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다. 이미 아이 둘을 키우고 있고, 다시 임신한 몸으로 당장의 생활을 걱정한다. 폴린은 임신중지에 필요한 돈을 마련해준다.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수잔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다. 이미 아이 둘을 키우고 있고, 다시 임신한 몸으로 당장의 생활을 걱정한다. 폴린은 임신중지에 필요한 돈을 마련해준다.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의 우정은 서로 잘 맞는다는 확인보다 먼저 누군가의 곤란에 손을 보태는 일에서 시작한다. 훗날 두 사람은 멀리 떨어져 살지만, 엽서로 소식을 전하고 필요할 때 서로를 도우며 관계를 이어간다.
두 사람의 처지는 처음부터 다르다. 부모와 부딪치는 폴린은 집을 떠나 독립하고 싶어 한다. 수잔에게는 아이들을 먹이고 키우는 당장의 생활이 더 급하다. 폴린이 건네는 돈은 그래서 중요하다. 자신과 다른 생활을 하는 친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다.
아녜스 바르다는 이 도움을 우정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 쓴다. 친구의 결정을 대신 내려주거나 자신의 삶을 모범으로 제시할 필요는 없다. 수잔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으려면 먼저 그 선택에 드는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자기 몸의 일을 스스로 정한다는 말은 이 영화에서 돈과 아이와 머물 곳의 문제를 동반한다. 마음먹기만 하면 된다는 격려보다 구체적인 도움이 먼저인 이유다.
이후 폴린은 폼이라는 이름으로 노래하고, 수잔은 다른 여성들을 돕는 일을 하며 생활을 꾸려간다. 폼을 연기하는 발레리 메레스와 수잔 역의 테레즈 리오타르는 서로 다른 성격의 인물을 맡는다. 한쪽의 활발한 움직임을 다른 쪽이 따라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제목은 한 사람이 노래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만큼 또렷하게 남겨둔다. 같은 뜻을 품었다고 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하지는 않는다.
둘이 떨어져 지내는 동안 엽서가 오간다. 우정을 다루는 영화인데 두 주인공이 한 장소에 함께 있지 않는 시간이 길다. 그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연락이다. 관객에게 근황을 알려주는 설명이면서, 한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보내는 사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에게 쓰는지 알기 때문에 평범한 소식에도 듣는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엽서는 함께 있지 못한 시간을 인정하는 형식이다. 친구에게도 보지 못한 날들이 있고, 전해 듣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폼과 수잔의 관계를 친밀하게 만드는 것은 모든 순간을 공유한다는 설정이 아니다. 각자 겪은 일을 나중에라도 이야기하고, 상대에게 그 이야기가 닿으리라 믿는 태도다. 거리가 멀어졌다는 이유로 둘의 관계를 실패로 정리할 수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방식은 두 사람의 삶을 한 가지 성공담으로 합치는 일을 막아준다. 한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고 다른 쪽도 같은 변화를 겪지는 않는다. 영화는 소식을 주고받게 하면서 그 차이를 유지한다. 친구의 선택을 이해하고 응원한다고 해서 자신도 같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폼이 무엇을 선택하든 수잔에게는 수잔의 생활이 계속된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곳은 보비니의 법원 앞이다. 임신중지로 기소된 여성을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진다. 사적인 도움이 필요했던 문제를 여러 사람이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다. 영화는 두 친구의 재회를 집회 한가운데 놓음으로써, 각자의 사정을 사회의 문제로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보여준다.
이 장면은 실제 보비니 재판을 바탕으로 재연했다. 당시 변호를 맡았던 지젤 알리미도 직접 등장한다. 바르다는 2018년 칸영화제에 보낸 글에서 자신이 집회에 참여했으며, 영화 속 노래의 가사를 썼다고 밝혔다. 배우가 연기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 곁에 실제 활동가와 감독의 경험이 들어온다. 다만 화면을 당시 집회의 기록 영상으로 보면 안 된다. 실제 사건을 영화로 다시 만든 장면이다.
폼의 노래는 엽서와 다른 사람에게 닿는다. 엽서에는 받는 친구가 있지만, 거리의 노래는 처음 보는 사람도 들을 수 있다. 자기 몸과 삶을 두고 품은 생각이 한 사람의 고민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를 말로 바뀐다. 바르다가 음악을 통해 얻는 것은 중요한 문제를 잠깐 잊는 휴식만이 아니다. 심각한 일을 이야기하면서도 함께 모이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
노래하는 사람에게는 듣는 사람이 필요하고, 들은 사람이 꼭 다음 무대에 올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폼의 공연 곁에 수잔의 생활을 계속 놓는 이 영화는 연대의 모양을 하나로 정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노래하고, 누군가는 필요한 돈을 마련하고, 누군가는 다른 여성의 사정을 듣는다. 두 사람의 우정은 생활이 달라질 때마다 서로에게 필요한 도움을 찾아가는 동안 이어진다.
우정이 흔들리는 사건보다 우정을 계속하는 방법이 궁금할 때 볼 만한 영화다. 돈을 마련해주고, 소식을 쓰고,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일이 긴 시간을 잇는다. 노래하는 폼의 활기만큼 노래하지 않는 수잔의 생활에도 자리를 내준다는 점에서, 함께한다는 말의 뜻이 넓어진다.
◆ 엽서로 전하는 근황 — 둘이 떨어져 사는 동안 전해지는 소식에는 받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 단순한 줄거리 설명으로 듣기보다 폼이 수잔에게, 수잔이 폼에게 무엇을 들려주고 싶어 하는지 따라가면 우정이 더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 노래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 폼의 공연에서는 노래하는 모습뿐 아니라 곁에서 듣는 사람도 함께 볼 만하다. 노래가 한 사람의 생각을 전할 때와 여러 사람을 모으는 역할을 할 때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볼 수 있다.
◆ 법원 앞의 재연 — 보비니 법원 앞 장면은 실제 재판과 시위를 바탕으로 다시 촬영한 것이다. 당시 변호사였던 지젤 알리미의 출연을 알고 보면 두 주인공의 허구적 이야기와 실제 여성운동이 만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 서로 닮지 않아도 이어지는 우정 — 폼과 수잔은 일을 하고 가족을 꾸리는 방식이 다르다. 어느 쪽의 삶이 더 성공적인지 고르기보다, 그 차이를 유지하면서도 상대의 사정을 듣고 도움을 주는 대목에 주목할 만하다.
◆ 행복 (1965, 아녜스 바르다) — 한 남자가 다른 사람의 행복까지 설명하는 영화. 두 여성이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이 작품과 나란히 읽으면 말할 권한의 차이가 드러난다.
◆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1962, 아녜스 바르다) — 가수의 노래가 그날의 두려움을 드러낸다. 바르다가 노래를 사적인 감정과 공개적인 발언에 각각 쓰는 방식을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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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