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로 사람을 부리는 법 | MovieLAB LAB

폐지를 주워 사는 인목은 기동에게 초코파이를 주고 일을 시킨다. 허리가 성치 않은 자신 대신 기동이 몸을 쓰고, 돈은 인목이 번다. 집에서 쫓겨나 굴다리 밑에 살게 된 남자가, …

초코파이로 사람을 부리는 법 | MovieLAB LAB

폐지를 주워 사는 인목은 기동에게 초코파이를 주고 일을 시킨다. 허리가 성치 않은 자신 대신 기동이 몸을 쓰고, 돈은 인목이 번다. 집에서 쫓겨나 굴다리 밑에 살게 된 남자가, 처지가 나아지기도 전에 다른 사람의 노동을 싸게 쓰는 법부터 익힌 셈이다. 페이퍼맨의 웃음은 이렇게 좀 찜찜한 데서 나온다.

곽진이 연기하는 인목은 한때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였다. 지금은 폐지를 주워 살아가고, 주변에는 노인과 청년, 소녀가 있다. 이들을 묶어 어려운 처지의 이웃들이라고 부르면 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같은 처지라고 해서 서로 공평하게 대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이익을 챙기고 누군가는 손해를 본다.

같이 산다고 공평한 것은 아니다

기동이 좋아하는 것을 아는 일은 친밀함일 수도 있다. 인목은 기동의 입맛을 알아서 일을 시킬 때 써먹는다. 초코파이라는 구체적인 물건 때문에 관계가 더욱 묘해진다. 거창한 음모가 없어도 사람을 이용할 수 있고, 이용당하는 쪽이 웃고 있다고 해서 거래가 공평해지는 것은 아니다.

인목이 마냥 밉지만은 않은 이유도 영화 안에 있다. 그는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벅찬데도 다른 사람을 챙기는 구석이 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던 인목이 곧이어 자기 이익을 챙기기도 한다. 어느 한 장면에서 인목을 좋은 사람으로 정리해도, 다음 행동이 그 결론을 방해한다.

가난한 인물이 언제나 선량해야 한다면 그에게 허용되는 성격은 너무 좁아진다. 인목에게는 허세도 있고 꾀도 있다. 그를 안쓰럽게 보는 것과 그가 기동에게 하는 일을 못 본 척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두 판단을 동시에 하게 한다.

인목 곁에서 손을 들어 말하는 기동

금메달로는 오늘을 해결할 수 없다

목에 건 메달은 인목이 한때 무엇을 잘했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오늘 잘 곳이나 일자리를 마련해주지는 못한다. 화면에서 메달이 눈에 띌수록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생활은 더 멀어 보인다. 성실하게 몸을 써온 이력이 남아 있어도, 지금의 몸으로 같은 일을 해낼 수는 없다.

기모태 감독은 인목을 만들 때 한 번 실패한 뒤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 중년의 처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영화가 인목에게 새로운 금메달을 따게 해 자존심을 회복시켜줄 것이라고 기대할 필요는 없다. 현재 그에게 절실한 일은 훨씬 작고 구체적이다. 폐지를 모으고, 잠잘 자리를 확보하고, 오늘 만난 사람과 어떻게 지낼지 정하는 일이다.

이런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가 시종 숙연해야 할 이유도 없다. 기모태는 아버지나 영화와 관계없는 일을 하는 친구들도 재미있게 볼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인목의 뻔뻔함은 그 선택에 잘 맞는다. 그가 꾀를 부리는 모습에 웃다가도, 그 바람에 누가 손해를 봤는지 생각하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종이 상자를 깐 바닥에 누운 인목

종이집도 넓히고 싶어진다

처음에는 몸을 누일 만큼이면 됐던 종이가 차츰 집의 모양을 갖춘다. 인목의 거처가 넓어지는 것은 우스우면서도 이해할 만하다. 남들이 보기엔 집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곳에서도, 사는 사람은 조금 더 넓게 쓰고 싶다. 굴다리 아래라고 욕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폐지를 모아 돈을 벌려는 더 조직적인 사람들이 끼어든다. 힘든 사람끼리 남은 것을 나누는 작은 세계에도 경쟁이 들어오는 것이다. 종이집을 짓는 데 쓰인 재료와 그 생활을 흔드는 돈의 원천이 모두 폐지라는 점이 절묘하다. 남들이 버린 종이도 돈이 되는 순간에는 서로 차지하려는 대상이 된다.

지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안쓰러운 사정과 얄미운 행동이 한 사람 안에 있다. 인목에게 웃고 화내는 동안, 가난한 사람을 바라볼 때 우리가 얼마나 제한된 성격만 기대해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감상 포인트

일을 시키는 대가 — 인목은 기동이 좋아하는 초코파이를 주고 일을 시킨다. 둘이 친근하게 지내는 모습과 노동의 대가가 공평한지는 다른 문제라는 점을 함께 생각해보자.

메달과 오늘의 생활 — 인목의 목에 걸린 금메달은 한때 그가 잘했던 일을 알려준다. 하지만 폐지를 줍고 잘 곳을 구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아, 허세처럼 보이는 메달에도 허전함이 남는다.

챙겨주다가 이용하는 사람 — 인목은 주변 사람을 돕기도 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부리기도 한다. 한 번의 선행이나 얄미운 행동만으로 이 사람을 정리하려 하면, 다음 행동에서 판단이 다시 흔들린다.

조금씩 넓어지는 종이집 — 잠자리였던 곳이 집의 모양을 갖춰가는 과정을 보자. 더 넓게 살고 싶은 마음에는 웃음이 나지만, 집을 만드는 폐지에 돈이 된다는 사실은 그 생활을 위협하기도 한다.

관련 작품

소공녀 (2017, 전고운) — 집을 포기한 미소가 친구들의 거처를 전전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허락되는 취향과 자존심이 어디까지인지 함께 생각하게 한다.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2000, 아녜스 바르다) — 버려진 것을 줍는 이유가 저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폐지나 남은 농산물을 생계라는 말 하나로 묶기 전에 그 사람의 사정을 듣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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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