 필요한 것과 자신이 해주고 싶은 일이 얼마나 다른지, 부유한 가족의 소동 속에서 살펴볼 수 있다.
◆ His Girl Friday (1940) — 하워드 혹스 감독. 재혼을 앞둔 기자를 전남편인 편집장이 큰 사건의 취재로 붙잡으려 한다. 일로 맺어진 관계에 사적인 욕심이 끼어드는 신문사 코미디다. 두 사람이 기사를 이야기하는지 서로를 설득하는지 구별하기 어려워지는 대화를 이어서 즐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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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