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명의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배의 부엌에 두 사람이 들어선다. 필요한 것은 둘이 먹을 아침뿐인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른다. 큰 설비 앞에서 한 끼를 준비하느라 애쓰는…
수백 명의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배의 부엌에 두 사람이 들어선다. 필요한 것은 둘이 먹을 아침뿐인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른다. 큰 설비 앞에서 한 끼를 준비하느라 애쓰는 모습을 보면, 물건이 넉넉하다는 것과 그것을 쓸 줄 안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우습도록 분명해진다.
버스터 키튼이 도널드 크리스프와 공동으로 연출한 항해자는 1924년에 나온 코미디다. 부유한 청년 롤로와 그가 청혼한 벳시는 각기 다른 사정으로 배에 올라 바다를 떠돌게 된다. 승객도 선원도 없는 큰 배에서 두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관객은 배에 무엇이 있는지보다 그 물건을 두 사람이 쓸 줄 아는지가 더 절실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롤로는 캐스린 맥과이어가 연기한 벳시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다. 이후 여행을 떠나려다 배를 잘못 탄다. 벳시는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 배에 올라온다. 처음부터 둘이 함께 모험을 계획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장소에 들어왔다가 함께 생활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두 사람은 한동안 상대가 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여러 층의 갑판을 오가면서 번번이 엇갈린다. 한 사람이 지나간 곳에 다른 사람이 나타나고, 가까이 있는 듯해도 눈앞에는 아무도 없다. 배가 두 사람을 한데 모았지만, 배의 크기와 통로는 만남을 자꾸 늦춘다.
이 장면에서는 얼굴만큼 화면 전체를 보는 일이 중요하다. 여러 층을 한꺼번에 보여주면 관객은 두 사람의 위치를 비교할 수 있다. 인물은 상대를 발견하지 못하지만 보는 사람은 둘이 얼마나 가까운지 안다. 누구도 일부러 상대를 피하지 않는데 계속 어긋나는 움직임에서 웃음이 생긴다.

이렇게 배의 구조 자체가 웃음을 만든다. 계단과 난간, 위아래로 나뉜 길이 인물의 다음 행동을 결정한다. 한 사람의 이동이 끝나기 전에 다른 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피면, 큰 공간에 두 배우를 배치하는 것만으로 장면이 얼마나 바빠질 수 있는지 보인다.
집에서 생활을 돌봐주던 사람이 없는 배에서는 작은 일도 새로 배워야 한다. 롤로와 벳시가 마주한 부엌은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대량으로 만드는 곳이다. 먹을 것을 찾는 일에 앞서, 갖춰진 시설을 두 사람의 끼니에 맞게 다루는 것부터 어렵다. 풍족한 환경에서 살던 경험이 이곳의 요령을 저절로 알려주지는 않는다.
두 사람의 곤경은 규모의 차이에서 또렷해진다. 한눈에 보이는 큰 설비와 그 앞의 몸을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아침 식사를 만들겠다는 목적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므로, 관객은 결과를 기다리면서 그 사이의 서툰 시도를 따라간다. 무엇을 하려는지 알기에 잘되지 않는 과정도 더 재미있다.
영화가 진행되면 두 사람은 장치를 마련하고 자기들 나름의 생활 방식을 만들어간다. 처음에는 낯선 설비 앞에서 쩔쩔맸지만, 이제는 두 사람이 지낼 수 있도록 배 안을 바꿔 쓰기 시작한다. 초반의 실패를 기억하면 나중의 능숙함은 작은 성취로 보인다. 웃음 속에서도 시간이 지나고 사람이 배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롤로의 얼굴을 무표정이라는 한 단어로만 정리하기보다, 그 얼굴 아래 손이 무엇을 붙잡고 몸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보는 편이 재미있다. 당장 해결해야 할 일에 몰두한 행동과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결과가 부딪힌다. 물건을 붙잡는 자세 하나에도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 드러난다.
배를 수리하기 위해 잠수하는 대목에서는 활동 무대가 물 아래로 옮겨간다. 갑판에서는 발로 걸어 다니던 인물이 무거운 잠수 장비를 갖추고 내려간다. 몸을 움직이는 조건이 달라지자 같은 일을 해도 다른 동작이 필요해진다. 물 위와 아래가 이어져 있기에 배에서의 생활을 계속하려는 목적도 유지된다.
수중 장면에는 작업 중임을 알리는 표지처럼 육지에서 익숙한 물건이 등장한다. 사람이 드나드는 일터의 관습을 물속으로 옮겨놓으니 낯익은 행동이 뜻밖의 장소에서 되풀이된다. 배를 고치는 일과 그 일을 하는 사람의 태도가 함께 웃음을 만든다.
이 장면들을 마련하는 데에는 실제 물속에서 찍는 작업이 필요했다. 제작진은 타호호수에서 촬영했고 수조도 이용했다. 잠수 장비를 입은 몸은 갑판에서처럼 가볍게 움직일 수 없다. 육지의 일꾼처럼 행동하려는 롤로와 물속에서 둔해진 동작을 함께 보면, 작업 표지 하나도 더 엉뚱해 보인다.

키튼은 시사회 뒤 수중 장면 가운데 불가사리를 가슴에 붙이고 교통경찰처럼 물고기 떼를 정리하는 개그를 덜어냈다고 회고했다. 개별 동작이 재미있어도 배를 수리하러 내려온 이야기와 멀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선택은 항해자의 웃음을 이해할 단서다. 웃기는 행동을 얼마나 많이 넣는가뿐 아니라, 롤로가 왜 그 행동을 하는지도 장면을 이어가는 데 중요했던 셈이다. 배를 고쳐야 한다는 목적을 알고 보면, 잠수부의 엉뚱한 행동에도 일이 무사히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따라붙는다.
항해자는 거대한 모험에 들어가기 전에도 일상적인 필요만으로 충분한 사건을 만든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아침을 먹고, 고장 난 곳을 손보는 일이다. 평소라면 쉽게 끝날 일이 배의 크기와 두 사람의 서툼을 만나 길어진다. 목적을 따라가다 보면 무성영화의 움직임을 읽는 재미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함께 지낼 생각이 없었던 두 사람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관계도 흥미롭다. 청혼을 거절당한 사정은 배에 오른 뒤 사라지지 않지만, 매번 먹고 움직이고 살아갈 일이 앞에 놓인다. 청혼을 거절한 여자와 거절당한 남자가 이제는 한 끼를 마련하려고 손발을 맞춘다. 서로에게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서툰 생활 속에 들어 있다. 처음의 곤경이 우스웠다면, 나중에는 두 사람이 제법 잘해내는 모습도 반갑다.
◆ 셜록 주니어 (1924, 버스터 키튼) — 잠든 영사기사가 꿈속에서 영화 안으로 들어간다. 항해자가 큰 배의 통로와 층을 이용한다면, 이 영화는 화면 안팎을 오가는 상황을 만든다. 인물이 놓인 공간의 규칙이 바뀔 때 움직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할 수 있다.
◆ 제너럴 (1926, 버스터 키튼·클라이드 브루크먼) — 기관사가 도난당한 기관차를 뒤쫓는다. 항해자가 배 안의 생활을 다룬다면 이 영화는 움직이는 열차를 따라 추격을 이어간다. 큰 기계와 작은 몸의 관계가 정착과 이동의 이야기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볼 만하다.
◆ 황금광 시대 (1925, 찰리 채플린) — 채플린은 굶주린 인물이 구두를 요리하고 먹는 장면을 만든다. 항해자의 아침 준비와 나란히 보면 먹어야 한다는 절실한 필요를 서로 다른 물건과 몸짓으로 풀어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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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