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던 딸에게 전화가 온다. 살아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이제 사람을 보내 구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괴물에서 강두의 문제는 이때부터 더 복잡해진다. 딸의 목소리를 들은…
죽은 줄 알았던 딸에게 전화가 온다. 살아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이제 사람을 보내 구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괴물에서 강두의 문제는 이때부터 더 복잡해진다. 딸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버지이고, 아버지에게는 구조대를 움직일 힘이 없다.
이 영화의 괴생명체는 어둠 속에서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지 않는다. 대낮의 한강 둔치로 일찍 뛰쳐나와 몸 전체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처음에 다리에 매달린 이상한 것을 구경하다가, 그것이 자신들을 공격하자 도망친다. 관객도 저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봉준호는 훗날 관객과의 대화에서 괴물을 그렇게 빨리 보여준 뒤, 이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가 과제였다고 설명했다. 영화가 내놓은 답은 한 가족의 수색이다. 현서가 잡혀가고, 살아 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괴물의 생김새를 알아내는 궁금증이 아이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느냐는 절박함으로 옮겨간다.
당국은 괴물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를 옮긴다고 발표한다. 가족이 현서를 찾도록 돕기보다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격리하려 한다. 강두는 딸을 찾으러 가야 하는 사람인데, 주변에서는 그를 통제해야 할 사람으로 취급한다. 강두는 수색을 요청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병원에 머물라는 지시다.
송강호의 강두는 조리 있게 자기 사정을 설명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데 능한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말을 잘 못한다는 것이 딸의 전화를 듣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차이를 영화는 쉽게 넘기지 않는다. 아이가 살아 있다는 사실보다 그 사실을 전하는 아버지의 어수룩함이 더 크게 받아들여질 때, 구조에 필요한 시간은 빠져나간다.
강두네 가족은 원래 이런 일을 할 사람들이 아니다. 한강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희봉, 일을 돕는 강두, 남일과 양궁 선수 남주는 현서를 찾으려고 힘을 모은다. 그렇다고 갑자기 지휘가 잘 맞는 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못 미더워하는 가족의 평소 관계가 수색 중에도 따라온다.
그래서 이들의 실수는 익숙한 웃음을 만들다가 금방 불안으로 돌아선다. 평소라면 타박하고 지나갈 어긋남이 지금은 누군가를 위험하게 할 수 있다. 봉준호는 무서운 장면이 끝난 뒤에 따로 농담 시간을 마련하지 않는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서툴고, 서투른 채로 무서운 일을 맞는다.
배두나가 연기하는 남주가 양궁 선수라는 사실도 수색 과정에서 중요해진다. 대단한 장비와 전문 구조 기술이 없는 가족에게는 각자 살아오며 익힌 것이 있다. 그것을 이번 상황에서 써야 한다. 가까스로 모은 능력들이 얼마나 제 몫을 할지 지켜보는 일이, 이 가족을 따라가는 긴장이 된다.
한강은 멀리 떠나 도착하는 모험의 장소가 아니다. 강두네가 먹고살던 곳이고 사람들이 쉬러 오던 곳이다. 그런데 출입이 막히고 현서를 찾아야 하자, 같은 강에서 보아야 할 곳이 달라진다. 둔치에서 바라보던 풍경 아래로 다리와 배수로, 사람이 숨어 있을 만한 공간이 드러난다.
재난에 대응하는 기관은 많지만 현서를 찾아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강두네는 거대한 재난의 원인을 모두 이해해서 출발한 사람들이 아니다. 현서에게서 전화가 왔기에 간다. 괴물과 바이러스를 둘러싼 발표가 이어져도 가족의 목적은 변하지 않는다. 전화한 아이를 찾으러 가는 것이다.
괴물을 다시 보려고 틀었다가 가족의 얼굴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영화다. 처음에는 우스워 보였던 실수와 말솜씨의 부족이 위기 속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보인다. 한강이라는 익숙한 장소가 공격과 수색의 공간으로 바뀌는 과정 자체도 장르영화를 보는 큰 즐거움이다.
◆ 대낮에 드러나는 괴물 — 괴물이 처음부터 몸 전체를 드러내는데도 장면이 무서운 이유를 살펴보자. 생김새를 숨기는 대신 가까운 사람들이 공격당하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긴장을 만든다.
◆ 현서의 전화를 대하는 태도 — 가족은 전화를 현서가 살아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이지만 당국은 강두의 말을 같은 무게로 듣지 않는다. 누구의 설명이 믿을 만하다고 여겨지는지에 따라 구조가 어떻게 지연되는지 볼 수 있다.
◆ 웃다가 걱정하게 되는 실수 — 가족의 서투른 행동은 처음에는 웃음을 만들다가 곧 위험으로 이어진다. 웃긴 장면과 무서운 장면이 따로 나뉘지 않을 때 배우들의 말과 움직임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살펴볼 만하다.
◆ 구경하던 한강과 수색하는 한강 — 사람들이 쉬던 둔치와 가족이 아이를 찾으며 지나가는 다리·배수로를 비교해보자. 같은 강이라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따라 보이는 장소와 이동할 길이 달라진다.
◆ 마더 (2009, 봉준호) — 아들의 사건을 직접 조사하는 어머니. 제도를 믿고 기다릴 수 없는 가족의 행동을 더 불편한 방향으로 밀고 간다.
◆ 옥자 (2017, 봉준호) — 소녀가 빼앗긴 동물 친구를 찾아 나선다. 구하려는 존재와 길을 막는 거대한 조직의 관계를 바꿔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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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