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사진을 애인 사진이라고 보여주는 거짓말이 통한다. 상대가 그 배우를 모르기 때문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남북 병사들의 차이는 이런 식으로 웃음을 만든다. 거짓말의 규…
여배우 사진을 애인 사진이라고 보여주는 거짓말이 통한다. 상대가 그 배우를 모르기 때문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남북 병사들의 차이는 이런 식으로 웃음을 만든다. 거짓말의 규모는 한심할 만큼 작고, 그래서 그 말을 하는 청년이 가깝게 느껴진다. 관객은 총을 든 적군보다 친구 앞에서 허풍을 떠는 젊은이를 먼저 보게 된다.
출발은 총격 사건이다. 판문점 북측 초소에서 사람이 죽었고 남과 북의 설명은 어긋난다. 중립국감독위원회에서 파견된 소피 장 소령은 현장의 단서와 병사들의 진술을 대조한다. 관객 역시 조사관의 뒤에서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가려보려 한다.
그러다 영화가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면, 확인해야 할 것들이 달라진다. 남측의 이수혁과 남성식, 북측의 오경필과 정우진이 밤에 몰래 만난다. 그들은 사건 관련자로 불리기 전에 함께 웃고 장난치던 사이다. 조사에서 빠져 있는 것은 결정적인 증거만이 아니다. 양쪽의 진술에는 이들이 함께 어울렸다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 사정도 얽혀 있다.
박찬욱은 현재의 조사와 과거의 만남을 오가며 사건의 진상과 병사들의 관계를 함께 궁금하게 만든다. 그날 누가 총을 쐈는지 알고 싶은 마음 위로, 저렇게 지내던 사람들이 어쩌다 총을 겨누게 됐는지 묻는 마음이 생긴다. 같은 사건을 추적하는데도 사람을 알아갈수록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기분은 무거워진다.
여배우를 애인으로 소개할 수 있는 건 둘 사이에 공통의 정보가 없어서다. 누군가에게는 금세 들킬 허풍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럴듯한 자랑이 된다. 이 짧은 장난 안에, 가까운 말을 쓰면서도 다른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의 거리가 있다. 병사들은 그 거리를 설명하는 대신 일단 장난에 써먹는다.
김광석의 죽음을 두고 함께 건배하는 장면은 또 다른 종류의 가까움을 보여준다. 같은 가수에게 마음을 주었다는 사실 앞에서 출신을 확인하는 절차는 필요하지 않다. 모르는 것이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함께 아는 것이 잠시 이들을 묶기도 한다. 우정은 거창한 선언보다 이런 작은 확인들 속에서 자란다.
2001년 베를린영화제 기자회견에서 박찬욱은 연출하며 비극보다 유머를 더 걱정했다고 말했다. 남북이 얼마나 같고 다른지를 함께 보여줄 방법으로 유머를 택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 선택 덕분에 네 병사는 화해를 대표하는 모범 인물에 머물지 않는다.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고, 허풍을 떨며, 마음에 맞는 사람과 더 놀고 싶은 젊은이들이 된다.
그렇다고 몇 번의 만남으로 초소의 성격이 바뀌지는 않는다. 네 사람이 그 안에서 무엇을 했든 그곳은 군사시설이고, 밤이 끝나면 각자의 소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함께 있을 때 편해진 몸과 밖에서 지켜야 하는 태도 사이에는 간격이 남는다. 이들이 친해지는 장면을 편하게 웃으며 보다가도, 관객은 누가 들어올지 모른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오경필을 맡은 송강호를 비롯한 네 배우의 연기는 그 두 상태를 한 인물 안에 놓는다. 같은 군복을 입고 있어도 친구끼리 장난칠 때와 조사받을 때의 표정과 말투는 다르다. 그 차이를 충분히 본 뒤에는, 조사실에서 들리는 단정한 구분이 전보다 빈약하게 느껴진다.
이영애가 연기하는 소피는 진술이 맞지 않는 이유를 밝혀야 한다. 하지만 관객이 과거의 밤에서 본 관계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르는 일만으로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친밀함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지워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비극을 만든다. 총격의 진상을 알고 나서도, 함께 웃던 장면으로 마음이 돌아가는 이유다.
사건의 진상을 이미 아는 관객에게도 병사들이 친해지는 대목은 새로 볼 여지가 있다. 웃음이 터질 때마다 인물 사이에 무엇이 통했고 무엇은 아직 낯선지 살펴보면, 결말을 향한 긴장과는 다른 세밀함이 보인다.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범인을 미리 찾기보다 이 밤들이 얼마나 평범한지 느껴보아도 좋다.
◆ 애인 사진이라는 허풍 — 상대가 모르는 여배우의 사진을 애인 사진처럼 보여주는 장난이 나온다. 서로 다른 생활을 해왔다는 사실이 웃음을 만들면서도 병사들을 평범한 청년으로 보게 하는 대목이다.
◆ 김광석을 함께 이야기할 때 — 같은 가수의 죽음을 두고 마음을 나누는 장면을 사진을 둘러싼 장난과 비교해볼 만하다. 어떤 정보는 서로 낯설고 어떤 감정은 통한다는 차이가 이들의 친밀함을 구체적으로 만든다.
◆ 만남과 조사에서 달라지는 얼굴 — 밤에 어울리는 병사들과 공식 진술을 하는 병사들은 같은 사람들이다. 누구와 있는지에 따라 표정과 말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면, 진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관계를 읽을 수 있다.
◆ 과거를 본 뒤 다시 보는 조사 — 새로운 단서를 얻을 때뿐 아니라 병사들이 친해지는 모습을 본 뒤에도 조사 장면의 느낌이 달라진다. 총격의 진상과 별개로 관객이 이들에 대해 더 알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따라가보자.
◆ 고지전 (2011, 장훈) — 전쟁터에 온 조사관이 병사들의 생활을 알아간다. 공식 임무와 현장에서 생긴 관계가 충돌한다.
◆ 웰컴 투 동막골 (2005, 박광현) — 한 마을에 머무는 서로 다른 편의 병사들.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적이라는 구분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 이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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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